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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시조가 된 게릴라, 비리아투스

한 국가의 시조는 그 국민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by 아옌데

오늘날 대부분의 포르투갈 사람들은 무척 조용하고 목가적인 삶을 영위한다. 서유럽 전반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순박하고 겸허한 사람들이라는 데에 거의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건 어쩌면 36년이나 이어진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오랜 독재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자조적인 태도가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들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무혈 민주혁명을 완성했던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저력을 품고 있기도 하다. 포르투갈인들이 갖고 있는 자긍심은 대항해시대의 영광과는 별개로 이미 그보다 훨씬 더 옛날부터 그들의 정신적 시조나 다름없었던 루지타니아의 영웅, 비리아투스에게 상당 부분 기초를 두고 있다.


'루지타니아'는 현재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 서쪽 땅의 옛 지명으로, 현재까지도 루지타니아는 포르투갈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치 대한민국이 고려라는 국명으로부터 유래된 '코리아'라는 영문명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기원전 1세기 중순, 유럽 대륙에서 로마가 한창 그 세력을 확장해 가던 무렵이었다. 루지타니아 지방 원정 나선 로마군은 시골 목동 출신의 만인 지도자 한 명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다. 막강한 로마 제국 군단을 곤경에 빠트지타니아 지도자가 바로 비리아투스였다.


포르투갈 비제우 시에 세워진 비리아투스의 동상


그 당시의 로마 군대는 두말할 필요 없이 천하무적이었다. 체계적인 군사훈련, 풍부한 전쟁 경험, 운용 가능한 군인과 무기의 숫자나 물자 보급량 등등 어느 방으로가히 그 당시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그에 비하면 비리아투스가 이끄는 루지타니아 군대는 농부와 어부, 목동 등 평범한 사내들로 구성된 한 줌의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하지만 비리아투스는 로마군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로마군보다 더 앞있는 유일한 장점은, 목동 출신답게 그 지역의 지리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로마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차례 증명되었듯이, 게릴라 전술은 비대칭적으로 거대한 전력을 가진 적군을 상대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게릴라(Guerrilla)'의 어원은 루지타니아의 이웃이자 앙숙인 에스파냐에서 쓰는 카스티야어에서 유래했는데, 직역하면 '작은 전쟁'이라는 뜻이다.


게릴라 전술은 양 진영의 군대가 드넓은 초원이나 바다에서 정면으로 맞붙어 전면전을 벌이는 전통적인 형태의 전투를 거부하고, 울창한 숲이나 험준한 계곡처럼 넓은 시야가 확보되기 어려운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소규모의 전투원들이 여러 지점에서 공격하여 짧은 시간 안에 적군을 공격하고 물자를 소모시키기를 반복하는 형태를 띤다. 전투를 반복할수록 공격당하는 쪽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피해가 점점 커지고 그만큼 사기도 꾸준히 떨어진다. 이와 반대로 공격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적은 손해만으로도 많은 전공과 전리품을 거둘 수 있다. 비리아투스는 로마군을 상대로 바로 이런 점을 십분 발휘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비리아투스의 대활약에 로마군은 속절없이 대패를 거듭했다. 심지어 루지타니아의 게릴라 전사들은 소규모 전투에서 이겼던 게 아니었다. 기원전 140년경에는 약 4천여 명의 대규모 로마 군단을 물리치고 로마 법무관을 사로잡는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로마군의 기를 꺾으며 세력을 키운 덕택이었다. 비리아투스는 기원전 147년부터 장장 8년 동안이나 로마 침략군에게서 루지타니아를 지켜냈다.


결국 실리주의를 추구하는 로마가 택한 해결책은, 암살이라는 비열하고 추잡한 방법이었다. 도저히 그를 전쟁에서 이겨낼 도리가 없었던 로마 원로원은 기원전 139년에 마침내 집정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를 이베리아로 파견했다. 루지타니아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략가 카이피오 사령관은 새로 부임하자마자 기나긴 전쟁을 단번에 끝내버렸다. 그는 비리아투스의 부하들 중 몇 명을 값비싼 재물로 매수했고, 비리아투스가 자는 사이에 살해할 것을 지시했다.


비리아투스의 죽음. José de Madrazo, 유화, 1807년 作


이베리아 반도가 낳은 위대한 영웅 비리아투스는 그가 믿고 가까이 두던 그의 심복자 전우에 의해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역사가 디오도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 배신자들의 이름은 디탈코, 미누로 그리고 아우다였다. 그들은 큰 보상을 기대하면서 부리나케 로마군 진영으로 달려가 비리아투스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그들이 한 가지 간과했던 게 있었다. 로마인들은 언제나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대의명분에 대한 집착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카이피오 사령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은 "로마는 배신자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궤변이었다. 결국 세 명의 배신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나가 효수를 당했다.


유능한 장군이자 정신적 지주를 잃은 루지타니아는 타우탈루스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워서 계속 움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결국엔 일 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는 완전히 로마 제국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이때부터 루지타니아 지방은 로마 문화권에 편입되어 라틴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 중 하나인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되었고, 당시 건설된 수많은 로마 양식 건축물들이 귀중한 역사유적지이자 관광명소로서 포르투갈 곳곳에 남아있다.


고대 4대 문명 발상지나 그리스, 로마에 비해 문화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서유럽 지역이 로마에게 귀속당했던 역사는 치욕이 아니라 오히려 본격적인 서구 문명 발전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포르투갈인들이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정신적 시조로 인정하는 대상은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 제국이 아니라, 작지만 강했던 루지타니아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비리아투스다.


한 국가가, 한 민족이, 한 사회가 어떤 정체성 하나에만 한정되어 묶여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각각의 문화권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사상은 엄연히 존재하며, 게다가 그것이 '기득권에 대한 저항정신'이라면, 이는 분명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고귀한 가치를 지닌 사상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그에 걸맞은 위대한 영웅을 가진 나라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P.s


2008년, 포르투갈의 한 천문학 연구진은 지구로부터 117광년 떨어진 유니콘(외뿔소) 자리에 위치한 'HD 45652' 행성계를 발견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에 국제천문연맹 IAU는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 세계의 110여 개 국가들이 참여하는 총회를 열었고, 몇몇 태양계 외행성(Exoplanet)들에게 공식적인 이름을 명명하기로 했다.


포르투갈 연구진이 발견했던 행성계 'HD 45652'의 항성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 'HD 45652 b'의 고유 명칭을 정할 권리는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주어졌다. 수많은 후보 이름들이 경합하고 수천 명이 참여한 투표 끝에, 이 행성계의 중심 항성의 이름은 [루지타니아]로, 그리고 그의 주위를 도는 행성의 이름은 [비리아투스]로 결정되었다.


목숨 바쳐 루지타니아를 수호하고자 했던 비리아투스의 영면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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