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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Jan 01. 2020

글로벌 업무가 하고 싶어요

해외영업 직무에서 모조리 서류 탈락했던 취준생의 7년 후

 꿈만 많고 가진 것은 없던 취준생 시절, 해외영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세계를 누비며 외국어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멋진 모습. 물론 지금은 해외영업의 현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많이 접해보았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환상만 가득한 꿈이 있었고, 첫 취준 시절 해외영업 관련 직무들로 많은 지원서를 냈더랬다. 당시 나의 스펙은 인문계 주전공 + 상경계 복수전공, 토익 점수 800점대(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다),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 없음, 당연히 해외에서 공부했던 적도 일해본적도 없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서류부터 몽땅 탈락이었다.

 후에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해서 토익을 900점대로 올린 이후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해외 경험도 없고 외국어 실력이 특출 난 것도 아닌 인문계생을, 해외영업 직무에서 굳이 선발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후 나는 모 대기업의 국내 영업전략 부문으로 입사했고, 이후 이런저런 일을 하며 몇 년간의 회사생활을 이어왔다.

 취업을 한 이후에도 나의 글로벌 앓이(?)는 계속되었다. 관련 업무를 하는 동기들이나, 나와 비슷한 국내 업무를 하다가 글로벌 관련 팀으로 이동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특히 잠깐이나마 중국에 파견근무 경험을 해 본 이후로 넓은 세상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졌다. (중국 근무는 해외파견이긴 했지만 단순 시장조사 성격이 강해서 글로벌 업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지나, 최근에 드디어 글로벌 사업을 운영하는 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사실 글로벌 업무라고 하여 국내 사업보다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그저 새로운 업무, 새롭게 배워야 할 업무의 시작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표했던 무언가를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노력을 돌아보는 차원에서 이번 글을 써보려고 한다.




1. 나만의 이유를 정리하다.

 누군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항상 글로벌 업무가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왜?라고 누군가 1단계만 더 들어가서 물어봐도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왜 그 업무가 하고 싶었을까? 다른 무엇보다 나는 내가 글로벌 업무를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만들어진 환상 때문에 생각 없이 그것을 쫓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나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나만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환상이 더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글로벌 업무의 현실을 알게 된 이후에 생각이 흔들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시차 문제로 인한 워라벨 붕괴, 문화 격차, 체계 부족, 엄청난 업무량 등등. 이런 내용들을 듣고 나면 그냥 국내 사업이나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적도 있었다. 또 한 때 빨리 회사를 나가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손에 닿지 않는 글로벌 관련 업무보다 당장 사업에 필요한 상품기획이나 이커머스 업무를 더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수립되어 현재까지는 변동이 없는 나의 커리어 전략 기본골격에서는 일단 빨리 퇴사를 하는 것은 빠져있다. 나의 역량과 성향, 현실적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일단은 "직장인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한다 +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제2의 활로를 찾는다."는 쪽으로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직장인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일단 회사원으로서 보통 생각하는 성장 코스는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것인데, 그동안의 내 회사 생활과 성격을 돌아봤을 때 한국 사회에서 임원이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또한 인문 상경계 졸업생에 딱 문과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스타 개발자나 특출한 기술자, 연구원 들의 테크트리를 타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결국 한국시장/문과 베이스의 대기업 사원이라는 틀을 규정해 놓은 상태라면 회사원으로서 나의 성장 한계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리고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내가 일 할 수 있는 시장, 즉 나의 Job Market을 글로벌 범위로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첫째는 당연히 외국어, 둘째는 글로벌 업무 경험이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에서 일하건, 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건, 아예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하건 결국 해외시장에서 국가라는 바운더리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Job Market에서 관련 경험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첫째 조건인 외국어 조차도, 눈앞에 닥쳐서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와야 몰입해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실제 업무에서 외국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글로벌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하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보다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전략적으로 어떤 산업군에서/어떤 종류의/어떤 스코프의 업무까지를 내가 원하는 글로벌 업무로 볼 것인가 라는 점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기존 영업전략 업무 + 소비재 산업 이커머스 영업 경험을 합쳐서 소비재 또는 유관 산업군의 글로벌 영업, 글로벌 사업운영 직무를 최우선 목표로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2.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

 '글로벌 업무 경험을 쌓는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가장 열심히 했나를 돌아보니, 재미있게도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것은 순간순간 내가 맡은 국내 사업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일단 글로벌 업무라는 것도 사실 내 커리어의 하나의 과정이자 단계일 뿐, 로또 당첨처럼 일단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맡는 그 순간까지 어떤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그곳에 도달하는지도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국내 사업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에게 해외 사업을 맡길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기에, 순간에 충실하며 맡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부분에서 예전에는 잘 몰랐으나 최근에 깨달은 또 하나의 사실은 '레퍼런스의 무서움'이다. 사내 이동이나 이직을 해본 분들은 누구나 잘 알겠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해당 포지션의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그 사람의 평판, 소위 레퍼런스를 수집하고는 한다. 책임감은 있는지, 업무상 장/단점은 무엇인지,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떤지가 이 레퍼런스 체크를 통해 모두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 또한 너무나 고맙게도 과거 함께 일했던 팀장님이 이번 이동시에 나에 대해 너무나 좋게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원하는 포지션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글로벌 업무라는 목표만을 생각하며 그 전 업무들에 소홀했다면, 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당연한 외국어. 한국에서 국내 사업을 하다 보니 정말 영어를 몰라도 문제 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공부해야지'라는 마음만 먹고 시간만 흘려보낸 적도 꽤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들여 학원을 등록해서라도, 과외를 해서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계속 공부를 했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모IT기업의 글로벌 사업 포지션에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비록 면접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당시 영어면접에서 내가 했던 직무와 사업에 대해 영어로 토론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해외에서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내 영어실력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여전히 오류도 많고 유창하지도 않다. 하지만 약 7년 전, 영어면접만 닥치면 덜덜 떨던 취준생이 지금은 어느덧 내 일에 대해 영어로 토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3. 될 때까지 하다.

- 취준생 시절 글로벌 관련 직무 전체 서류 탈락

- 내부 인사이동 글로벌 관련 직무 2건 실패

- 경력직 글로벌 관련 직무 서류 탈락 1회, 면접 탈락 1회

위의 내용들은 취준생 시절 포함 지금까지 글로벌 관련 직무로의 이동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리스트다. 어떻게 보면 많고,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 들일 수 있지만 하나하나 쉽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특히 내부 인사이동 실패 2건은 꽤나 뼈아팠다. 경력직이야 사실 이미 글로벌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글로벌 업무를 맡기기에 아예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사내 이동은 국내 사업만 하던 사람이 글로벌 업무를 하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특히 우리 회사처럼 국내 사업이 주력이었다가 점점 해외 사업을 확대해나가는 회사에서, 이런 류의 인사이동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팀장 면담까지 끝났던 상황에서 회사 내의 이런저런 사유들로, 그것도 두 번이나 이동이 좌절되었을 때 느꼈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내가 잘못된 방향을 설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마음이 어지러운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기는 놈은 결국 끝까지 하는 놈이라고 했던가. 계속된 시도 끝에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런 많은 시도들을 겪으면서 회사가, 그리고 특정 직무에서 원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보다 피부로 느끼고 생각해보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다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던 인사이트였다.


다시 처음으로

 사실 원하는 일을 하게 되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불안감도 있다. 막상 일 하다 보면 나와 안 맞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일을 못해서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 사람에 치여서, 또는 일이 안 맞아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다른 곳을 찾아서 떠날 수도 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다만 한 명의 직장인이기에 어떠한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이 끝이라기보다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지난 몇 년의 시간들처럼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먼 길을 돌아 다시 출발점에서, 앞으로 걸어갈 길을 기대해본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 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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