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조기 유학 9개월

7막 7장을 읽고...

by 링고빙고 LingoBingo

중 2때 바로, 그시절 꽤 유명했던 홍정욱의「7막 7장」 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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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읽고 받은 충격이란!!! 밤새 공부를 하다니!!! 하버드를 최우수로 졸업 하다니!!!
책장을 덮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이렇게 공부해서 하버드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 길로 부모님을 졸라 미국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운 좋게도 믿을 만한 한국인 가디언(보호자)을 만나, 그 집에서 어린 나이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중3 1학기를 마치고 자퇴, 미국 고등학교 9학년으로 (freshman) ‘편입(?)’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꽤 잘 한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미국 고등학교 첫날, 그 자신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일단 말이 하나도 안 들렸다.

말이 안 들리니 나도 말을 할 수 가 없었고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답게, 학교에는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클래스가 있었다.

나는 매일같이 ESL 수업을 들으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대만, 홍콩, 멕시코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영어를 배웠다.

대만 친구들은 나보다 미국 생활이 조금 더 길어서 발음도 더 자연스럽고, 말도 더 잘했다.

친구들은 참 친절했고 학교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과 어울리는데 중학교에서 한자를 배운 것이 도움이 약간 되었다.


학교에서는 영어에 도움이 되니 합창반 (music class)을 권유했다.

노래를 통해 미국 친구들의 발음을 자연스럽게 듣고 따라 하라는 취지였다.

합창반은 따로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고 악보에 적힌 가사대로 노래를 부르면 되는 수업이어서 마음이 아주 편했다.

나 빼고 다 미국 아이들이라 발음 교정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하버드에 가야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지만 그때는 진지했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홍정욱씨를 롤모델 삼아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중3 수준의 영어책도 읽기 벅차서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읽는 책을 빌려 사전을 옆에 두고 단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었다. (다행히 그때는 전자사전이 있어서 시간 절약이 되었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동안, 한국어 어순이 서서히 영어 어순을 따라가려고 할 무렵 (예를 들어 나 먹었어, 밥을),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환율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에 처음 올 때만 해도 1달러에 700~800원 하던 환율이 돌아갈 즈음에는 2000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하숙비와 유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져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유학 생활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9개월.

하지만 그 9개월 동안 나는 아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말을 쓸 수 있는 친구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정말 빠르게 늘었다.

도서관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아이들 그림책에 나오는 단어조차 낯설어 일일이 찾아보던 시간이 지금 돌아보면 참 소중한 밑거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때 쌓은 영어 실력을 고3 때까지 톡톡히 써먹었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은상을 탔고, 그걸 계기로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니 말이다.


비록 홍정욱씨과 동문은 못 되었지만 하버드에 가겠다고 설치던 중3의 열정이 내 영어 인생의 기둥 하나는 단단히 세워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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