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시 이스탄불 - 저 도시를 나에게 주시오!

1453 이스탄불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by 남쪽나라


Istanbul(is tin Poli),

그리스어로 '도시로'(to the city)라는 의미를 가진 역사적 대도시 <이스탄불(Istanbul)>로 드디어 왔다. 비잔틴제국 천년의 역사에 600년의 오스만 역사가 더해진 이스탄불의 역사지구 술탄 아흐메트 가(街)에 도착한 시각은 밤늦은 9시 반경. 호텔방에 짐부터 던져 놓고 밥부터 먹으러 나선다. 호텔 주변은 꽤나 번화가인 듯 전차가 지나다니고 길 주변엔 늦은 시간임에도 상점들이 문을 열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제법 점잖게 호객을 한다. 첫째 말은' 니 하오!' 별반응이 없으면 '오하요!' 그래도 반응이 없으니 '안녕하세요!'가 나온다.


늦은 밤인 데다 약간의 한기마저 드는 쌀쌀한 밤날씨라 빨리 민생고부터 해결하려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싸구려 관광지 스타일의 케밥집에 들어가 자리부터 잡는다. 하지만 식당 양쪽에서 뿜어대는 현지인들의 숨 막히는 담배연기 공세에 5분도 견디지 못하고 주문을 취소한 채 탈출하고 만다. 아마 조금만 더 앉아 있으면 질식할 것만 같다. 한두 군데를 더 기웃거려 봤으나 늙수레한 영감들의 담배공세는 마찬가지.


이스탄불의 첫날밤, 우리가 꿈꾸던 우아한(?) 튀르키예식당에서의 멋진 케밥식사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병을 사들고 호텔방으로 돌아오고 만다. 12시간의 비행 끝의 이 공복을 우유 한잔으로 때우다니! 몇 해 동안 꽤나 많은 책들을 읽고 지도를 펼쳐가며 벼르고 벼르던 우리의 중동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연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6시간의 시차와 허기진 배는 천하의 잠보인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침 8시경 억지로 잠을 깨 식당으로 내려가니 와! 놀라운 아침식단이 펼쳐져 있다. 튀르키예인들이 아침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풍성한 식단이 차려져 있을 줄이야! 조금 과장하면 호텔뷔페 수준이다. 우리는 어젯밤의 허기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창피할 정도로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 먹는다. 두 번 아니 세 번을 담았던가? 종일 싸돌아 다니려면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지 핑계하면서.


든든한 아침식사에 커피까지 챙겨 마시고 느긋이 호텔문을 나선다. 도시로(Istanbul)! Go to the city! 1452년, 약관 21살의 나이로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자리에 오른 메메트 2세가 즉위 후 콘스탄티노플을 지근에서 바라보며 재상 할릴 파샤에게 던진 말 한마디. "저 도시를 나에게 주시오" 이 말 한마디로 천년을 버티어 온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인이 일 년 후 바뀐다. 콘스탄티노플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 지금 우리는 그 역사적 도시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구시가인 술탄 아흐메트지구의 중심이자 이스탄불의 상징인 두 개의 모스크를 만나려면 전차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했다.


20170401_104632.jpg?type=w2 블루 모스크전경
20170401_104431.jpg?type=w2 소피아 사원 전경

그때 눈앞에 선명히 나타난 거대한 두 개의 모스크, 하늘이라도 찌르려는 것일까? 마치 중세시대의 창 같이 높게 세워진 6개의 미나렛(첨탑)으로 둘러 싸인 거대하고 장중한 블루 모스크와 맞은 편의 다소 아담하면서도 여성적 분위기의 핑크색 소피아사원(Hagia Sophia). 그 아름다운 반구형 돔의 꼭대기에 십자가가 걸렸으면 어떻고 초승달이 걸렸으면 어떠리. 그 지붕 위로 오늘따라 너무나 청징한 하늘을 이고 비행기 한대가 하얀 궤적을 남기며 날아가고 있다. 아직 사원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가슴은 뛰고 약간 쌀쌀한 날씨가 다소 혼미하던 정신을 일깨운다.


푸짐한 튀르키예식 아침식사에 이스탄불의 청징한 4월 하늘을 보는 것 만으로 12시간 비행의 고단함이 단숨에 해소되는 기분이다. 광장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넘쳐나고 우리도 사람들 틈에 끼여 두 모스크를 들여다본다. 소피아사원(Hagia Sophia). 두 말이 필요 없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자 이스탄불의 보물이다. 사원 안은 보수 중이라 다소 어수선하지만 1500년의 역사와 그 아름다움은 숨길 수 없는 것. 서기 537년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새롭게 이 성당을 건축하고 <내가 솔로몬을 이겼도다>라고 자랑한 말이 충분히 수긍이 간다.


20170401_125930.jpg?type=w2 소피아 사원 내부
20170401_130433.jpg?type=w2 보조 돔의 지붕들

건축가 김석철은 그의 책 <세계건축기행>에서 소피아사원을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승리를 문명적으로 표출한 비잔틴 미술의 최고걸작', '인간이 이룬 최고의 내부공간', '빛의 미학'. 소피아사원이 없다면 아마 오늘날의 이스탄불은 그저 그런 무색한 옛 도시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이 사원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오늘까지 보존케 한 위대한 정복자 메메트 2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이슬람의 관용에서였 건, 아니면 도저히 그들의 기술로서 넘볼 수 없는 경외감에서였 건 간에.


소피아사원의 벽면 여기저기에는 코란의 글귀를 새긴 커다란 원형 검은색 캘리그래피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뒷면들이 싸구려 영화간판처럼 나무로 얼기설기 엮여 있는 것이 이채롭다. 어떻게 천오백 년 전에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돔형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1500년 동안 숫한 지진과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처럼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그 당시 이미 철저한 내진 설계를 했기 때문이란다. 화산재로 만든 물에 떠는 가벼운 벽돌을 사용해 건물의 하중을 줄이고 또 여러 보조 돔을 만들어 하중을 분산했다는 이야기. 이층 창틈으로 들여다본 보조돔의 자태가 블루 모스크와 어울려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나 보인다.


20170401_112841.jpg?type=w2 블루 모스크 내부
20170401_112824.jpg?type=w2 블루 모스크 내부 돔들

이어 둘러본 장대하고 화려한 블루 모스크 내부. '쏘피아의 변형, 진부한 보통건축, 자기 과시를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는 김석철의 폄하는 좀 과한 것 같다. 소피아에 비해 감동이 덜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 또한 오스만제국의 기념비적인 건축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블루 모스크(정식명칭 : 술탄 아흐메트 자미)는 순전히 술탄 아흐메트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지어졌다. 매주 개조된 소피아사원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자존심 상한 술탄 아흐메트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메흐메트 아가에게 명하여 하기야 소피아를 능가하는 모스크를 짓게 한 것이다(1616년 완공).


규모와 화려함에서야 소피아사원를 능가할 수 있었지만 독창성과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소피아사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석철이 <소피아의 아류>라고 폄하한 것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것 잘 안 가린다. 제 눈에 더 화려하고 좋아 보이면 되지. 만일 이 건물을 오스만의 대 건축가 시난(미켈란젤로보다 더 위대하다고 터키인들은 주장한다)이 지었다면 어땠을까? 천하의 시난 역시 소피아사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수많은 모스크들이 이를 말해 준다.


시리아와 북아프리카의 하이포스타일(hypostyle)의 모스크나, 이란의 이완식 모스크와는 달리 오스만 튀르크의 모스크는 중심 돔이 여러 개의 반돔으로 둘러 쌓이는 모양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전적으로 소피아사원의 영향이다. 오스만제국의 대부분의 모스크들은 크던 작던 소피야사원의 오름(새끼 화산)들이 아닐까? 어쨌든 블루 모스크가 있어 소피아사원의 존재가 더욱 빛나고 두 모스크의 아름다운 경쟁적 자태는 이 도시의 상징이자 사람들을 이 도시로 불러 모으는 최고 자산임은 말해 무엇하리.


20170401_153124.jpg?type=w2 황금각을 가로막았던 쇠사슬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고고인류학 박물관이 보이길래 잠시 둘러본다. 건물이 여러 채로 분산되어 있고 건물 내에 엘리베이터 시설도 없어 무릎이 좋지않은 아내가 돌아다니기 무척 힘들어한다. 알렉산더의 석관 등 몇 가지 유명한 유물들이 있다지만 우리는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때 황금각을 가로막았던 유명한 쇠사슬과 그림 앞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잠시 머물다가 다른 곳은 다 둘러보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채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