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라 욕장을 중심으로
물이 있는 삶은 축복입니다. 건물에서 몇 시간만 단수가 되어도 화장실 물을 내리지 못하고, 씻을 수도 없는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설거지도, 빨래도 할 수 없습니다.
당장 마실 물이 없어도 난감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 운전을 하다 목이 마를 때, 물 한 모금만 있어도 살 것 같지만 그 순간 입을 축일 그 무엇도 없다면 그때부터 초조한 고통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필요가 두 팔 안에서 해결되는 도시의 삶. 아무리 사소하게 느껴져도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시간을 타고 이루어내고 축적해 온 성취입니다. 지난 글에 이어 로마인들이 만들어낸 물의 건축을 대욕장을 실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수도교를 건설하여 일상 속으로 물길을 냈습니다. 건축과 토목 기술이 몫을 했습니다. 수도교는 가정용 물 공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여러 용도 중에도 특히 로마인들의 목욕을 향한 열정을 현실적으로 공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자들 중에서는 고대 로마에서 수도교가 건설된 "가장 큰 유일한 이유"가 "목욕"이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까요.(Hodge, A.T. (1992). Roman Aqueducts & Water Supply. London: Bristol Classical Press. p.6)
로마인들의 목욕에 대한 열정은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Deming, D. (2020). The Aqueducts and Water Supply of Ancient Rome. Ground Water, 58(1), 152.) 고대 그리스의 공공 목욕 시설은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약 75개에 달하는 관련 구조물이 확인되었습니다.(Rogers, D. K. (2018). Water culture in Roman society. Brill Research Perspectives in Ancient History, 1(1), 1-118. p.32) 기원전 33년, 로마에는 170개의 욕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는 제국의 정점에 1,000개에 가깝게 증가합니다.(Carcopino, J. (2003). Daily life in ancient Rome: the people and the city at the height of the empire. Yale University Press. Chicago. p.254)
로마에서 카라칼라 욕장의 공식 라틴 명칭은 '테르마에 안토니니아나에(Thermae Antoninianae)' 혹은 영어로는 '안토닌 욕장(Antonine Baths)'이었습니다. 카라칼라 황제의 성(姓)인 안토니누스(Antoninus)에서 따온 것입니다. 참고로 196년에 황제가 되었을 때 카라칼라 황제의 전체 이름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Marcus Aurelius Severus ANTONINUS Augustus)"였어요. "아우구스투스"는 타이틀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로마 황제들이 이름에 카이사르(Caesar)나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타이틀을 더했습니다.
카라칼라 황제는 화가 많고 무서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제와 아내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것으로 악명 높지만, 그가 완성한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욕장은 로마 건축의 위대함과 화려함을 증명하는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카라칼라 욕장은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마르키아 수도교(Aqua Marcia) 혹은 안토니니아나 수도교(Aqua Antoniniana)에서 끌어오는 물 외에도 필요한 물을 그때그때 보충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샘을 활용했습니다.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인데, 밤 동안 물을 충분히 받아 놓고 매일 운영 시간 동안 추가적인 유량을 채우는 시스템이었습니다.(Wilson, A. (2008). 'Hydraulic Engineering and Water Supply' in Engineering and Technology in the Classical World, ed. Oleson John Peter, 285–318. p.305.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카라칼라의 주요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24,000제곱미터(약 7,260평 혹은 2.4헥타르), 정원을 포함하여 건물을 둘러싼 땅은 90,000제곱미터(약 27,225평 혹은 9헥타르)에 달합니다. 카라칼라 욕장의 하루 최대 수용인원은 10,000명 정도였다고 추정합니다.(Bruun, C. (2013). 'Water Supply, Drainage and Watermill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Ancient Rome, ed. Erdkamp Paul, 297–313. p.310.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일례로 부산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점에 있는 대규모 스파의 최대 수용인원이 일일 1,300명이라고 하니, 비교해서 짐작해 보면 카라칼라 욕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볼 수 있습니다.
카라칼라 목욕탕에는 수영장(나타티오, natatio)부터 온탕(칼다리움, caldarium), 미온탕(테피다리움, tepidarium), 냉탕(프리기다리움, frigidarim)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목욕시설이 완비되어 있었습니다.
온탕은 바닥 아래 중앙난방 시스템 '히포카우스툼'으로 데워졌습니다. 물이 흐르는 바닥 밑으로 지하에 터널을 만들고 불을 때어서 물을 데운 것입니다. 이 터널은 폭이 6m(20피트) 정도로 길이는 4km(2.5마일)에 이릅니다. 프라에푸르니아(Praefurnia)라고 하는 벽돌로 만든 아궁이 50개가 있었으며, 수백 명의 노예들이 목욕물을 데우기 위해 나무로 불을 땠습니다.
카라칼라 욕장의 물을 데우기 위해서는 하루에 약 10톤에 달하는 나무가 필요했습니다.(The Baths of Caracalla Explained, Available at: https://www.atouchofrome.com/baths-of-caracalla-explained.html, Accessed on: 10 Mar., 2024) 자연스럽게도, 목욕물을 데우기 위하여 나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 또한 황제의 책임 중 하나였습니다. 아래는 카라칼라 욕장 아래에서 물을 데우기 위해 조성된 긴 지하 터널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로마의 공학자와 건축가들은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용된 물을 처리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했습니다. 폐수가 로마의 하수도 시스템을 통해 흐르는 동안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또한 고안해야 했습니다. 배수 시 욕장에서 흘러나가는 모든 물은 주변 화장실을 지나가도록 고안, 활용되었으며 이후 로마의 주요 하수로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까지 흐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클로아카 막시마는 기원전 6세기, 로마의 다섯 번째 통치자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 기원전 616년에서 579년 사이 통치)에 건설되었으며, "포룸(Forum) 주변, 도시의 낮은 지역과 언덕 사이에 있는 계곡들의 물을 배수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Livius, T. 1896. The History of Rome by Titus Livius, Books I and II, translated by D. Spillan. Philadelphia, Pennsylvania: David McKay.)
공사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가 시작한 공사는 3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건설 노동자였던 하층민들은 일이 고통스럽고 힘들어 자살하는 일도 흔했다고 합니다.(Pliny the Elder . 1857. The Natural History of Pliny, Vol. 6, translated by John Bostock and H. T. Riley. London: Henry G. Bohn.) 하수로를 덮는 공사도 까다로워서 기원전 2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개방된 운하로 사용되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어졌습니다.(Hopkins, K. 1966. On the Probable Age Structure of the Roman Population. Population Studies 20: 245–264.)
지하 시설에서 다시 욕장 내부로 올라가보겠습니다. 로마인들은 목욕 시설의 장식에 있어서 비용이나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욕장은 매우 화려하여 대리석과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 그림, 분수, 조각상 등이 가득했습니다.(Gensheimer, M. B. (2018). Decoration and Display in Rome’s Imperial Thermae: Messages of Power and Their Popular Reception at the Baths of Caracalla. Oxford University Press.)
욕장에는 목욕시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즘으로 치면 '복합문화공간'이 될 텐데, 욕장의 부속 기능에는 도서관, 운동 및 마사지를 위한 방, 식당 및 극장도 포함되었습니다.(CarcopiOetelaar, T. (2014). Reconstructing the Baths of Caracalla. Digital Applications in Archaeology and Cultural Heritage, 1(2), 45-54. p.46) 저는 개인적으로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팔았는지가 궁금합니다. 몇 주 전 장거리 달리기를 했던 어느 주말에 피로를 풀러 찜질방에 갔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오징어 다리를 사 먹어 보았는데, 첫째 양이 너무 적어서 놀랐고 다음으로 너무 딱딱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찜질방에는 맥주도 팔았는데, 로마 욕장에도 왠지 술- 와인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은 차후 책에서 해소하겠습니다.)
불행히도 카라칼라 욕장은 847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로마의 많은 다른 건물들도 손상을 입었습니다. 심각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폐허는 여전히 인상적이며 매년 수백만 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매년 여름에는 이곳을 배경으로 음악 콘서트와 오페라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출처: https://www.wantedinrome.com/news/rome-summer-opera-2022-baths-caracalla.html)
이 글에서 로마의 분수를 함께 다루고 싶었으나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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