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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Jun 16. 2022

이문영의 '노랑의 미로'

가난하지 않아서 가난을 몰랐다.

때로는 가난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보다 더 돈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가난을 더는 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생에 비례하여 얻어진 자산으로 기뻐했던 적도 있었다. 기회조차 내가 가난하지 않아 얻을 수 있었던 운이었다는 것을 글로는 알았지만 체감하진 못했는데 쫓겨난 사람들의 5년을 면면히 살펴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말하고 다녔던 가난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 가난한 삶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조차 그리 가난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가난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 살림살이가 곤궁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진짜 가난이 실은 여기저기 널려있었는데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재물은 상대적인 개념이라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며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은 앞으로도 영원히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가난을 동정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싶은 나의 마음은 분명 위선이다. 나의 행동은 위선인데 아이들에게 가난은 문제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나는 좋은 부모일까. 노력하면 가난에 다가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


서울의 집들은 재개발 재건축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부지가 정해지면 조합이 들어서고 분담금이나 건설사가 정해지고 나서는 각종 인허가가 나고 이주를 시작한다. 사람이 사라진 주택가에 건설용 장비들이 들어오고 하루가 다르게 층수를 올려가며 아파트를 짓는 것을 나는 '집' 또는 '부동산'이라고 부르며 감흥없이 바라봤다.


종종 임장을 했다. 가진 예산 안에서 좀 더 좋은 수익을 창출할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구역이 헐려나가고 흙더미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 이제 시작이구나.'라며 2년 혹은 3년 뒤의 시세를 예측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흙더미 구역이 본래는 누군가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었다.


세상의 집들이 9,000원짜리 레고판 위에 작고 예쁜 플라스틱 조각으로만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0 세대 아파트 단지가 곳에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 살아있기나  것일까.


깨진 항아리에 흙을 채워 꽃을 심어둔 화분 사진을 찍으면서도 화분 뒤편에 존재하는 금이 쩍쩍 가있는 재개발구역의 남루함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체육대회에서나 볼 수 있는 퍼런 방수천으로 지붕을 덮고 벽돌을 군데군데 올려둔 것의 의미를 나는 얼마나 알며 살아왔을까.


'노랑의 미로'는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보여준다. 철거주민으로 뭉뚱그려져 때로는 철거 반대 강성 집단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인데 그들의 삶은 왜 선택할 수 있는 나의 삶처럼 존중받지 못했을까.



노랑의 미로 / 이문영 지음 / 오월의 봄 / 2020


김숨 작가의 '한 명'을 읽으며 소설인지 사실을 정리한 보고서인지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꾸려진 소설을 읽으면서 미주의 내용을 보고 다시 한 번 충격받았었는데 '노랑의 미로'에서는 빨간 화살표가 등장할 때마다 이기방이나 박철관의 다음이 죽음 또는 죽음보다 못한 삶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힘겹게 책장을 넘겼다.


미로처럼 얽힌 삶의 궤적을 쫓아가는 내내 생각한 것은 나의 편안함과 청결을 위해 가난을 밀어낸 수많은 재개발 지역이었다. 동자동 강제 퇴거 45인의 삶만 봐도 숨이 막히는데 수많은 퇴거 지역의 사람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가정하니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5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몰아내고 만들어진 아파트 공화국인 것일까.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2016년 한겨레 21 기획기사 '가난의 경로'가 나왔다. 2020년에도 이문영 기자의 '강제 퇴거당한 쪽방 주민 5명 중 1명꼴로 세상에 없다'가 있었다. '가난은 부검으로도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으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인데 이것을 외면하고 앞만 보며 살았던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부끄러웠다. 제대로 된 기사를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알고 보니 제대로 된 기사를 보려 하지 않은 나의 안목이 문제였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려나.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어떤 가난은 확산되지만 어떤 가난은 집중된다. 가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 가난의 이야기가 노란집에 있었다. (9)

'사건' 하나가 발생했습니다.

가난을 대하는 정치와 자본과 언론의 '관습'이 있습니다.

언론은 사건과 일상을 구분합니다.


사건과 일상엔 위계가 부여됩니다. 언론은 누군가의 발화되지 않은 속마음까지 읽어 사건으로 만들어주지만, 누군가의 전 생애를 뒤흔든 사건을 없었던 일처럼 외면하기도 합니다. (중략) 가난한 사람들의 사건은 그들의 목소리만으론 '사건화'되지 않습니다. 정치와 자본과 언론은 '가난의 상징'으로 쪽방을 소비해왔습니다. '가난한 이미지'의 수요가 있을 때마다 '가난의 전시장'으로서 쪽방은 공급돼왔습니다. 쪽방은 가난을 표상하기도 하지만 가난을 가리는 껍질이 되기도 합니다.


사태는 사건 이후에 있습니다. 쫓겨나는 사건보다 무거운 사태는 쫓겨난 뒤의 삶입니다. 가난은 강제퇴거란 사건에 있지 않고 강제퇴거 이후의 일상에 있습니다. '가난의 경로'를 따라가며 확인한 가난의 속성들이 있습니다.


가난은 모입니다. 가난은 가족관계를 끊어놓았고, 끊어진 관계는 주민 90퍼센트 이상을 중학교 미만 학력으로 묶었으며, 저학력은 '인맥'이라 불리는 것을 넘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노숙 경험자가 최소 77.5퍼센트에 달했습니다. '반전의 기회'란 그들과 무관한 단어였습니다. 그들에게 뿌리가 없다는 것은 인연이 전무하다는 뜻이 아니라 관계를 틀어쥘 힘이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가난은 고입니다. 극빈의 이동거리는 직선거리 100미터를 넘지 못했습니다. 강제퇴거 뒤 1년 동안 주민 30명(66.6퍼센트)이 100미터짜리 밧줄에 허리를 묶은 것처럼 동자동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중략)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퇴거와 철거는 자석처럼 붙어다닙니다. '안전을 위한 보수공사'는 가난을 쫓아내며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논리로 거듭 소환됐습니다. 가난은 철거와 강제퇴거의 무한궤도 속에서 순도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난은 빨래 같았습니다. 평생 철거와 강제퇴거를 반복하며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쫓겨다니는 삶은 빨면 빨수록 너덜너덜해지는 낡은 천조각 같았습니다.


정치가 불의할수록 가장 약한 자들부터 가난해집니다.


가난한 동네는 극적으로 노출되고 가난한 사람은 극적으로 사라집니다.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관심을 끌던 사람들은 동네를 벗어나자마자 '숨은 그림'이 됩니다.


가난한 그들은 서로의 가난 곁에 있을 때 자신의 가난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아는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는 가난을, 밖에서 취재하고 연구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누구도 그 안에 있으려 하지 않는 가난을, 그들은 다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사태 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강제퇴거로 내몰렸던 9-2x주민 45명 중 9명(20퍼센트)이 사망했습니다. 생존해 있는 주민들은 변함없고 어김없이 가난합니다. 그 가난을 흠집 내지 못하고 구경하기만 한 이 책은 그러므로 실패의 기록입니다. 이 세계가 퇴치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가난의 속'은 이 부끄러운 기록을 딛고 계속 탐구돼야 합니다.

(57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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