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나날 속에 작은 행복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억지스럽게 핑계를 붙여 행복하다고 우기게 되진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서 김종원 작가가 '모든 것들에는 빛나는 부분이 있다' 라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별 것 아닌 것들이 생각해 보면 의미가 있었고, 당연한 것이라는 건 없었다. 어떤 일이든지, 아니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 <우울 속 행복> 브런치 북을 쓰면서 얻은 교훈이다.
늘 비판적이고,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기쁜 일에 덤덤했고, 힘든 일에도 크게 울지 않았다. 모든 일이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고, 시간이기에 그렇게 신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 때문일까. 사고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다들 신나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을 진행시키려 할 때 찬물을 끼얹듯 상황을 정리하며 일에 대한 단점, 부작용들을 말하며 신중해지길 바랬고, 누군가가 잘 되면 축하하기 이전에 질투가 먼저였던게 사실이다.
그래왔기에 감사보다는 원망과 무기력 그리고 냉정함으로 매사를 대했다.
처음 시작한 감사일기도 '며칠 하다 말겠지, 뭐' '양식이나 만들어서 인스타에 올려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이 브런치 북도 몇몇 주위 지인들에 대한 감사함을 적고 마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감사한 지인들 외에도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침에 밝은 햇살이 내 기분도 비춰주는 것 같아 행복해졌고, 비가 오는 날은 그 분위기에 취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길을 거닐다 향기로운 꽃내음에 미소가 지어지고, 가게 문을 잡고 기다려주시는 이름 모를 나보다 몇 초 먼저 들어가신 분에게 받은 에스코트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답변에 감동이라며 하트를 잔뜩 보낸 지인의 문자, 글쓰기의 자료로 쓰라며 시간을 내어 책을 챙겨 보내준 작가님의 택배가 오늘의 나를 또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하루에 3가지씩 쓰는 '오늘의 감사한 일'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처음에는 그 세 가지 조차 채우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여유공간이 없어 더 적지 못해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그동안은 막연히 평소와 다른 이벤트에서만 생각을 해서 쓰려고 했기에 노트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 눈앞에 벽이 있는 것 마냥 난감하고 막막했었나 보다. 그 벽을 허무니 이렇게 많은 쓸거리가 있었는데 말이다.
무엇이 이렇게 한 순간에 나의 생각을 바꾸어 주었는지, 왜 이제야 밝은 내 모습을 알려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던간에 이렇게 변화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고마운 일은 내가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루의 일정을 시간별로 가득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지만,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모두 취소하고 나를 위해 휴식을 취하는 일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싶고, 단체 채팅장에서 사람들에게 만나자고,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왜 이렇게 자연스러워졌는지 신기하다. 지금 내 몸이, 나의 감정과 생각이 어떠한지 살피고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것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놀이 같아서 재미있기까지 하다.
요가에선가 들었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비관적인 성향이라 고객을 모집하기 위한 컨셉일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관계자분들께 무지한 제 태도에 사과드립니다.) 아직까지 정확하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책과 사람들이 수시로 언급하는 한 발짝 떨어져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게 이런 거라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꼭 했으면 좋겠다. 내려놓음, 편안함, 행복함, 감사함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단계라 그런 변화가 더 크게 와닿아 감동적인 건지도 모르겠지만, 우울의 터널 깊은 곳까지 들어갔던 나에게는, 이 모든 게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빛이고, 생명의 물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종교집단에서 간증하는 기분이지만, 필자는 종교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울증과 공황, 불안, 불면에 대한 약을 먹고 있고, 그 약의 양은 늘어가고만 있지만 그럼에도 나아지고 있는 모습에 감사하고 희망이 생긴다. 오늘도 잠시나마 집 밖을 나섰고,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으니 이 작고 작은 빛을 따라가면 빛의 크기가 커질 거라 믿는다. 터널 속을 걷다 벽을 만나면 또 이전처럼 허물고, 넘어갈 힘이 생겼다. 약도 줄어들고, 예전의 활기차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생겼다. 언젠간 이 터널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다닐 그날을 위해 힘들고, 슬프고, 무섭지만 그래도 발을 떼어 한 걸음 나아가본다. 저 빛 속에서 날 부르는 사람들의 소리가 이제는 너무나 명확하게 들린다.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시고 포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마음 써 주셔서.
꼭 이겨내고 받은 것 이상으로
베푸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사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사라질까
아직은 무섭고 두렵거든요.
그러니 조금만 더...
간절하게 부탁드려요.
-선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