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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문 Aug 09. 2020

[버터일상]전남친 토스트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법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새벽 4시에 눈이 떠졌어요. 현관문 앞의 소화전 앞에 뭔가 쿵하는 소리가 났거든요. 그리고 카톡 알람이 울렸구요. 하지만 침대에서 몸을 옆으로 돌려가며 바디필로우도 이리저리 돌리면서 누워있었어요. 그 새벽과 아침의 찬 기운이 스민 흰 오리털 이불을 발바닥으로 느끼는 그 기분이 전 요즘 날씨에 참 좋더라구요. 낮엔 덥지만 비 오는 아침저녁은 선선해지는 지금 여름의 날씨는 짧지만 참 좋을 때가 있잖아요. (폭우로 물난리가 난 지역의 안녕을 다시 눈 꼭 감고 빌어봅니다.) 


그 쿵소리는 마켓컬리였어요. 지난 주부터 먹고 싶어 벼르던 '전남친토스트'를 만들려고 어제 주문했거든요. 집에 식빵과 블루베리쨈은 있고, 크림치즈만 있으면 됐거든요. '전남친토스트'를 만들어야지. 이 레시피에서 사용했다던 그 비싼 '마담로익' 크림치즈로 꼭 먹고싶더라구요. (하나에 11,900원이라니 참 사치품이예요)


아, '전남친토스트'는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한다던 토스트예요. 토스트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이 토스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고 웃었어요. 헤어진 전남자친구가 해준 그 토스트의 맛이 너무 그리워서 염치 불구하고 카톡으로 그 레시피와 크림치즈 종류를 물어본 짤이었어요. 전 웃으면서 그래서 이름이 전남친토스트구나 하다가 아니 얼마나 맛있으면 헤어져도 물어볼 수 있단 말야? 라는 생각에 더 먹고싶더라구요. 


후라이팬에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 그 위에 '마담로익' 크림치즈와 블루베리쨈을 아주 두껍게 바르고는 다시 전자레인지에 10초 더 돌리는 간단한 레시피였어요. 간단한 레시피이다보니 정말 저 크림치즈에 대한 욕망이 강해지더라구요. 저는 결혼 전부터 코스트코에 가족들이랑 주말에 쇼핑을 하며 무언가 외국적이고 양 많고 신박한 아이템을 많이 봤었기에, "아 코스트코에 가면 저 마담 뭐시기 크림치즈를 살 수 있겠다" 하며 무릎을 치고 퇴근 후 피곤한 몸들을 이끌고 지난 주에도 갔었는데 없더라구요. 대신 고구마말랭이와 수박과 망고스틴과 그밖의 먹는 사치품(?)들을 잔뜩 사들고 왔었지요.  


주말엔 늦잠을 자는 신랑을 뒤로 하고, 전 신나게 식빵을 굽고 크림치즈와 쨈을 두껍게 바르고 디카페인콜드블루로 라떼를 만들어서 넷플릭스의 요즘 정주행하는 미드를 보며 신나게 일요일 아침을 보냈어요. 참 좋더라구요. 얼마 전까지 출근 안하는 주말에 저는 진즉에 눈을 떴는데 곤히 잠들어 있는 신랑이 참 얄미웠고 서운하기까지해서 엉엉 운적도 있었거든요. 마음 속으로는 새벽에 잠들어 아침잠 많은 신랑을 주말엔 푹 자게 해줘야지 하면서도 아니, 임신부 아내가 아침에 뭘 안먹으면 속이 시린 걸 알면서도 총각 때처럼 산단 말야? 라는 저의 호르몬에 의한 이기적인 마음과, 친정가족들은 모두 아침 대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잘지언정 일어나는 그 아침스케줄을 강요하고 있었나봐요. 


아무튼 이렇게 저의 첫 전남친토스트는 참 맛있는 주말로 남게 됐어요. 추적추적 비오는 일요일 아침을 뉴욕에서 인턴하던 그 시절로 만들어줬구요, 저는 주말 아침을 신랑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됐구요, 10시쯤 일어난 신랑에게 기분 좋게 웃으며 뽀뽀해 줄 수 있게 됐구요, 그래서 신랑도 기분좋게 전남친토스트를 맛볼 수 있게 됐거든요.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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