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조언자들

동거 준비 과정에서의 수많은 질문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by 이정화

동거 준비는 수많은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아닐까?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도 될까?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까? 이런 질문들 훌륭하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일까? 이런 질문 아름답다. 나는 어떤 사람과 살아야 즐거울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동거를 결정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질문은 '이 사람이 같이 살아도 되는 사람일까'인 듯하다. 나와 대화해보기, 보다는 우선순위가 현저히 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동거인을 선택하는 데에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 남자 친구가 가난한 집안 장남이에요. 같이 살아도 되는 걸까요?

- 여자 친구가 술을 너무 좋아해요. 같이 살아도 될까요?

-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 한집에 살아도 될까요?

- 여자 친구가 경제관념이 너무 없어요. 동거는 별로일까요?

- 남자 친구가 너무 지저분해요, 같이 살아도 괜찮을까요?


누가 알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무도 모른다. 불특정 다수가 답을 달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답들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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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같은 경우는 나쁘지 않았어요. 가난한 남편을 만나 아직도 서로 아끼며 잘 살고 있어요.

- 가난한 남자 친구요? 남의 집 가장 빼오는 거 아니에요.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을 타고 나가요.


- 술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골백번 싸워도 나아지지가 않아요. 잘 생각해보세요.

- 여자 친구가 술을 좋아해요? 저의 로망인데. 저는 술을 너무 좋아하는데 여자 친구가 술을 전혀 못해서 서로 힘들 때가 많아요. 부럽네요.


- 경제관념 없는 사치스러운 여자는 얼른 내다 버리세요. 등골 브레이커가 됩니다.

- 아내가 경제관념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살아보니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더 예뻐 보일 때가 있어요. 사랑한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충분히 잘 벌고 있거든요.


- 지저분한 남자는 절대 안 돼요. 같이 살기 전에 눈치채실 정도면 살아 보면 지옥보다 더 한 경험을 하실 거예요. 얼른 도망치세요.

- 저는 너무 깔끔 떠는 남자보다 수더분한 남자가 더 나은 거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동거 결정과 같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에 앞서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거다. 물어볼 수 있다. 어딘가로 출발하기 전 그 길에 대한 경험도 전무하고 정보도 없고 도무지 방향 자체도 잡을 수가 없을 때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남자와 같이 살아도 될까요? 이 여자와 같이 살아도 될까요? 이 친구와 한집에 산다는 게 좋은 생각일까요? 등의 중요한 선택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실수다.


나보다 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왜 '실수'인가?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이다.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에 힘을 '보태거나' '거드는 정도'여야지 양자택일의 문제에 조언이 '깊게' 관여한다는 건 무언가 바람직하지 않다. 나와 2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나'보다 내 상황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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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제는 내가 조언을 구하는 상대들이 생각보다 '엉터리'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당신 주위에 당신이 편하게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언을 할 때 '스스로의 경험치'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일반화하기 어려울 그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결도 다르고 맥도 다를 조언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안겨줄 게다. 이 조언자들도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는 건 매한가지. 특히나 내 주변 지인들이 내게 조언을 해줄 때 '조언자와 나와의 관계'도 큰 역할을 한다.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조언의 결과 심도가 정해지기도 한다. 이런 조언에 내 중대한 결정을 맡겨도 될까?


물론 주변 사람들의 조언, 아름다울 수 있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각도에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애정 어린 여러 말들을 듣다 보면 나 혼자 생각할 때 보다 더 깊은 통찰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혼자 머릿속에 생각을 담고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리가 되기도 하고 정답을 찾게 되기도 한다.


내게 정말 제대로 된, 엉터리가 아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언제 행복한지, 무엇을 해야 즐거운 사람인지. 더 나아가서 내 삶에 깊은 애정이 있고 내 입장에서 나의 상황을 '현명하게' 생각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결국 엉터리가 아닌 진정한 조언자는 '나'이다.


타인보다 내가 답을 더 잘 알고 있는데 당연한 문제에 다른 사람의 의견이 너무너무 궁금해질 때는 한 가지 경우 밖에 없다. 내 스스로 내린 답에 확신이 없을 때. 이 경우는 대부분 '내가 내린 결정에 신뢰가 없을 때'이다. 신뢰가 없으니 불안하고 확신이 없으니 걱정이 되어 누군가의 동조가 필요하거나 응원이 필요할 때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한다.


'같이 살기'라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엉터리 조언자들에게 답을 구할 것인가? 내 삶의 즐거움을 크게 좌지우지하게 될 이 큰 사건에 대해 나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부실한 결정을 내리고는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구할 것인가? 나와 대화하기에 조금 더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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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경영전문대학원을 다닐 때 'entrepreneurship: 창업가/기업가의 되기 위한 과정'에 대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꽤 유명하신 경제학자이신 교수님이 수업 첫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놀랍고 멋진 사업 아이디어들의 80% 이상은 3F들에 의해서 사장된다. 친구들, 가족들, 바보들(3F: Friends, Family and Fools).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서 본인만큼 잘 알고 본인만큼 열정을 가지고 덤벼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엉터리일 확률도 높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귀를 닫고 밀어붙일 만큼 확신이 있는 일인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물어봐야 한다."


결이 비슷한 말이라 생각한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귀를 막고 밀어붙일 만큼 그 사람이 내 동거인으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내가 즐겁게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이다. 물론 내 생각이 틀렸을 때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져야 한다. 그래서 더 신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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