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재택근무자의 백수 생활

백수가 과로사한다

by 라인하트

퇴직 통보를 받은 후 지난 한 달 동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출근이라는 물리적 이동이 없던 재택근무자에게 백수생활과 재택근무 생활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재택근무와 백수 생활의 하루 패턴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늘 하던 대로 아침 7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 유튜브를 들으면서 잠자리를 뒤척거립니다. 아침 9시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오전 11시 반 이른 점심을 먹습니다. 오후 내내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오후 4시 즈음 짐 (Gym)에서 10 Km 달리기와 근육 운동을 합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MBC 뉴스데스크'를 봅니다. 저녁 10시 즈음 졸음이 쏟아집니다. 노트북 앞에서 하던 일이 회사 업무가 아니라 개인 업무로 바뀌었고, 달리기를 시작하는 시간이 퇴근 전으로 빨라졌습니다.


재택근무자에게 퇴직이란
회사 업무가 아닌 개인 업무를 하는 것


가족들의 시선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여전히 집에 있고, 노트북 앞에 무엇인가를 합니다. 필자도 가족도 '일하는 중'과 '쉬는 중' 사이에 모호한 중첩을 느낍니다. 재택근무를 할 때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많았고, 백수 생활을 할 때도 문서를 만듭니다. 필자가 이력서를 정리하고 링크인과 같은 채용 사이트를 뒤적거릴 때가 아니라면 백수라는 상태를 잘 못 느낍니다. 백수 생활이 재택근무보다 더 바쁩니다. 재택근무를 할 때 6시 이후에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지금은 저녁 이후에도 노트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업이 없는 백수가 아이러니하게도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쉽게 피로를 느끼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백수는 취업 준비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한 자기 관리와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명확한 목표가 있는 일과가 없으므로 생각이 많아지고 하루가 길어집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일수록 백수가 과로사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필자는 생활 패턴이 별로 바뀌지 않으니 퇴사가 불러오는 불안감과 위기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백수라는 상태보다 과거와는 다르게 일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회사나 조직에 속하지 않은 프리랜서나 정년퇴직한 인생 2막의 느낌입니다. 백수 생활을 바쁘게 보낼 생각을 합니다. 언제 즈음 취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필자가 취업하고 싶다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취업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인생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를 자문하였습니다. '인생'이라는 거창한 단어 때문에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직장 생활 때문에 못했던 일이 무엇일까?'로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실행은 못함)

해외에서 한 달 살기 (은퇴 후에 1년에 몇 달은 해외에서 지낼 계획)

'나는 IT 엔지니어다' 책 쓰기(몇 년째 초고 마무리를 못함)

경영학 박사 마무리하기 (박사 과정 수료 후 3년째 휴학 중)


삶의 목표를 향한 여정.png


백수 생활을 하면서 과로사하더라도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직장 생활이 걸림돌이 되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입니다. 백수만이 도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생각이 정리가 되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지금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지만,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집사람에게 올여름이 지나면 놀고 싶어도 놀 지를 못하니 지금 놀러 가자고 설득하였습니다. 돈이 많이 들지만 지금은 쉽게 할 수 있는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먼저 하기로 하였습니다. 말레시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고민하는 집사람에게 어차피 모든 지역을 살아볼 것이니까 처음 한 달 살기를 하는 지역을 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4월 필리핀 세부로 장소를 결정하고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정하였습니다. 집사람은 한 달간 모든 것을 계획하려고 하였지만, 일정을 매우 단순하게 잡았습니다.


시작 : 세부 막탄 섬에서 휴식

중간 : 세부 시티에서 일상

마지막 : 골프텔 휴식


집사람은 막탄섬 리조트와 세부 시티에 한 달을 보낼 레지던스를 찾았습니다. 필리핀 세부 한 달 살기를 하면서 필자는 여러 가지를 할 계획입니다. '나는 IT 엔지니어다' 초고를 마무리할 것이고, 달리기와 골프 연습 그릭 영어 공부도 할 것입니다. 지금도 달리기와 글쓰기를 병행하는 무라키미 하루키의 일과를 따라 하는 중입니다. 필리핀 세부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과를 지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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