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금각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지
오늘따라 하늘은 더욱 맑고 피부에 와닿는 아침 공기는 차갑지만 싱그럽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세먼지 걱정부터 하며 잠을 깨는 우리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깨끗한 하늘과 공기이다. 여기 정말 이스탄불 맞아? 이스탄불의 4월은 으스스하고 사흘 디리 비가 온다 했는데! 옷을 한 두 가지 더 껴입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심호흡하듯 즐기며 다시 '도시로'나간다. 오늘 아침은 톱카프궁전 박물관이다.
널따란 궁전 입구 마당에는 아직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도 듬성듬성 많지 않다. 오른편에 시난이 만들었다는 술탄의 궁전요리 취사장의 청동 굴뚝들이 하늘을 향하고 솟아 있고 궁전 마당에는 아름다운 오스만스타일의 건물들이 펼쳐진다. 그런데 예상외로 궁전은 검소하다. 이 궁전이 천하를 호령하던 오스만제국의 궁전 맞나? 여기저기 박물관답게 진귀한 보물들이 전시되고 화려한 켈리그라피들도 눈에 띄지만 내가 찾고 있는 메메트 2세의 그 유명한 초상화는 보이질 않는다. 내가 잘 못 찾은 건가? 아니면 어디 깊숙한 곳에 따로 감추어져 있는 걸까?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찾던 젠틸레 벨리니의 <메메트 2세 초상화>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단다. 무식하기는!
3개의 문이 있고, 디반의 방이 있고, 어쩌고 여행 책자에서 읽은 기억은 나지만, 가이드도 없이 이곳저곳 몇몇 건물들을 배회하다 우리가 마침내 찾아낸 곳은 보스프러스 해협이 눈 아래로 펼쳐져 있는 카페 언덕. 언덕 아래에는 멋진 노천카페 <Konyali>의 모습이 보이고 그 주변엔 사람들이 와글와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톱카프 궁전의 가치는 할렘이나 수많은 소장 보물들에 있는 것이 아니고 보스프러스해협과 금각만(Golden Horn), 마르마라 해가 만나는 높다란 탁월한 입지와 뛰어난 전망에 있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에 서서 해협을 바라보니 나도 잠시 술탄이 된 기분이다.
할렘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포기하고 톱카프궁정을 나와 처음으로 전차를 타고 술탄 아흐메트역에 내린다. 여러 책에도 소개된 떡갈비 맛집(술탄 아흐메트 쾌프네)에서 소고기 케밥과 양고기 케밥을 주문하는데 비로소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케밥맛이다. 식당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줄을 서는데 값도 비교적 저렴하다. 여행지에서 맛집 찾아다니지 말라는 나의 여행규칙을 어긴 보람(?)이 있다.
점심을 마치고 우리가 찾은 곳은 피에르 로티(Pierre Loti) 언덕, 이스탄불을 찾는 사람들이면 꼭 한번 찾는다는 피에르 로티언덕을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에미뇌뉘 역까지 트램을 타고 가서 99번 버스를 갈아타고 20~30분을 더 가야 한다. 버스를 타보니 비로소 악명 높은 이스탄불의 교통정체를 실감한다. 발 디딜 틈 없는 버스는 가다 서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이웹(Yeyup)이라는 조그만 도시에 우리를 내려준다. 이웹의 술탄 모스크 앞엔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온통 사람들 물결로 난리다.
무슨 축제라도 있는 날인가? 우리 같은 외국 관광객은 거의 없고 모두 현지인들 판이다. 정말 튀르키예 냄새가 푹푹 난다. 이곳저곳에서 남대문 시장처럼 상인들이 고래고래 호객행위를 하고 있고, 새까만 차도르를 드룬 튀르키예 여인네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동양인은 우리 둘 뿐, 황송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는 듯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웹 술탄 모스크는 대단히 유명한 모스크란다. 무하마드의 친구 이웹이 성전 중 이곳에서 전사하였는데,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모스크를 지었단다. 역대 술탄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가질 정도로 이곳은 튀르키예인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며, 종교행사 등으로 사람들이 항상 붐빈단다. 때로는 무식한 것도 약(?)이거니, 너무 알려고 해도 골치 아프다.
피에르 로티(Pierre loti) 언덕을 오르는 케이블카 정거장을 겨우 찾아 도착하니 줄이 100m가 넘는다.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려 겨우 올라간 피에르 로티 좁은 언덕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이다. 아니 피에르 로티 언덕이 현지인에게 까지 이렇게 유명한 곳인가? 사실 피에르 로티는 프랑스 출신의 작가 이름이다. 그가 이곳 언덕에 있는 찻집에 자주 오고 여기서 글도 쓰고 해서 이곳 이름이 그렇게 불린단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야외카페 테이블에는 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앉을자리가 없다. 대부분 젊은 선남선녀 카플들, 셀카로 사진을 찍고 야단들이다. 여기가 유명한 데이트 장소인가? 어쨌든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금각만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금각만의 풍경이다.
시오노 나나미도 이스탄불에 올 때마다 이곳엘 들른다고 했지! 나 역시 순전히 그의 책을 보고 이곳까지 왔다. 그러고 보니 케이블카 정거장 안에 걸려 있던 오래된 그림 속의 풍경과 똑같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도 저 모습 그대로였겠지? 저 언덕 너머로 70 척의 배를 하루 밤새 금각만으로 옮겨 전세를 단번에 뒤집는 메메트 2세의 함대 깃발이 저 멀리 보이는 것만 같다.
우리는 30여 분 동안 차 한 잔을 마시며 금각만을 바라보는 감격을 즐기다가 더 이상 추위를 감당하지 못해 하산한다. 그런데 뜻밖에 하산은 케이블카 대신 합승버스(돌무쉬)를 타니 금방이다. 이웹 광장 한 곳의 꽤 괜찮은 현지인식당에서 까만 차도르를 두른 젊은 여성들 틈에 끼어(그녀들은 검은 차도르만 썼지 수다 떠는 모습은 한국여자들과 똑같더라) 느긋한 저녁을 먹고 돌아올 때는 버스도 막히지 않고 생생하게 달린다. 이스탄불의 대중교통은 꽤나 편하고 잘 연결되어 있다. 값도 싸고. 단지 막힐 때는 교통지옥(나중에 체험한 일이지만) 임을 감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