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어릴 적 내게 허락된 유일한 탈것이었다.
엄마는 외아들이 다친다고 동네 친구들 모두가 갖고 있던 킥보드나 롤러스케이트는 일절 타지 못하게 했다.
그 덕에 네발 달린 자전거는 가질 수 있었는데 그걸 아주 신이 나게 타고 다녔었다.
유치원생이던 당시, 엄마는 아파트 청소일을 하러 다녔고 나는 늘 엄마가 퇴근할 무렵이면 그 네발 자전거를 타고 멀리서부터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엄마는 내가 오면 자리를 비켰다. 멀리서 손짓으로 저리 가라고도 했었다.
난 그럴 때마다 엄마가 화가 난 줄 알았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청소일을 하는 당신이 자식 체면에 부끄러울까 봐 알은체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유치원생이던 내게 어른의 체면은 바지에 쉬야나 응가를 해선 안된다는 정도의 내용이었지 부모가 자식을 모른 채 할 수도 있다는 슬픈 것이 아니었다.
뜨내기들끼리 모여사는 비슷비슷한 동네였음에도 엄마는 늘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했고, 오며 가며 언제나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뱉던 엄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동갑내기였을 텐데, 삼십 대의 여자가 자식에게 그 말을 뱉을 땐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런 삼십 대의 여자가 내뱉는 말을 듣던 여섯 살의 나는 꽤나 쓸쓸했다.
내가 살던 고장은 공장이 가득했고 아버지들은 3교대가 일상이었다. 3교대 아버지들을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우리 엄마를 자랑했다. 엄마는 늘 네발 자전거로 달려가면 5분 만에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까움을 좋아했고 그것을 퍽이나 자랑스러워했다.
나에겐 그 가까움이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그것을 부끄러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건 내가 당시의 엄마 나이가 될 무렵이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