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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May 20. 2019

딥티크 팝업스토어에서 느낀 아쉬움

제품과 공간 둘 다 잘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면 딥티크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러면 비로소 그 방이 진정한 내 공간이 된다.
나탈리 리키엘 Nathalie Rykiel / 패션 디자이너 (매거진 B No.31, diptyque 편 발췌)


 최근 회사에서 고객 경험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략적인 프로젝트의 개요만 설명하면 모든 이들이 ‘재미있겠다’라고 말하고는 하는데, 아마도 프로젝트가 가진 자유도와 회사에서 쉽게 보기 힘든 새로움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실제로 꽤나 흥미로운 회사생활을 하고 있기는 한데, 반대로 너무나 새로운 나머지 답이 없고 막막한 부분이 있어 상당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가로수길에 딥티크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감각의 상류층’들만이 소비한다는 향 브랜드, 그중에서도 상당히 이름 있는 딥티크인 만큼 프로젝트에 조금이나마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가로수길로 향했다.

 사실 나는 향수나 향초를 잘 쓰지 않아서 관련 브랜드들도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2년 전쯤 매거진 B 딥티크 편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향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위의 패션 디자이너의 사례처럼 여행을 갔을 때 호텔방을 자신이 좋아하는 향으로 채워서 여행의 기분을 극대화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들도 매우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딥티크에 관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향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에서 받은 영감과 여행지에서 느낀 소중한 추억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주로 플로럴, 스파이시, 우디, 프루티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추억의 장소나 여행지에서 느낀 향을 제품으로 재현하는 것인데, 이를 테면 그리스의 여름, 이탈리아의 아침 이슬, 싱그러운 무화과나무의 기억 같은 것들이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경험에 따른 기억의 가치를 발견하고, 개인적 자산인 기억을 브랜딩 요소로 활용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 딥티크의 전략이라는 매거진 B의 내용을 상당히 감명 깊게 읽었었다.

 이런 브랜드 스토리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있어서일까. 어떤 매력적인 공간을 구성했을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팝업스토어에 도착했다.


팝업스토어 1층 공간 (출처 : 아이즈 매거진)

 

 입구로 들어가니 직원이 체크인을 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었다. QR코드를 찍어서 개인정보를 입력해서 체크인을 한 후에 직원의 안내대로 2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2층은 주로 전시공간이었는데, 브랜드 스토리 전시/갤러리 느낌의 공간/창업자의 집무실 등이 있었다. 주로 아름다운 공간을 통해 브랜드 콘셉트를 표현하고자 한 느낌이었고, 더불어 사진을 많이 찍어서 인스타에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한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2층을 모두 둘러본 후 1층으로 내려오면 브랜드 콘셉트 이미지를 담은 엽서와 샘플을 지인에게 보낼 수 있는 공간과 시향 공간, 팝업 스토어 한정 제품 판매 공간 등이 있었다. 팝업스토어에서 가장 힘주어 홍보하던 ‘파리 항공권’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었는데, 콘테스트를 통해 나만의 향을 만들어보고 우승자를 뽑는 방식이었다.

 사실 함께 갔던 동료분은 바로 이 콘테스트 하나를 보러 그곳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딥티크에서 ‘나만의 기억’을 ‘나만의 향수’로 표현해 본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경험이 있을까? 출발 전부터 도착해서 2층을 둘러보는 내내 그분의 이 콘테스트에 대한 기대감이 눈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가보니 이 콘테스트는 고대한 만큼의 느낌은 아니었는데, 모든 과정이 ‘모바일 설문지’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콘테스트에 참여하고자 하면 직원의 안내에 따라 QR코드를 찍게 된다. 그러면 콘테스트 페이지에 접속하게 되는데, 여기에 내가 만들고자 하는 향수의 콘셉트를 정한다. 이를 테면 여행지의 기억이나 추상적인 관념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베이스가 되는 향, 추가로 넣을 향들을 고르고, 마지막에는 이 향수를 표현하는 이미지를 첨부해서 응모하게 된다. 응모를 완료하면 옆에 대기하던 직원이 샘플을 선물로 주고 마무리된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 (이미지 출처 : Checkbox Survey)

 

‘내 기억을 토대로 만드는 나만의 향’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상만으로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경험이 모바일 설문지로 진행되다 보니 시작부터 무언가 짜게 식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향 고르기, 일단 향 저관여자인 나는 각각의 향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다 보니 신중하게 고른다기보다는 그저 칸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찍을 수밖에 없었다. 매장 시향병들을 이용해 향을 맡아볼 수는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모바일 설문지로 인해 몰입감이 떨어지다 보니 파리 항공권에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향 만들기 콘테스트라는 좋은 소재가 파리 항공권에 묻혀 사라진 느낌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브랜드 콘셉트를 전시해놓았던 2층을 아뜰리에처럼 구성하여 여행의 기억 등을 추억할 수 있는 재료들, 그리고 딥티크의 향 소재들을 배치하고 콘테스트를 보다 밀도 있게 즐길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비용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2층 공간 자체가 이미 꽤 큰 편이어서 공간 차이는 없었을 것 같고, 배치된 직원수도 상당했던 만큼,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기보다는 초기 공간 설계만 바뀌었으면 가능했을 것으로 보였다.                            


딥티크의 싱가포르 부띠크 (출처 : insideretail.sg)


 팝업스토어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 대상이 잠재고객이라면 딥티크를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일 테고, 기존 고객이라면 그 충성도를 더욱 강화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브랜드가 내세울 최대의 무기는 그들이 가진 브랜드 자산이다. 딥티크의 브랜드 자산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그리고 이것을 실제로 담아내는 유서 깊은 제품-즉 향 그 자체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딥티크의 이번 팝업스토어는 ‘그들만의 향’을 느끼게 해 준다기보다는 이쁘고 잘 꾸며놓은 브랜드 광고 같은 느낌이었다.


 원래 모든 일이 훈수는 쉽고, 실행은 어렵다. 만약 나보고 이 정도 퀄리티의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내라고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전반적인 인테리어의 수준이나 동선 구성, 직원 응대 등 대부분의 요소들은 모두 훌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정말 매력적인 콘셉트와 제품을 가진 브랜드인데 팝업은 그 기대만큼 미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에, 딥티크 팝업 바로 옆 옆에 있던 삼성 라이프스타일 TV 팝업(?)의 경우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삼성의 라이프스타일 TV 라인인 세로 TV, Frame, Serif 3개 제품을 각각 3개 층에서 콘셉트별로 구성해놓은 곳이었는데, 사실 안에 들어가서 제품을 보기 전까지는 삼성의 팝업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로 오직 제품의 가치에 기반한 공간을 구현했다. 세로 TV의 경우 모바일 화면을 연동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EDM느낌의 배경에 아이돌 영상을 출력하는 등 젊은 세대에 포커싱이 되어있었고, TV 대기시간에 세계 유수 미술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Frame은 실제 미술관에서 인터렉티브 아트를 보는 느낌으로 구현해냈다. 그리고 Serif의 경우 가구 디자인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실제 인테리어에 녹아드는 느낌을 보여줬다. 그리고 약간의 부족한 2%는 직원들이 카운슬링을 통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공간 기획은 나무랄 곳 없이 훌륭했으나, 아쉽게도 제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내가 타깃이 아닐 수도 있으나, 굳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 하는 제품들이었는데, 애당초 삼성도 많은 판매량을 바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로 만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훌륭한 제품과 훌륭한 공간, 이 2개를 모두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엄청나게 올라간 지금 같은 시기에 둘 중에 하나만 잘해도 대단한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어떻게 설계를 해야 할지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아지는 가로수길 나들이였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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