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지구에 있는 베들레헴
황금돔사원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다시 예루살렘 구시가로 들어가는데 뉴욕에서 왔다는 한인부부를 통곡의 벽 광장에서 또 만난다. 아무리 작은 이스라엘 땅이지만 아일랏과 마사다, 그리고 오늘 통곡의 벽 앞에서 사흘동안 세 번씩이나 만나다니! 어쨋든 반갑다. 그들은 오늘 오후 떠나고 우리는 내일 오후 떠난다. 아마 그들도 미국 돌아가면 우리와의 우연스러운 조우들을 이야기하겠지.
황금돔사원 입구에 이르니 오늘도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오늘은 홀로코스트 기념일이라서 또 안 연단다. 우리는 내일 오후 떠나는데.
김센 기분으로 성밖을 나오니 막상 별로 가고 싶은데도 없다. 눈앞의 감람산(Mt.Olive)이라도 올라가 보자며 성 아래의 좁은 길을 따라 걷는데 길을 잘 못 들어 아랍인 마을로 들어서버린다. 곳곳에 눈에 띄는 모스크와 까만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 그리고 떼 지어 다니는 동네아이들의 경계 어린 눈초리가 약간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감람산 오르는 길을 찾았다. 산 중턱을 빽빽이 덮은 유태인묘지 사이 계단을 따라 감람산 전망대에 이르니 사람들로 벌써 가득하다. 감람산 위에는 눈물방울같이 생긴 자그마한 교회가 하나 서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며 슬피 우신 장소란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눈물의 교회>이다.
교회 앞 좁은 마당과 전망대에는 사람들로 매우 혼잡스럽고 전망대에는 예루살렘 성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신부님'하는 한국말소리가 들린다. 어느 성당에서 왔는지 신부님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순례객들이 황금사원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한쪽에서는 진지하게 예배를 드리는 참배객도, 또 촛불을 들고 흰 옷을 입은 체 줄지어 엄숙하게 걸어 오르는 순례객들도 보인다. 세계 각국의 인종 전시장 같은 분위기이다. 내려오는 길에 한 무리의 인도 순례객들과 마주친다. 반갑게 우리와 인사를 나눈 한 순례객이 말하기를 인도에 크리스천 인구가 3%나 된단다. 겨우 3%라지만 3천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 아닌가? 힌두교나 불교의 나라로만 알아온 인도에 이렇게 많은 크리스천이 있다니 놀랍다.
조금 전 흰옷에 촛불을 들고 진지하게 행진하던 사람들이 인도 크리스천들이었구나. 13억 인도 인구 중 3%의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의 표정에서 용기 있는 참 크리스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람산에는 교회도 많다. 성모승천교회, 만국교회, 주기도문교회, 눈물의 교회 등. 어떤 교회는 비잔틴교회의 모습을, 어떤 교회는 러시아정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중 비잔틴양식의 그리스 정교회(만국교회) 한 군데를 둘러보는데 이곳은 겟세마네동산에 자리하는 교회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사람들이 많다. 아름답게 잘 꾸며진 교회 정원에는 아주 오래된 올리브나무들도 서 있다. 순례객들은 이 올리브나무들을 보고 감격해한다. 혹시 예수님 시대부터 서있던 나무가 아닌가 해서. 하지만 올리브나무의 수명은 길어야 천년이다.
손을 잡고 걷는 아랍계 어린 3남매의 뒷모습이 너무나 예뻐 우리도 그들 뒤를 따라 사자문을 통해 다시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니 높다란 모스크 미나렛이 보인다. 여기도 아랍지구인가 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면적은 고작 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한데 유태인구역, 기독교구역, 무슬림구역, 아르메니아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어 도시의 긴 역사만큼이나 참 복잡도 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Via dolorosa(고난의 길) 14개 지점(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을 찾아보려고 좁은 아랍인지구 골목길을 헤매고 다녀보지만 너무나 복잡해 겨우 몇 개만 찾고 포기하고 만다. 예루살렘에서 만큼은 가이드가 필요한 것 같다.
구시가는 더 이상 돌아다닐 데도 없어 우리는 231번 버스를 타고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수없이 듣던 예수님이 태어나신 유대땅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의 팔레스타인지구에 있다. 여기는 완전히 딴 나라 같다. 소위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이다. 말이 자치지구이지 사실상 엄격히 격리된 지역이다.
이 지역을 출입하는 모든 차량은 게이트에서 철저한 검문을 받는다. 완전무장한 이스라엘군인들의 검문은 살벌하기조차 하다. 팔레스타인사람들은 일일이 내리게 해서 개별적으로 한 사람씩 출입증을 대조 검문검색한다. 그들의 기분이 어떠할까? 자기들 땅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니.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갑자기 비발디의 노래가 생각난다. 총구에 의해 지탱되는 평화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우리가 탄 버스가 도착하자 달려드는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가 장난이 아니다(예루살렘 지역에서의 택시기사는 대부분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예수탄생교회까지는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거리인데 부르는 값이 100 세켈, 80 세켈, 영어 아랍어 섞여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우리를 두고 택시기사들끼리 싸우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런 광경에는 제법 도(?)가 터 택시 안 타고 걸어가겠다고 나서니 이번엔 20 세켈, 10 세켈까지 내려간다.
10 세켈(4000원)에 흥정을 하고 택시를 탔는데 내릴 때는 딴 소리를 한다. 30분쯤 대기할 테니 80 세켈을 내란다. 우리를 호구로 아나? 이럴 때는 영어가 필요 없다. 한국말이 더 효과적(?)이다. 당연 성내고 큰소리로 해야 한다. 결국 5 세켈 더 주고 내리지만 택시를 타는 일은 이래서 늘 피곤하다. 비단 중동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서민들의 직업인 택시로 밥 먹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까?
사실 우리는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보다는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헤브론(Hebron)에 더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헤브론 역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내이지만 베들레헴보다는 훨씬 더 위험한(?) 서안지구라 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예수탄생교회 역시 혼잡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관광객들과 순례객들로 붐비는 교회 내부는 보수공사가 한창인지 비계 작업대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예수님 탄생 자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성스러운 분위기 하고는 거리가 멀다.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듯하다. 대부분 비기독교도인 그들에겐 이곳은 그저 호기심어런 특별한 관광지에 불과한 듯 여기저기 소란스럽고 오로지 인증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스라엘 정부가 유태교 신앙과는 별 관계없는 기독교성소나 유적들은 단순한 관광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유태인들의 성소일 뿐. 누군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실망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역시 조금은 그런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한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조금은 난감하다. 버스정거장까지 택시는 타기 싫고 걸으려니 1시간쯤 걸리고. 혹시 승합버스라도 있나 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차도르를 두른 한 젊은 아랍여성이 영어로 말을 건다. 우리의 상황을 듣더니 옆에 주차된 택시로 가서 기사와 무어라 이야기를 한다. 1인당 3 세켈에 버스정거장까지 태워주기로 했으니 타란다. 세상에! 둘이 고작 6 세켈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론 속이려는 사람도 바가지를 씌우려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도와주려는 선의의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우리는 오전의 불쾌했던 기억은 싹 잊고 이 고마운 아랍여성에게 슈크란(고맙습니다)을 연발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슈퍼에 들려 와인 한 병과 먹거리들을 산다.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밤이자 우리의 중동여행을 무사히 끝낸 것을 자축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인민박집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 한인민박을 택한 것은 순전히 호주머니 사정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살인적인 물가는 호텔도 예외가 아니다. 구시가 부근의 제일 싼 호텔도 100불이 훌쩍 넘고 웬만하면 2백 불선이다.
L선교사님의 민박집은 시설이 특별히 좋은 곳도, 위치가 좋은 곳도 아닌 히브리대학 근처의 평범한 주택이다. 넉넉하지 못한 해외선교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방 하나를 세놓는 듯. 참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들은 다들 이쁘고 참 반듯하다. 셋 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데 한국말이 히브리어만큼 유창하다. L선교사님은 현지에 오래 사신만큼 현지정보에 정통하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 예루살렘을 다시 온다면 주저 없이 또 이 민박집을 찾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