하루하루 말이 늘어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동안 쌓인 인풋이 어찌나 머릿속에서 잘 조합되어 나오는지 아웃풋으로 나오는 순간들이 참으로 경이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말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방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중얼중얼 소리가 났다. 혼자 뭐하나 싶어 가봤더니 읽지도 못하는 신문을 쫙 펼쳐놓았다. 그위에 엎드려 한 손엔 펜을 들고 무언가 중요한 내용이나 있듯이 펜으로 좍좍 그어대며 자기만의 언어로 뭐라 중얼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따라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고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우주 같은 아이는 엄마 그리고 아빠라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과 말투 등을 오감으로 느끼며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소한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도 영향을 받고 그것을 누군가 늘 보면서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움찔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난 우리 아이에게 매 순간 학습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육아에 지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미래 속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 엄마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더 자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많아질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쫌 더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때. 엄마만이 아닌 사회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면서 원했던 일들을 즐겁게 하는 모습. 더 나아가 내가 하는 활동들이 잘 되어서 사람들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분 좋은 상상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은 상상 속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난 이미 누군가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영향력은 어마 무지하게 커서 상대방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동안 난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무언가를 이뤄내거나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야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사람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난 이미 지금도 내가 꿈꾸고 그리던 모습만큼이나 충분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저 "부모"라는 이름으로 정의된 채 살아가지만 모두 대단하고 위대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유명한 연예인들 혹은 흔히 "인플루언서"라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우주다.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다. 나에게 찾아온 이 우주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때로는 자신도 희생해가며 '열'과 '성'을 다해 키운다. 덕분에 그 우주가 온전한 자기 세상을 탄탄히 잘 구축하고 만들어가서 훗날 다른 어느 누구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인플루언서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그들은 모두 엄마의 뱃속에서 왔다는 사실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