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라인하트 Oct 31. 2021

65. 회사를 그만두는 하찮은 몇 가지 이유

회사에 퇴직을 통보하다.

   얼마 전 13년을 다닌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습니다. 매니저에게 이직할 회사를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매니저는 어렵지 않게 경쟁사로 이직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니저는 당일 퇴사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외국계 회사는 경쟁사로 이직하는 직원의 노트북과 출입증의 빠른 반납을 요청하고, 회사 인트라넷 접속 권한도 최대한 빨리 차단합니다. 외국계 회사는 인수인계보다 정보 유출에 대한 보안을 더 강조합니다. 사람보다는 시스템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퇴사 절차는 퇴사 통보일로부터 한 달이 걸립니다. 회사는  안정적인 업무 인수인계를 진행할 시간이 필요하고,  퇴사자는 동료들과 관계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행히도 재택 중이었기 때문에 퇴사 절차는 일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퇴사 절차에 서운하였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필자는 퇴사를 통보하기 전에 13년간 다닌 회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고, 매니저와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업무에 구멍이 생기면 동료들이 힘들기 때문에 인수인계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주 후 회사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대규모 행사가 있었고, 발표는 할 수 없어도 동료들에게 자료를 잘 정리하여 넘길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인트라넷 접속 권한과 노트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수인계는 간단하게 구두로 전달하였고, 업무 중 궁금한 것은 전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사 절차를 완료하였지만 정식 퇴사일은 아직도 3주 정도 남았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3년 만에 한 달 간의 긴 휴가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한 달간의 휴가는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되면서 오랜 기간 재택근무를 하였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던 버릇이 있어서 아침 8시 즈음 일어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립니다. 단지 회사 일을 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의 차이뿐입니다. 여유를 즐겨도 좋겠지만 여전히 꽉 찬 하루를 보냅니다. 멀리 여행이라도 가고 싶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과 아이들의 학교 생활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낮에는 글을 쓰고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합니다. 저녁에는 잘 만나지 못했던 친한 동료들과 친구들과 술자리를 마련합니다. 저녁 10시에 즐겁게 웃으면서 헤어지고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사를 떠나는 구질구질한 이유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이직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 질문을 받아서 공식적인 답변은 있지만, 동료들에게 대답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냥 슬쩍 웃으면서  명확히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엔지니어들은 이심전심으로 알았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이유 입으로 말하는 순간 구질구질하고 찌질하고 하찮은 답변이 됩니다. 퇴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이유를 돈, 명예, 의리, 사랑, 자유, 희망, 기회 등의 좋은 단어들로 설명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어쩌면 회사를 떠나는 이유에는 말로 한 것보다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로 인해 동료들은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고, 말로 한 것들로 인해 각자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이유를 완전히 공감해도 이직과 퇴사를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선택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뛰어난 엔지니어가 회사를 떠나면서 필자와의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가 말한 퇴사의 이유는 매우 시의적절했고 당연하였지만,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퇴사를 하는 마당에 꾸질 꾸질 하고 찌질하고 하찮은 이유를 정리합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정제된 글로 낫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필자가 고민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필자도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한 번은 정리를 해야 할 듯합니다.



1.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사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갖추고 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성장합니다. 매년 매출이 늘면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기업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직원들은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많습니다.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갖추면 계속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합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성공하거나 실패하면서 회사는 꾸준히 성장합니다. 기업이 새로운 시장 개척에 계속 실패하다 보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정체하는 순간이 옵니다.


   필자의 회사는 꾸준히 시장과 기술을 선도하였지만,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성장 시대에 입사한 엔지니어들은  관리자가 되거나 영업 사원이 되거나 새로운 기회를 잡았습니다.  회사가 성장을 멈추면서 후발 엔지니어들은 나이 50대에도 엔지니어 생활을 합니다. 확실히  성장을 멈춘 회사에서 뒷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성장을 멈춘 회사에서
나이 많은 엔지니어를 위한 자리는 없다.


   비슷한 나이대의  엔지니어들은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그들은 50살의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삶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엔지니어로 끝나는 삶도 멋지지만, 미래는 누구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50대 IT 엔지니어의 삶은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지금의 회사는 정말 좋습니다. 아마도 향후 십 년 후에도 오십 년 후에도 존속할 회사입니다. 회사가 몸집이 너무 거대해서 성장 속도가 느리게 보일 뿐입니다. 단순히 성장하는 회사와 안정적인 회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이 든 엔지니어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젊은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싶은 회사입니다.



2. 말라버린 오아시스 옆에 고목이 되다

   가끔 사막에서 말라죽은 고목을 생각합니다. 나무는 한 때 오아시스 옆에서 충분한 물과 영양분이 공급받으면서 크게 자랍니다. 어느 날부터 오아시스의 물이 말라가면서 나무는 더 깊고 더 넓게 뿌리를 내립니다. 나무는 다시 비가 내리면 더 크게 자랍니다. 나무는 푸른 잎이 무성하고 몸집도 너무 큽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의 시기가 길수록 버티기 점점 힘듭니다.



   필자는 IT 엔지니어입니다. IT분야는 약 10년을 주기로 큰 변화가 몰아칩니다. 지금은  클라우드와 AI/ML(Artificial Intelligence / Machine Learning)이 IT 업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은 관련 IT 기업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미래는 아주 분명하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오아시스의 크기가 줄면서 고목은 점점 말라갑니다.


   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오아시스의 크기가 줄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필자의 전문 분야는 사막화되고 오아시스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과거에 협업 솔루션만을 다루는 기업들은 시장이 너무 작아서 입지를 다지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큰 기업이 협업 솔루션에 관심을 주기 어렵습니다. 필자는 오아시스와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3.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헤매다

   필자는 모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적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부질없습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인간관계는 둘 사이의 관계이지 혼자만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합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사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예의가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을 쉽게 무시합니다.


    오래전부터  필자를 싫어하는 사람과 굳이 힘들게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고, 의도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결자해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필자와 부딪히는 일이 없기도 했습니다.   업무 특성상 부딪히지 않고 잘 지냈기에 회사를 떠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13년간 필자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잘 지냈습니다.


   세상은 참 요지경입니다. 필자와 싫어하는 사람들과 필자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승승장구합니다. 운이 참 없습니다. 지금처럼 지낼 수는 있지만, 확실히 미래가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필자를 알아주고 함께 더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 필자를 아껴는 사람들과 함께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언제나 하찮다.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언제나 하찮습니다. 변명은 변명일 뿐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백 가지 이유보다 새로운 회사에 대한 작은 희망이 더 크기 때문에 이직을 선택합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백 가지 이유보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퇴사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회사를 그만두는 백 가지 이유보다
새로운 회사에 대한 희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필자는 퇴사를 결정하면서 떠오르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문구는 언제나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자신에게 묻게 합니다. 필자는 타인들의 기억으로 평가되기보다는 필자가 지금 하는 일로 평가되길 바랍니다. 퇴사를 결정하는 것도 다음에 필자가 보여줄 행동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우리를 정의하는 것이 기억인 것처럼 기억에 집착하지만,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행동이다

We cling to memories as if they define us.
But what we do defines us.



https://brunch.co.kr/@linecard/115





매거진의 이전글 64. 프로젝트는 항상 산으로 간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