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퇴직을 통보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송별회를 하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친한 몇 분들과 함께 조촐하게 진행하였습니다. 동료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금액으로 황금 명함을 선물하였습니다. 퇴직 기념으로 1 직급 특진도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책상에 앉아 '회사를 떠나며'라는 마지막 이메일을 썼습니다. 이메일을 쓰면서 지난 13년간의 시스코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좋았던 일도 나쁜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었습니다. 함께 한 많은 프로젝트들과 함께 일 한 많은 동료들이 떠올랐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짧은 문장에 담아 이메일을 전달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협업 전략 사업본부의 XXX입니다. 오늘 11월 19일은 13년간의 긴 시스코 여정을 끝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저에게도 마지막 이메일을 쓸 수 있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아침 마지막 이메일을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시스코 분들, 파트너 분들 그리고 고객분들,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던 프로젝트들, 제가 배운 것들, 저를 칭찬하고 좋아했던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로 인해 힘들었던 분들. 마지막 날에 뒤를 돌아보니 성공과 실패로 웃고 울던 사건 사고 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려는 마음은 오래전에 버렸지만, 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분들보다 제가 잘하지 못했던 분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13년간의 시스코 여정에서 시스코는 항구였습니다. 제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보금자리였고,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였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항구가 더 이상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가끔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배가 항구에서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고,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길을 떠날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더 멀고 더 큰 바다를 향해 출항합니다.
13년 전 시스코로 이직했던 선택처럼 지금의 선택도 나중에 좋은 결정이었다고 주위분들이 저에게 말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선배님들처럼 업계에서 인정받는 시스코 출신 중에 한 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아껴주시고 신경 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페이스북에 종종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21년 11월 1일
겨울 초입에서 XXX 올림
드디어 시스코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면서 윌리엄 A. 쉐드 (William G.T. Shedd)의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MBA를 시작할 때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할 때 떠오르는 생각은 똑같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존재의 이유는 아니다
A ship is safe in harbor, but that's not what ships are for.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걱정을 수반합니다. 걱정은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금은 두려움의 크기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흥분이 더 큽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엔지니어로써 새로운 역량을 펼칠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필자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지난 21년간 세 번의 이직을 하면서 하루도 쉬지를 못했습니다. 네 번째 이직을 하면서 2주간의 쉬는 기간을 만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면, 필자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회사의 솔루션을 공부하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하이브리드 워크 관련 논문을 쓸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기간에 자연스럽게 필자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2주간 쉬면서 본래의 나로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