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펴는 책, 나는 덮는 불안을 넘어서
“엄마, 이거… 너무 어려워.”
“어렵긴 뭐가 어려워. 너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글씨도 빽빽하고, 문제도 많고… 그냥 싫어.”
“그럼 뭐가 좋은데?”
“몰라. 근데 이건 하기 싫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대체 뭘 원하니… 이건 그래도 제일 많이들 푼다던 책인데.’
그 교재는 내가 아이 몰래 유튜브 후기를 열 개 넘게 보고, 블로그 비교글까지 읽어가며 고른 ‘베스트 교재’였다. 딱 펼쳤을 때, 아, 이 정도는 풀 수 있겠다— 싶었던 난이도. QR 강의도 있었고, 해설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성취도 높은 중학생들이 많이 선택한 교재’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두 장 풀고 그만뒀다.
“재미없어.”
“틀린 문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다 풀지도 않았는데 지친다.”
그날 밤, 속이 쓰렸다.
‘또 실패한 걸까?’
‘그럼 이 책은 누구한테 맞는 거지?’
‘나는 도대체 뭘 기준으로 책을 고르고 있는 걸까?’
다음 날 아침, 학교 가기 전 책상 위에 교재가 그대로 놓여 있는 걸 봤다. 속으로 혼잣말이 나왔다.
‘이건 분명 좋은 책이야. 그런데 왜 네 손은 자꾸 닫는 걸까?’
그리고 거기서 조금 늦은 자각이 왔다. 나는 ‘좋은 교재’를 찾았지만, 정작 아이는 그 책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며칠 뒤, 아이와 함께서점에 갔다.
“그럼 네가 해보고 싶은 문제집 하나 골라봐.”
“내가 골라도 돼?”
“응. 대신 다 풀겠다는 약속은 하고.”
아이의 손이 닿은 건 생각보다 얇고, 단순하고, 뭔가… 초등 고학년용 같은 느낌도 드는 책이었다.
‘진짜 이거 할 거야?’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책은 며칠 사이 거의 반을 넘겼다. 혼자 푸는 날도 있었고, “이거 이해 안 돼”라며 나를 불러 세우는 날도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이 이전보다 훨씬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헷갈렸다.
‘이 책, 수준은 괜찮은 걸까?’
‘괜히 쉬운 거 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닐까?’
그러다 문득, 책을 펴는 사람은 나 아닌 아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교재를 통해 아이가 ‘다시 문제를 마주하는 감각’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조금 이해했다.
내가 고른 ‘좋은 책’은 아이에게는 닫힌 책이었고, 아이가 고른 ‘쉬운 책’은 공부의 문을 다시 여는 열쇠가 되었다는 걸.
공부는 결국, ‘난이도 높은 문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펴보는 책 안에서 싹튼다.
좋은 교재를 고르려 하지 말자. ‘오늘도 펴볼 수 있는 책’을 고르자.
혹시 지금, 책꽂이에 꽂혀만 있는 교재가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이 책, 지금 너한테 어떤 느낌이야?”
“하기 싫어?”
“그럼 좀 더 가볍게 시작해보는 책, 같이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