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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Apr 15. 2018

맨발

 오늘은 맨발로 출근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었다. 또 같은 꿈이다. 꿈은 항상 지하철 플랫폼에서 시작한다. 신주쿠까지 한번에 가는 집앞 지하철역이고, 날씨는 맑기도 흐리기도 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항상 플랫폼의 같은 자리에 서있다. 꿈이니까 정신을 차린다는 말도 좀 이상하지만. 보통 타야하는 전차가 오기까지는 일분정도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살인범을 찾는 셜록처럼 그날 놓고온 것을 찾아야만 한다. 어느날은 바지를 입지 않고 서 있었고, 어느날에는 핸드폰이나 지갑이 없었다. 그런데 플랫폼에는 어떻게 들어왔을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떻게 한명도 바지를 안입었다고 말해주지 않은거지? 그런 생각을 할 틈은 없다. 일분안에 찾지 못하면 그대로 출근길에 나서야만 한다. 뭐, 꿈속의 이상한 상황이지만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대충 익숙해지기도 했고.


 바지가 없는 경우는 그래도 일반적인 편이다. 어느날에는 어금니가 모조리 없었다. 앞니와 송곳니까지로만 이를 부딪히는데 어쩐지 허전해 어금니자리에 혀를 대어보고 깨달았던것은 출근해 자리에 앉은 뒤였다. 어금니가 없다니 도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런 꿈을 꾸는걸까? 꿈이었지만 현실의 나를 질책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은 어금니를 너무 앙 다물고 자서 다음날 잇몸과 턱이 얼얼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여튼 오늘은 맨발이었다. 맨발이라.. 맨발정도면 무난한편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지하철에 올라 탔다. 돌아가서 신발을 신고 나와도 되었겠지만 오늘은 오전에 중요한 미팅이 있었고 얼른 가서 준비를 하고 싶었다. 회사에 가면 스트레스 받을때 사버린 버켄스탁 슬리퍼가 있으니 대충 맨발보다는 나은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신발을 신고 미팅에 가는게 미팅을 망치는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 어차피 나는 미팅 시작 전에 들어가서 앉아있다가 다 나간 뒤에 정리하고 나올텐데, 누가 내 신발을 볼 시간은 있을까? 굳이 고개를 숙여 '음 오늘 발표하는 사람 신발은 뭘 신었지? 신발이 귀엽네 양말과 매칭이 잘 되는걸 보니 프로젝트 스케줄도 잘 맞추겠어. 이 사람에게 맡기자' 이런 생각을 하는 변태는 우리 회사에 없지 않을까라고 위안을 하다보니 대충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꿈을 더 꾼것 같기도 하고, 꾸었는데 다 까먹은것도 같고. 꿈 덕분인지 출근 준비할때 신발이랑 양말을 고르는데 시간을 더 썼다. 그래봐야 선택 가능한 조합은 몇개 안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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