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 -비극의 현장 마사다에서 사해를 바라보며

사해에서 둥둥 떠 보기 인생 체험

by 남쪽나라

일요일 아침 마사다(Masada)와 사해를 가기 위해 중앙버스터미널(Central bus station)까지 가는 트램을 탄다. 비슷한 트램을 이스탄불에서도 타본 적이 있는데 예루살렘의 트램은 훨씬 더 길다. 10시 출발 마사다행 버스표를 간신히 구입해 줄을 서는데 그저께 아일랏에서 만났던 한국인부부를 또 만난다. 뉴욕에 산다는데 이스라엘만 한 달째 여행 중이란다.


20170423_104739.jpg?type=w2 유대광야에 솟아 있는 마사다 요새 전경

마사다요새는 걸어서도 올라가지만 대부분 비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어느 책에 보니 <마사다(Masada), 해발 40미터>라고 적혀 있다. 고작 40미터를 케이블 카를 타고 가? 하지만 마사다의 실제 높이는 440미터이다. 꽤 가파르고 길도 험하다. 바로 코 앞의 사해를 기준으로 해서 해발 40m라는 이야기. 사해는 육지보다 400미터나 낮으니까. 마사다는 사해를 내려다보는 유대광야에 솟아 있는 옛 요새이다. 밑에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광야의 불룩 솟은 자그마한 산에 불과하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서기 73년 로마군에 끝까지 대항하다 항복대신 전원 자결을 택한 마사다항전의 바로 그 현장이다.


20170423_112647.jpg?type=w2 마사다 요새 정상의 유적들
20170423_113239.jpg?type=w2 물 저장소

마사다요새는 기원전 30년경 헤롯왕의 궁전으로 처음 지어졌다. 서기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극렬주의자들인 열심당원들이 항복하지 않고 마사다로 피신한다. 그들은 마사다에서 로마제국에 결사항전하다가 서기 73년 로마군의 총공격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반군을 포함한 가족 960명이 전원 자살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로마제국에 끝까지 대항한 이 반란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고 유대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로마는 항복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만 끝까지 항전하는 자들에게는 무자비하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유태인들을 뿌리째 없애버리기 위해 유대땅에서 완전히 쫓아내 버린다. 유태인들의 피눈물 나는 2천 년간의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바로 이 마사다에서 시작되었다. 1948년 지금의 이스라엘이 건국되기까지.


20170423_113026.jpg?type=w2 해롯왕의 궁정 모형

이스라엘은 이 마사다항전을 불굴의 유태인 혼을 일깨워준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부하며 오늘날 유대교 학습장으로 널리 이용하고 있다. 과연 자랑스러운 일일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니 그동안 발굴된 여러 가지 유적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해롯왕의 궁정터와 물저장소, 지휘소 및 일반인들의 처소 등.


바로 눈아래 사해가 펼쳐 있고 로마군들이 공격해 오던 루트도 볼 수 있다. 그들의 결사항전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만일 그 당시 예루살렘은 멸망했지만 유태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피지배 민족으로 그대로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또한 그들이 디아스포라로 쫓겨간 땅 그곳에서도 평화롭게 동화되고 피를 섞으며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2천 년간 디아스포라의 고난도, 홀로코스트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게다가 세계의 화약고, 지금의 중동분쟁도 없지 않았을까? 유태인들의 그 잘 난 자존심,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우월감이 남의 지배를 결코 용납하지 못한 걸까? 구약성서의 70년간의 바빌로니아 유수도, 느보갓네살 왕에 의한 철저한 예루살렘 파괴도 모두 유태인의 못 말리는 반란사건 때문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택된 백성의 자존심, 마사다 정상에서 2천 년 전의 항전을 회상하며 쓸데없이 <역사의 가정>에 빠져본다.


우리는 케이블 카로 내려와 386번 버스를 타고 사해의 휴양지 Ein bokek로 향한다. 원래는 Ein Gedi로 가려고 했는데 지금 그곳에는 공용비치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Ein Bokek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20170423_131925.jpg?type=w2 사해의 아인 보켁 해변

버스기사가 퍼블릭 비치가 있다는 Ein Bokek의 세 번째 정거장에 우리를 내려주는데 우리는 잘못 내린 줄 알았다. 깨끗하게 관리된 모래사장에 높다란 야자수나무 공원, 탈의실과 샤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심지어 날아갈 듯이 멋진 하얀 차양막까지 곳곳에 처져 있다. 어느 고급 리조트 전용비치 못지않다. 이 비치 공짜 맞아? 우리가 낸 돈은 의자 2개 사용료가 전부(개당 10 세켈).


멀리서 본 사해는 회색톤이었는데 막상 물 가까이 와 보니 물 색깔마저 맑고 푸르러 멕시코의 칸쿤 해변에라도 온 기분이다. 사해는 구약성서에 <염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구약성서의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는 지금 이 사해의 어느 곳에 매몰되어 있을 거라는데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사해를 롯의 바다(Bachr Lut)라고 부른단다. 염분이 해수의 5배, 그 안에 아무런 생물도 살 수 없어 사해라 불리운다. 당연히 사해에는 배도 없다. 염도가 높아 녹슬거나 썩기 때문이다. 사해가 지표면보다 400미터 아래 위치한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


초등학교 때 책에서 사해에 둥둥 떠 신문을 보거나 양산을 든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 우리는 드디어 그 사해에 몸을 띄워보는 것이다. 정말 뜰까?


20170423_135753.jpg?type=w2 사해에서 둥둥 떠보기

아내와 나는 차례대로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바닥에는 소금 결정체가 있어 조심스럽긴 한데 물 위에 누워보니 와! 정말 뜬다. 그런데 수영을 해보려고 물장구를 치거나 팔을 저어보니 완전 동작 불가이다. 움직일수록 몸이 자꾸 물 위로 떠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우리는 열심히 인증샷을 찍고 사해 물맛까지 음미(?)한 다음에야 나와 샤워를 한다. 물 맛이 어땠냐고요? 직접 체험해 보시기를. 유감스럽게도 해마다 사해로 물 유입량이 줄어 해수면이 매년 80센티씩 낮아진단다. 과거 50년 동안 무려 20미터가 낮아졌다니 50년 후쯤에는 바닥만 보이질 않을까? 사해를 보고 싶다면 서두르시라!


20170423_173149.jpg?type=w2 트램 안의 무장 군인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숙소로 가는 트램을 탔는데 중간에 갑자기 멈춘다. 사일렌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멈춰있기를 무려 30여분. 누구 하나 별다른 동요 없이 앉아 있기만 한다. 이런 일들이 일상이 된 건가? 내려야 할지 그대로 있어야 할지 우리만 안절부절이다. 혹시 테러라도 난 건가? 트램 안에는 기관단총을 든 군인도 보인다. 아니 이스라엘군인들은 아무 데나 막 총 들고 타도 되는 건가? 비로소 우리가 중동분쟁의 한가운데 이스라엘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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