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비건지향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우리 아빠만큼 천부적인 마라토너가 또 있을까? 나의 아버지는 일기를 20년이나 쓰셨다. 등산 일기, 업무 일기, 그리고 일상 기록용 일기장까지. 세 종류의 일기로 엮어낸 아빠의 기억은 그물처럼 촘촘하다. 엄마가 체한 날이면, ‘내가 일기를 보니까 당신이 딱 두 달마다 체하더라고. 그리고 옥수수 먹지 마. 옥수수 먹으면 당신 항상 체했어.’라고 말한다. 내가 밥을 두 공기 뚝딱한 날엔 ‘은지가 6월부터 밥 먹는 양이 많이 늘었네. 식습관 바꾸더니 속이 편해졌나 보다.’라고 말한다. 아빠는 꾸준함으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본다. 세상의 비밀을 간직한 아빠의 얼굴은 예순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소년 같다.
아빠와 달리 난 단거리 선수 같은 삶을 살아왔다. ‘꾸준히 한 게 없네.’ 30살이 된 기념으로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남긴 말이었다. 이런 내가 꽤 오래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채식이다. 처음부터 채식에 성공한 건 아니었다. 흡연자들이 연초마다 금연 선언과 실패를 반복하듯 나도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고는 실패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보고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을 처음 알게 되고 일주일에 두 번만 육식하는 플렉시테리언을 시도해봤고,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완전 비건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3개월을 넘지 못했다. 의식하고 보기 시작하니 고기가 없는 음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자, 라면, 젤리, 심지어 샐러드까지…… 생각지 못한 음식에도 고기가 들어있었다. 술안주는 더 해서 회식할 땐, 불판 위에 구워먹을 야채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비건을 시도하고 실패하길 몇 차례 반복하던 어느 날, 코로나가 터졌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전면 재택을 하게 되었고, 친구와의 약속이나 회식도 모두 취소되었다. 게다가 그 즈음 결혼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독립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나만의 주방이 생긴 것이다! 내가 채식을 시도해볼 수 있게 온 우주가 돕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비건지향이 되었다. 드디어 나도 아빠처럼 나만 아는 세상의 비밀을 간직하게 됐다. 연두(조미료)와 표고버섯, 다시마를 쓰면 새우나 멸치액젓 없이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 식물성 우유 중 오틀리가 가장 우유와 비슷한 맛을 낸다는 것, 냉동과 해동을 반복한 두부는 고기처럼 쫄깃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만들어낸 요리들의 레시피와 함께 나의 자부심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채식은 내가 더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줬다. 팜유는 오랑우탄 서식지를 파괴해서 얻어진다. 아보카도 재배에 들어가는 물로 인해 식수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꿀은 꿀벌을 착취해서 얻어내는 결과물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즐겨먹던 팜유, 꿀, 아보카도도의 섭취량을 줄였다. 새로 알게 된 지식들은 불편해도 채식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나 한 명이 고기 섭취를 줄인다고 사회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길 기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하기도 어려울 거다. 나 역시 재택근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실천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다만, 고기 없는 식탁에 둘러 앉아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단 사실을 말하고 싶다. 동물과 자연에게 더 무해한 사람이 된다는 자부심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