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엔지니어, 할 만해요?

by 라인하트


2000년대 초 어느 날 대학교 후배들과 종로 피맛골 어느 술집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 찬 술집에서 허기를 채우면서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술이 얼큰하게 오르고 대학 시절과 청춘을 불태우는 연애 이야기가 바닥날 때 즈음,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술이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선배! 엔지니어, 할 만해요?'


질문은 간단했지만, 필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필자는 컴퓨터가 좋아서 정보통신공학과를 다녔고, 컴퓨터가 좋아서 IT 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일이 재미있었던 필자에겐 낯선 질문이었습니다.


오래된 술집 골목의 저녁 풍경.png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IT 분야는 급성장하였습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대량해고와 구조조정 상황에서도 많은 대학교 후배들이 IT 분야에서 엔지니어와 개발자로 취직하였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이 IT를 선택했다기보다 IT가 사람들을 선택하였습니다. IT 관련 학과가 아닌 인문 사회 계열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시대가 사람들을 IT로 이끌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농사를 짓고 탄광에서 일했던 것처럼 우리는 IT에서 일했습니다.


시대가 사람들을 IT로 이끌었다.


IT는 남들이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잘 때 일하는 분야입니다. IT 분야가 익숙하지 않은 후배의 푸념으로 이해했습니다. 후배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 위로받고 싶었고, 네트워크 장비와 케이블을 설치하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IT 버블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산업은 성장하고 기회는 많았습니다. 필자는 성장한다는 생각과 열정으로 즐겁게 일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이 필자에게 "엔지니어, 할 만해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두 같은 질문을 하였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 본 사람들은 "힘들지 않아요?"라는 의미로 물었고, 소개팅을 하는 여자는 "연봉은 높은가요?"라는 의미로 물였고, 신입 엔지니어는 "미래가 밝은가요?"라는 의미로 물었고, 영업 부사장은 "영업할 생각 없어요?"라는 의미로 물었습니다. 언제나 당시 필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답을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종로 피맛골의 술집을 상상합니다. "엔지니어, 할 만해요?"라고 묻던 풍경을 떠올립니다.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축 처진 어깨와 힘없는 목소리는 기억합니다. 어떤 답을 해야 했을까? 어떤 답이 위로가 되었을까? 어떤 답이 희망을 주었을 까? 후배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까? 그때로 돌아가면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서 답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답을 할 수 없습니다. 대답은 필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엔지니어의 노력에 따라, 엔지니어가 서 있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엔지니어의 인간관계에 따라, 엔지니어의 직급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대답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입니다.


필자는 지금도 답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도 60세 이후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계속 답을 찾을 것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과 이어지는 물음들은 '나는 IT 엔지니어다'라는 74편의 브런치 글로 이어졌습니다.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도 다시금 필자에게 묻습니다. "IT 엔지니어, 할 만해요?" "지금 하는 일, 할 만 해요?"


IT 엔지니어, 할 만해요?


매거진의 이전글73. 재택근무자의 백수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