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 - 마침내 황금돔 사원에 서다

성전산과 황금돔 사원의 의미

by 남쪽나라

오늘은 이스라엘을 떠나는 날이다. 늦어도 오후 1시 반까지는 텔아비브공항에 도착하여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황금돔사원을 보기 위해 나 혼자 다시 다마스커스문을 들어선다. 오늘이 세 번째 시도이다. 첫날은 유태인 '사바트'라서 문을 닫고, 어제는 홀로코스트기념일이라고 문을 닫았다. 오늘은 과연 볼 수 있을까? 이른 아침이라 조용하기만 한 골목들에 이스라엘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골목골목 기관단총을 들고 서있기도 하고 일부는 무리 지어 순찰을 돌기도 한다.


20170425_090328.jpg?type=w2 아랍지구 내 이스라엘 무장군인들의 순찰 모습

우리가 본 예루살렘은 유태인의 나라가 아니라 아랍인의 나라 같기만 하다(예루살렘의 인구는 88만 명. 그중 55만이 유대인, 33만이 아랍인이란다). 사바트(유태인 안식일)에 도착해서 줄곳 아랍인지역만 돌아다녀서인가? 텅 빈 골목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본다.


이 나라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흘간의 이스라엘여행에서 우리가 받은 피상적 인상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무력에 의한 평화, 뻣뻣한 유대인, 무질서한 아랍인, 살인적 물가 뭐 이런 것들이다. 아랍인들(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스라엘건국 후 그들의 땅인 이곳에서 특별지위(Special Status)를 인정받아 영주 할 권리(?)를 얻었지만 그들은 결코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민권도 거부하고 투표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의 땅에서 유태인의 지배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끊임없는 분쟁은 불보 듯 뻔하다.


20170425_073144.jpg?type=w2 성전산 출입문 입구

이른 아침인데도 성전 산(Temple mount) 입구에는 100미터도 넘게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줄을 선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엄격한 검문대를 통과하여 입장한다. 다들 바위 위의 돔사원(Dome of Rock)을 보기 위하여. 3,000년의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도시, 예루살렘의 상징이자 바로 오늘날 중동분쟁의 진원지이기도 한 곳이다.


20170425_072352.jpg?type=w2 통곡의 벽에 접한 성전 산 나무 통로 출입구

성전 산 출입구는 11개가 있지만 그중 단 하나 통곡의 벽에 접한 Mugrabi문을 통해서만 관광객과 비무슬림들은 입장할 수 있다. 출입시간도 극히 제한적이고 요일도 일정치 않다. 금, 토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으며 툭하면 무슨 행사가 있다고 열지 않는다. 나머지 10개의 문은 무슬림만 출입할 수 있다. 무슬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고? 척 보면 안단다. 어투, 표정, 행색만 봐도 100에 100 정확히.


20170425_084019.jpg?type=w2 성전 산 사원 광장

엄격한 검색대를 통과한 후 통곡의 벽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통로를 통해 사원 경내로 들어서니 무지하게 넓은 성전 산 광장이 나온다. 광장의 면적이 무려 34 에이커, 좁은 예루살렘 성 면적의 1/6을 차지한다. 좁고 답답한 골목길만 줄곳 다니다가 넓은 마당을 보니 가슴부터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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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나무 사이로 아침햇살에 빛나는 황금빛 돔이 드러난다. 사원입구를 오르는 계단 위에 세워진 아치형 기둥을 지나니 드디어 8 각형의 거대한 바위의 돔사원(Dome of Rock),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황금돔사원이 1,300년 세월을 자랑하고 서 있다.


이슬람 초기 100여 년 정복기간 동안에는 이렇다 할 이슬람예술이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메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서기 691년, 신의 계산에 의해 세운 듯한 뛰어난 기하학적 구조(팔각형 구조)의 이슬람예술의 정점이라 할 황금 돔 사원이 마치 마법처럼 탄생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신성한 장소인 솔로몬성전, 헤롯성전이 있는 성전 산 바위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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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돔 사원 안의 거대한 바위(사진: 위키피디아에서)


바위의 돔사원 안에는 높이 1.8미터, 폭 11미터인 바위가 있다(유감스럽게도 사원 안은 들어가지 못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성전 산(일명 모리아산) 바위 위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께 바치려 했고, 코란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 3천여 년 전 솔로몬은 이 거룩한 바위 위에 그 유명한 솔로몬 성전을 건축했는데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와 재건축을 반복하다가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 파괴되고 서쪽 벽(Western Wall) 일부만 달랑 남는다. 남아 있는 그 서쪽 벽이 유대인들이 애지중지하는 지금의 <통곡의 벽>이다.


20170425_084854.jpg?type=w2 황금돔 사원 전경
20170425_084806.jpg?type=w2 광장 내 이슬람 사원

성전산은 유대교, 기독교에 못지않게 이슬람에게도 중요한 성지이다. 이곳이 곧 마호멧이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예루살렘 정복 후 기독교에 대항하기 위해 보란 듯이 이 황금 돔 사원을 이곳에 세운 것이다. 게다가 사원 내에 '예수는 신이 보낸 예언자'라는 코란 구절을 의도적으로 세겨놓고 있다.


역사를 바꾼 황금 돔 사원.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유태인들이 이 땅을 차지하고 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3대 종교의 성소 <성전 산>은 오늘날 중동분쟁의 진원지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가 돼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967년 6일 전쟁 전까지 예루살렘 구시가(Old City)는 요르단의 지배하에 있었다. 6일 전쟁 중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구시가(동 예루살렘)를 무력으로 전격 점령하고 이후 지금까지 불법(?)으로 사실상의 지배를 계속해 오고 있다.


무력 점령 후 주위 아랍국가들의 반대와 저항이 워낙 심하자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성소인 <통곡의 벽>만을 완전하게 지배키로 하고 이슬람의 '고귀한 성역'인 성전 산과 바위의 돔 사원은 이슬람 측이 관할하도록 양보(?)한다. 지금도 그 약속은 지켜져 이스라엘은 성전에 대한 공공질서(public order)만 통제하고 성전 산 내에서의 종교적 통제는 전적으로 아랍 측 관할이란다. 그래서 성전 산 내에서 무슬림을 제외한 어떠한 종교의 종교행위도 할 수 없다고 출입구에 경고문이 붙어 있고 경내에는 무장 종교경찰들이 짝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런 잠정적인 평화는 언제 깨질지 모른다. 무슨 핑게거리만 있다면.


20170425_084412.jpg?type=w2 황금의 돔 앞에서

예루살렘의 상징이자 아이러니칼 하게도 3천 년 이스라엘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버린 성전산 위의 황금돔 사원. 1시간 이상을 기다려 힘들게 들어온 성전 산이지만 후딱 돌아보고 사진 몇 장 찍고 아쉽게도 30여 분 만에 나올 수밖에 없다. 비행기 시간 때문이다. 그나마 황금돔사원을 본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예루살렘을 뒤돌아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의 화약고, 예루살렘. 전쟁보다는 평화의 도시로 남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이왕이면 무력에 의한 평화가 아닌 서로가 바라는 참 평화의 도시로. (하지만 우리의 우려대로 우리가 다녀온 몇 해 후 중동평화는 깨어지고 대규모 학살과 전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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