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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물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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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Feb 15. 2024

고대 그리스의 목욕문화와 건축공간

고대의 물 저장 및 분배 시스템과 활용 방식

수도꼭지에서 물이 콰르르 흘러내리는 걸 유심히 바라보신 적 있나요? 가만히 보다 보면 지금 흐르는 이 물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지금 내가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해요. 고층건물이 많은 요즘, 이 높이에서 깨끗한 물을 원하는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프리다이빙을 하는 실내 잠수 풀에 가보면 그런 생각이 더 크게 와 닿습니다. 프리다이빙은 바다에서도 할 수 있고 잠수 풀에서 할 수도 있는데, 프리다이빙 교육 용어로 자연공간인 바다를 ‘개방수역’이라 부르고, 잠수 풀과 같은 인공공간을 ‘제한수역’이라 부릅니다.

프리다이빙을 위한 제한수역 잠수 풀은 깊이에 따라 4-5미터에서부터 수십 미터까지 다양하게 있어요. 국내에서 가장 깊은 잠수 풀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딥스테이션’으로 현재 깊이 36미터이며 수온은 약 27-29도인데, 원하는 깊이를 파는 것, 약 5,500톤에 달하는 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계획하고 시공으로 구현하는 것, 이 많은 물을 담아 지탱하면서 데우고 정화하며 유지하는 시스템을 생각하면 건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용인 딥스테이션

오늘날 이런 최첨단 설비는 원래부터 이 수준으로 존재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엄청난 양의 물을 담는 건축물은 사실 물을 건물로 끌어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래 전부터 누군가는 깊이 고민했던, 그리하여 그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천 년에 걸쳐 꾸준히 발전해온 기술의 결과물입니다.

더 넓은 범위에서 바라보자면 역사적으로 문명이 세워지고 도시와 농경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수자원의 지속적인 운용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중해 환경의 기후처럼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란 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존을 의미했습니다. 이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물을 모으고 저장, 운반하기 위해 고급 수자원 관리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썼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자원 관리는 초기 미노아시대(기원전 3500년-2150년경)에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에 최초의 우물, 빗물 저장소, 분수가 등장했습니다(Angelakis et al. 2013, 2016). 이러한 기술들은 기원전 2900년-2300년경부터 상용됩니다. 수자원 관리는 건물, 지역, 도시, 국가 등 여러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을 텐데, 여기서는 건물로 물을 끌어들이고 담아 저장, 관리하는 기술에 좀 더 집중하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노아 인들의 빗물저장 및 분배 시스템

미노아 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위대한 청동기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미노아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고전기, 혹은 헬레니즘 시대의 도시들보다 1,000년 이상 앞서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물은 수처에서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관을 통해 수 킬로미터 이상을 걸쳐 운반되었습니다.

미노아 인들은 “궁전”이라고 불리는 다층 건물을 건설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이라고 부르는 이 건물에는 중정과 슬라이딩 도어, 외부 계단과 같은 특징들이 있고, 대부분 석재가 쓰였지만 부분적으로 목재가 보강재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궁전이라기보다 실제로는 올리브 오일, 와인, 곡물 등 대량의 생산품을 분배하는 곳에 가까웠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의 수도 시스템은 크레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테라코타 관을 통한 가장 복잡한 수자원 관리 시스템 중 하나가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견되는데요. 청동기시대 기술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 궁전에는 적어도 세 개의 개별 수도 관리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공급수로, 빗물 배수로, 오폐수로가 바로 그것입니다.(Graebling, D. (2021). Water management in ancient Greece: The Inopos reservoir on Delos.)

크노소스 궁전의 빗물 저장소와 오폐수 배수로
경사를 이용하여 빗물을 저장하기 위한 수로 시스템, 집수를 통한 침전물 제거 수조, 테라코타 관

이렇게 물을 관리하면 장점으로는 먼저 기후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게, 더 안정적으로 물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가 충족되고 나면 ‘가치’를 찾게 되잖아요. 일상에서 물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공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화장실, 부엌, 세탁실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물에 몸을 담그고 씻는 행위가 일어나는 목욕 공간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목욕문화와 건축공간

독일의 고고학자 트륌퍼(2020)는 고대 그리스에서 목욕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먼저 주택과 왕궁에서 개인적으로 목욕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목욕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됩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욕실’이 독립된 ‘실’로 구성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실은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는 대규모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뜨거운 물을 사용하고 가끔 공기를 데워 사우나처럼 땀을 흘릴 수 있게 했다고 추정합니다만, 고대 그리스 사회 전체에서 이런 시설이 일반적이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원전 432년-328년 그리스 북부의 올린토스(Olynthos) 유적지 86가구 중 27%, 기원전 167/166년-69년 키클라딕 섬 델로스(Delos) 유적지 89가구 중 14%에만이 욕실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집에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은 호화스러운 것로, ‘표준’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의 정설입니다.

그리스 필로스 네스토르 궁전의 욕조. 사진: Dan Diffendale

목욕이 이루어진 두 번째 경우는 체육시설에서입니다. 이 역시 요즘과 비슷합니다.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다 마치고 나면 얼른 씻고 싶어지잖아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체육시설에도 그래서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체육시설 유형에는 ‘김나시움’과 ‘팔라에스트라’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김나시움은 야외 공공 체육시설로 둘레가 약 360미터 정도 되는 마당이 있어서 주로 창던지기나 원반던지기를 할 수 있었고, 둘레를 따라 만들어진 트랙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 하는 사람들. 고대 그리스의 암포라, 아티카, 기원전 4세기.

고대 올림픽 경기 레슬링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한 팔라에스트라는 스포츠와 무예 교습/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면적은 66제곱미터(약 20평) 정도로 김나시움보다는 규모가 작으며, 레슬링과 같은 격투기 종목과 멀리뛰기, 복싱 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올림피아 김나시움.
그리스 올림피아 팔라에스트라.

이러한 체육시설은 일반적으로 야외마당(중정)을 가운데에 두고 콜로네이드라고 부르는 복도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콜로네이드는 기둥을 나열하여 만드는 열주랑, 즉 복도를 말하는데요. 이렇게 세운 기둥에 지붕만 덮으면 사방으로 실이 생기게 됩니다. 여기에 체육관, 탈의실, 욕실, 강의실, 식당 등을 구성한 것이죠.

평면도와 복원 예상도를 보시면 바로 이해가 되실 거예요.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의 도시 프리엔(Priene)에 남아 있는 김나시움 평면도에서 좌측 상단 모서리에 해당하는 실이 욕실입니다. 아직까지 여기 남아 있는 설비를 보면 물을 받아서 끼얹을 수 있게 낮은 수조가 배치되어 있고 수조 위로는 반원형 관이 보이는데, 이 관에 물이 흘러서 수조로 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운동 후에 어떻게 몸을 씻었을지를 상상해 보실 수 있으시겠죠?

그리스 프리엔 김나시움의 수조. 수조 위로 물이 흘렀을 것으로 보이는 관이 보입니다.

이런 체육시설에서 가능한 기본적인 목욕 시설 형태는 찬물로 세척하는 간단한 수조/욕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으로 찬물 목욕을 할 수 있는 탕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뜨거운 목욕은 드물었고, 있어도 땀을 낼 수 있는 사우나 형태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그리스의 22개 체육관 중 목욕 시설이 있는 것은 13개로 확인되었습니다만, 높은 확률로 이런 목욕시설은 아마도 체육시설에 표준이었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예상합니다. 훈련 후 청결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목욕이 이루어진 세 번째 경우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건축물로서 ‘발라네이아(Balaneia)’라고 하는 공중목욕탕에서의 목욕이 있습니다. 발라네이아에서는 개인부터 집단적인 목욕까지 다양한 형태의 목욕이 가능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여 목욕하는 형태와 뜨거운 공기를 사용한 목욕 형태가 포함됩니다. 발라네이아에서 찬물은 손과 발을 씻는 데 사용되었으며, 몸을 깊이 담그는 목욕에 찬물은 예외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공중목욕탕은 주로 독립적인 개별 건물로 존재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큰 규모의 복합건축물에 통합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라 해도 항상 독립적으로 접근 가능한 공간 단위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스 목욕 문화는 제우스 신전이 있는 올림피아에서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400년경부터 있었던 공중목욕탕 발라네이아는 꾸준히 설비시설을 개선하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첫 번째 발라네이아인 좌욕시설은 간단한 샤워시설을 갖춘 11개의 작은 좌욕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로마자로 II 라고 표기된 공간이 바로 좌욕장입니다. (평면도에서 변기처럼 생겼는데, 변기가 아니라 욕조입니다.) 목욕을 하는 사람이 하반신을 담그는 것인데요. 이 욕조에서 따뜻한 물은 수동으로 그릇을 사용하여 목욕하는 사람이 직접 들이붓거나 수행원이 부어주었고, 사용을 마친 물은 욕조 바닥의 배수구에 모아졌으며 손으로 배수해야 했습니다. 올림피아의 목욕시설에서는 욕실 벽을 따라 좌욕 욕조가 배치되었지만, 다른 목욕시설에서는 원형의 탕(톨로이)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 경 올림피아의 발라네이아 평면도. (a가 우물, e가 물탱크로, 여기서 물을 길어왔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이미지: Thibaud Fournet


고대 그리스 방식으로 지어진 로마 욕장. 그리스 테살로니키.

발라네이아 대부분은 도시나 교외 지역에서 지어졌습니다. 현재 지중해 지역 전체에서 70개의 공중목욕탕이 알려져 있으며, 그 중 39개가 리비아, 키프로스, 이집트 등 지중해 동남쪽에서, 22개는 터키, 그리스와 같은 지중해 동북쪽, 9개가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서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의 목욕 관련 연구는 사회문화적 개념, 관행, 그리고 전통에 대한 중요한 증거 위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주제는 목욕 관행과 표준, 그리고 그들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와 필요한 기술 및 자원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연구는 시대별 발전과 지역 간의 차이, 그리고 정치, 사회, 문화적 요인이 변화와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합니다. 이러한 그리스 목욕 문화의 재평가는 최신 발굴 방법과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의미, 의의의 발견, 이전 발굴의 비판적 재평가, 그리고 다양한 문화 간 연구를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목욕 관행을 다른 잘 알려진 목욕 문화와 비교함으로써, 연구자들은 목욕의 사회적, 문화적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합니다.

한편, 고대 그리스인들은 샤워 시설 또한 갖추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 분배 시스템을 활용하여 키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도록 만든 것인데요. 유물들에 그려진 그림에서 이들이 어떻게 샤워를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투스카니에 남아 있는 샤워시설.

물 관리가 전자동 시스템은 아니었기에 누군가는 여전히 물을 데우고, 퍼 날라야 했던 고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갖추었던 시설은 외형상에서 오늘날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아서 그때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가끔 다이빙풀 시설에 따라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조금 늦게 나오거나 물비누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 5초 정도 속으로 투덜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역사를 공부하면 그런 불만도 쑥 들어가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목욕 문화에 관한 고고학 연구도 1960년대에 들어서야 활발하게 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건축 설비 시스템 또한 역사의 시간에서 보면 아주 최근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지금 누리는 것들이 원래부터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

다음 글에서는 로마 시대의 수영, 프리다이빙 문화와 물과 관련된 로마의 건축물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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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이빙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 인스타그램: @alohafreedive

- 알로하프리다이브 홈페이지: https://www.kimwolf.com/freedive

(**실제 프리다이빙 강습의 경우, 역사 수업은 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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