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이야기

운카이 테라스를 보지 못한 두 번의 봄

by LINEA


여행의 성공 기준이 '목적'에 있다면 나의 토마무 여행은 실패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운해 대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경험했다.

토마무에서의 두 번의 봄 기록이다.




우연히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게 된 풍경 사진.

운카이 테라스라는 곳이었다.

산 아래 넓게 펼쳐진 구름의 바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image.png 출처: 호시노 리조트 홈페이지


그렇게 홋카이도로 떠났다.



첫 번째 봄, 아무것도 없어서 더 좋았던 것들


토마무 리조트를 예약했다.

운카이 테라스 가는 방법을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다가, 테라스 개장 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쉬움이 컸지만, 풍경으로도 충분히 멋진 곳이기에 가보기로 했다.


도착한 날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산 속이라 한기도 느껴졌다.


batch_P20240430_183343918_681BD60A-FEA0-4511-B8AB-B3FE321ED5BB.jpg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토마무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통유리 데크가 리조트 건물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비를 맞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었다.


batch_P20240501_080801851_2FCC9077-F01F-4831-918B-2DF2C7EA7952-tile.jpg


유리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이 빗물에 젖어 더 짙은 초록빛으로 보였다.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상점가에 도착하니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비에 젖은 나무 냄새와 불 냄새가 섞였다. 사람들이 손을 녹이며 서있었다. 나도 잠시 멈춰 섰다.


batch_P20240430_190350915_4CE19FFE-4849-4CBE-8E79-F8145B923DA5.jpg 은근히 따뜻하다


몸을 녹이고 싶어 따뜻한 음식을 찾았다. 수프 카레를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메뉴판을 보는데 'Only Cash'라는 문구가 보였다. 카드만 챙긴 나는 당황했다.
남편과 서로의 지갑에서 동전까지 털어 밥값을 모았다.


수프 카레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국물을 한 입 떠먹으니 손끝까지 따뜻해졌다. 오늘 같은 날엔 이런 음식이 필요했다.


저녁 8시, 물의 교회로 향했다.
하루에 한번만 입장이 가능해서, 입장 시간이 가까워 질수록 사람들의 줄이 길어진다.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앞쪽으로 유리벽 너머 물과 십자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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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천천히 유리문을 열었다.
소리 없이, 천천히.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물소리가 들렸다. 철골 십자가가 물 위에 서있었다.
조명이 물에 반사되어 흔들렸다.


경건함 속에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간간이 사진 찍는 소리만 들렸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을 만난 것만으로도, 운해를 못 본 아쉬움은 충분히 상쇄됐다.


하루를 마무리하러 기린노유로 향했다.

리조트에서 셔틀버스로 몇 분 거리에 있는 인공 온천이다.

미나미나비치(수영장)를 지나 노천욕탕에 들어갔다.


image.png 출처: 토마무 리조트 홈페이지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물은 적당히 뜨거웠다.

욕탕 가장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 나무들이 보였다. 빗소리가 들렸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몸이 천천히 풀렸다.


제일 가고 싶었던 운카이 테라스는 못 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시즌에 비해 볼거리는 없었지만, 자연을 경험한걸로도 충만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 봄, 공기가 좋은데?


1년 뒤, 이번엔 엄마와 토마무로 향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토마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작년에 못 본 운카이 테라스도.


일주일 전부터 운해 예보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운해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도 못 보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토마무는 자연으로도 충분한 곳이니까, 즐겁게 지내다 가기로 생각했다.


도착하니 확실히 시즌 개장이라 분위기가 달랐다.
잔디 위에는 양과 소가 노닐고, 즐길 거리와 먹거리도 풍성했다.
체크인할 때 운카이 테라스 20주년 기념 와인을 제공한다는 말을 들었다.


batch_IMG_3686.jpg 와인 마시다 말고 풍경사진 찍기 바쁜 엄마


로비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풍경을 바라보던 엄마는 말했다.

"강원도보다 좋은데? 크고 더 푸른 것 같아."


속으로 안도했다. "강원도랑 비슷한데 왜 일본까지 데려왔어?" 할까 봐 걱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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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익숙해진 덕분에 셔틀버스 대신 길을 따라 걸어 다녔다.
리조나레에서 시작해 기린노유까지, 천천히 걸었다.


batch_IMG_3736 2.jpg 산책하던 도중에 한 장


엄마가 자꾸 멈춰 섰다.
"엄마 뭐 찍어?"
"저기 나무 봐. 빛이 예쁘게 들어온다."


나한텐 그냥 나무였는데, 엄마가 가리키니까 보였다.
엄마는 엄마만의 속도로, 토마무를 즐기고 있었다.


저녁에는 엄마에게도 수프 카레를 보여주고 싶어 1년 전 그 가게를 다시 찾았다.

여전히 'Only Cash'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이번엔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둔 현금을 쓱 내밀었다.

엄마는 "야채가 듬뿍 담겨서, 맛있네."라고 했다.


자기 전, 운해 예보를 다시 확인했다.
내일의 발생 확률이 낮았다. '이번에도 못 보겠구나.'


batch_IMG_3752.jpg 이때까진 혹시..? 기대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곤돌라를 타러 갔다.

산 중턱까지는 토마무의 풍경이 보였다.
하지만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내렸다. 안개가 산에 가득했다.


batch_IMG_3743 2-side.jpg 안개가 낀 그날에도, 운해에 대한 설명은 계속되었다


엄마가 말했다.
"공기가 좋은데?"


실망한 기색 없이, 나를 토닥이던 엄마.

"네가 수고한 거 다 알아. 토마무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만으로도 충분해."


산에서 내려온 후 조식을 먹으러 갔다.

통유리 밖으로 나무가 가득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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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커피를 한 잔 더 가져왔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앉아있었다.

"여기라면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좋겠어. 커피랑 디저트랑 같이."

창밖을 보며 말하는 엄마.


미소짓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은 풍경이 아니라 엄마의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직원의 발견, 우리의 발견


토마무는 원래 겨울이 성수기인 리조트였다.
직원들에게 여름 시즌의 매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어느 날, 리프트팀 직원이 새벽 점검을 하다 운해를 봤다.
"오늘 운해도 멋있네요."


그 직원은 멋진 광경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고객들도 이걸 보면 기뻐하지 않을까? 운해를 보면서 커피 한 잔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운해를 상품으로 만들자 제안했다. 반대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일단 해보자고 설득했다.


리프트팀은 임시 카페를 운영해보기로 했다.
레스토랑 직원들에게 찾아가 커피 내리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스크린샷 2026-02-10 오후 4.15.57-side.png (좌) 임시 카페 운영 시절 (우) 현재의 운카이 테라스 / 출처: 호시노 리조트 홈페이지


2개월간 테스트를 했다. 900명의 고객이 다녀갔다.
고객 반응을 정리해 호시노 본사에 제안했다.

호시노 리조트는 직원들의 제안을 믿고 시설에 투자를 했다.

그렇게 운카이 테라스가 탄생했다. 토마무를 대표하는 여름 시즌 콘텐츠가 됐다.


리프트팀 직원은 운해를 고객과 나누고 싶어했다.

나도 그랬다. 엄마에게 토마무를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는 "공기가 좋은데?"라고 웃어주었고,
창밖을 보며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좋겠어"라고 말했다.

엄마가 내 수고를 알아주던 순간,
엄마가 토마무를 경험하며 지은 미소.


나는 토마무에서 '서로를 헤아리는 시간'을 발견하고 있었다.



세 번째 계절, 언젠가 함께 올 그날


토마무에서의 경험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했다.


함께 걷고, 따뜻한 국물을 나누고,
"공기가 좋은데?"라고 웃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은 여행이 되는거니까.


운해는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그때는 아이와 잔디 위를 달려보고,
엄마가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 새로운 시간을 함께 보낼거다.


토마무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batch_IMG_1396.jpg 사계절 머그 굿즈도 귀엽다. 리조트가 곧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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