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엔가 있을 나만의 하몬 찾기
2013년 6월 어느 날, 스페인 남서부 세비야에 있는 한 대학에 세미나 참석 차 갔다가 마드리드로 돌아오기 위해 세비야역에서 기차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득 출출함이 느껴져 역 한편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갔다. 물 한 병과 빵 가운데 하몬 두 조각이 투박하게 들어 있는 샌드위치 하나를 샀다. 자리 잡고 앉아 휴대폰으로 자주 가는 온라인 게시판에 새로 올라온 글들을 가볍게 읽다가 큰 기대 없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이.럴.수가. 너어어어어어무 맛있었다. 정말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담백한 빵과 짭조름한 하몬이 아주 잘 어울렸는데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맛이 났다. 부드러운 빵의 속에 있는 말린 돼지고기의 딱딱한 식감도 좋았고 다 씹고(?) 난 후의 목 넘김(?) 때 느껴지는 특유의 향도 좋았다. 아,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너어어어어무 맛있어서 씹는 속도를 줄이고 한 입 베어 무는 양도 줄였다. 천천히 그 맛을 즐기고 싶었다.
나는 본디 샌드위치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입이 작은 편이라 햄버거나 샌드위치, 상추쌈을 먹을 때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약간 건조한 느낌이 나는 샌드위치용 빵들이 맛있게 느껴진 적이 그다지 없어서 즐겨 먹지는 않았다. 사실, 하몬 샌드위치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음식이다. 동네 맥주집에 가서 맥주 한 병 시키면 그냥 딸려 나오기도 하고 우리나라 어느 빵집을 가도 꼭 있는 팥빵처럼 하몬이 들어간 샌드위치는 스페인 어느 빵집을 가도 볼 수 있다. 스페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하몬 샌드위치를 셀 수 없이 많이 먹었을 텐데 딱히 엄청 맛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적당히 짜고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비린 맛이랄까.
하몬은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햄인데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햄으로 짠맛이 강해 달달한 와인에 안주로 곁들여 먹기도 하고 샐러드나 각종 요리에 두루 쓰인다.
하몬은 종류와 품질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딱히 관심도 호기심도 없었던 그냥 흔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세비야역 카페테리아의 그 하몬 샌드위치는 내 입맛에 딱 맞는, 말 그대로 정말 똭! 맞는 취향 저격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몬이 이렇게 맛있을 줄은.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고는 두 개를 더 사면서 점원에게 빵 속의 하몬이 어떤 제품인지에 대해, 민망함을 무릅쓰고 물어서는 메모를 했다. 이 날 이후 나는 그 하몬을 주기적으로 구매해서 다양한 요리와 곁들여 먹기도 하고 따뜻한 밥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하면서 내 인생 최애 음식으로 삼았고 하몬에 대해 자세하게 찾아보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 하몬을 계기로 나는 아직 내가 모르고 있을, 세상 어딘가에 또 존재할 제2의 하몬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음식들 중에 우왓 맛있다 할 만한 음식을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첫술을 뜰 때 혹시? 하고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 기대감이 참 좋다.
세상살이 참 별 거 없고 사람 관계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사십 대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살이 참 별 거 있고 사람 관계는 참 다양하다. 나는 정말로 하몬이 그리 맛있을지 몰랐다. 세 개를 먹어도 또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있을지 몰랐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싶을 정도로 마음에 꼭 드는 사람, 있다. 세상에 존재하더라.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 사람,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 하몬을 가족 중에 한 명으로 만나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로 혹은 연인이나 배우자로 때로는 살다가 알게 된 지인으로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미 자신만의 하몬을 만난 사람들도 있을 게다. 그런데 아직 이 하몬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거다.
내 취향에 꼭 맞는 하몬을 만나서 하나부터 열까지 이렇게나 잘 맞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이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아직 못 해본 사람들은 기대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 어디엔가는 있더라, 나와 찰떡궁합인 사람이. 나의 경우를 보아도 내 주변 사람들을 봐도. 뭐래, 100년을 살아봐도 없던데 하는 분들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눈 씻고 봐도 눈을 식염수로 헹구고 보아도 찰떡궁합 동거인이 안 보이는 분들, 여기 비법이 있다.
눈을 크게 뜨시라. 메모할 준비 하시라.
나의 하몬, 찰떡궁합 동거인을 만나는 법.
우선 내 입맛에 꼭 맞는 하몬은 어떤 하몬 일지 생각해보자. 구체적일수록 좋다.
대화가 밤새 끊이지 않는 사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 책임감이 강한 사람, 지적인 사람, 근육이 많은 사람,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 책을 많이 읽은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인생에 욕심이 많은 사람,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는 사람,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 나와 영화/음악/책 취향이 비슷한 사람, 손가락이 예쁜 사람, 뭐든 좋다. 생각나는 대로 쭈욱 정리를 해보자.
그런 다음 그 하몬을 드디어 만났다,라고 상상해보자. 내가 너무나도 기다리고 그리워한 이가 똭! 나타났을 때 그 사람에게도 내가 충분히 매력적인 하몬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하몬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하몬이 나를 보고 아 그래 이런 하몬이 있구나 하고는 무심하게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면 허공을 보고 두 시간을 소리치며 울어도 시원하지 않을 지극히 슬픈 상황이다. 나의 하몬이 나타났을 때 나 역시 그에게 ‘그가 원하는 그의 하몬’이 되어 있어야 한다. 내 하몬에게 나도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당장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보는 거다. 이 ‘실천’이 관건이다.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난다는 건가?
당장 실천 가능한 것들, 생각해보았지 않았는가? 즉각 시작해서 '꾸준히 실행하면' 만나게 되어 있다. 실행에 옮기면 만나게 된다고? 그렇다.
내 스스로가 갖추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그리고 상상하여 정리를 한 후 직접 실행에 옮기게 되면 생각만 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를 알게 된다. 직접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다양한 정보들, 지식들 직접 해보면서 겪게 되는 여러 사건들, 만나게 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조금씩 쌓이게 된다. 그런데 나와 결이 비슷한 것들을 쌓아 가고 있는 누군가 또는 이미 쌓아둔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쓰는 단어 하나에, 짧은 문장 하나에, 사소한 행동 하나에 눈이 가고 관심이 간다. 생각만 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무언가'에 대한 안테나가 생기면서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내가 동경하고 있는 그 어느 지점엔가 이미 가 있는 사람 혹은 가려고 노력 중인 사람을 알.아.볼.수.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아보고' 나와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인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인가? 뭔가 통할 것 같은 사람인데? 하고 궁금해할 때 상대방도 나에 대해 비슷한 호기심/관심을 가지게 된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이런 과정으로 가까워지고 관계가 깊어지다 같이 살게 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찰떡궁합 + 멋진 내 동거인이다.
지금 같이 살까 말까 고민 중인 사람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망설여진다? 동거는 현실이다. 주저주저 머뭇거리게 되는, 확신이 부족한 사람을 두고 '세상사 별 거 없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그렇고 그렇지 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당신은 그 사람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