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쩌자고 너와 결혼했을까

감정선에 따른 대화 방식의 차이

by 이정화

사람들 간의 소통은 참 중요하다. 심적/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참 중요하다. 같이 사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중요하다.


남: 미안해.

女: 뭐가? 뭐가 미안한데?

남: 다 미안해. 전부 다.

女: 전부 다 뭐?

남: 너를 서운하게 한 것들 전부 다 미안해.

女: 내가 뭐가 서운한데?

남: 사과를 하고 있잖아. 사과를 하면 좀 받아주면 안 돼?

女: 뭘 잘 못한 건지도 모르면서 무슨 사과를 한다는 거야?


빠지직!


男: 며칠 전에 내가 그 말을 괜히 한 거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너는 그런 의도로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뾰족하게 반응을 보인 거 같아.

여: 무슨 말?

男: 그때 스테이크 먹으러 간 날, 저녁 먹다가 네가 그랬잖아.

여: 내가 뭐라고 했는데?

男: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야?

여: 밑도 끝도 없이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무슨 말인지 그냥 바로 말해.


여기도 빠지직!



남: 미안해

여: 사과했음 됐어. 앞으로는 그러지 마.

남: 응. 고마워.


男: 며칠 전에 내가 그 말을 괜히 한 거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너는 그런 의도로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뾰족하게 반응을 보인 거 같아.

女: 그렇잖아도 나도 내내 신경 쓰이더라고.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미안해.

男: 아니야, 내가 미안해.


女: 어디야?

남: 나 지금 술 한 잔 하고 있어.

女: 나 저녁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녁 자리 있다고 카톡 한 줄 보내줄 수 있잖아. 그게 어려워?

남: 얘기한다는데 깜빡했네.

女: 기다리고 있을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남: 부장님 하고 업무 얘기하다가 저녁 자리까지 이어진 거야.

女: 왜 매번 연락도 없이 사람을 기다리게 해?

남: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리 까칠하게 얘기해? 내가 또 언제 맨날 그랬냐?


또 빠지직!


男: 지금 어디라고?

여: 친구들이랑 저녁 자리 중이야.

男: 친구 누구? 저녁 약속 있다고 안 했잖아.

여: 지영이라고 있어. 갑자기 생긴 약속이라 말할 타이밍을 놓쳤네.

男: 퇴근하고 바로 집에 온다 하지 않았어?

여: 그러려고 했는데 약속이 생겼어.

男: 친구하고 저녁 먹고 들어온다고

카톡 한 줄 보내는 게 어려워?


다시 빠지직!


여: 어디야?

남: 나 지금 술 한 잔 하고 있어.

여: 아, 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녁은 먹었어?

남: 응. 먹었어. 미안 미안. 연락한다는 게 깜빡했네.

여: 응,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男: 지금 어디라고?

女: 아, 내 고등학교 친구 중에 지영이라고 있는데 왜, 얼마 전에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는 친구. 걔가 갑자기 기분이 너무 안 좋다고 해서 위로도 해줄 겸 해서 저녁 같이 먹기로 했어. 미리 얘기한다는 깜빡했네. 오늘 업무가 많아서 조금 정신이 없었어.

男: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으면 아직 멘탈 상태가 안 좋겠다. 위로 잘해주고 와. 저녁 맛있게 먹고.



어떤 사람은 감정선이 굵직굵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감정선이 섬세하다. 감성선이 굵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대화가 대체로 시원시원하고 감정선이 섬세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나누는 말들의 톤이 어딘가가 따뜻하다.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성격과 감정선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감정선이 섬세한 사람도 무뚝뚝할 수 있고 감정선이 무딘 사람이 예민해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 감정선이란 상황이나 현상, 사람, 사물 등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나 마음의 변화 과정을 말한다.


이 감정선에 따라 대화의 방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감정선이 굵은 사람은 현상과 상황 자체에 집중을 하는 편이고 감정선이 섬세한 사람은 그 상황에 대한 마음이나 기분에 우선순위를 두는 편이다. 새로이 사람을 알게 되어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느끼고 마음이 설레는 단계에서는 이 감정선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의 기류가 마냥 핑크빛일 때는 감정선이 굵든 섬세하든 상관없이 온 신경이 상대방에게 쏠려 있게 마련이라 어떤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익숙해지고 안정기에 들면서 도파민 분비가 적어지고 세로토닌이 왕성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공중 부양 중이던 감정이 바닥으로 내려오며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더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이때 감정선의 중요도가 아래에서 위로 쭈욱 올라오게 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화가 날 정도의 사건은 아니었는데 말이 오고 가는 그 순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 대화의 방식에 차이가 원인일 때가 많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대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직업, 살아온 환경, 성격, 관심사 등에 따라 너무 달라서 단순하게 유형화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크게 보면 감정선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듯하다.


감성선이 굵다, 감정선이 섬세하다.


감정선이 굵은 사람은 현상과 상황 자체에 집중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톤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쪽에 가깝고 감정선이 섬세한 사람은 그 상황에 대한 마음이나 기분에 우선순위를 두고는 상황에 몰입하고 감성적인 사고를 하는 쪽에 가깝다. 나는 어느 쪽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와 같이 사는 그 사람은 어떤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아름답긴 하지만 나와 다른 면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기도 하니 감정선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관계가 깊어지기도 한다.


자, 그럼 같이 사는 그녀가/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선이 나와는 다르다면? 늘 신경을 쓰고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와는 대화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조오오금 배려해 주는 게 좋겠다. 화가 났을 때, 다툴 때, 서로의 예민한 부분에 대해 얘기할 때는 특히 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를 수 있다'만 생각해도 큰 갈등을 피해 갈 수 있다.


나는 무디고 상대방은 섬세할 경우.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먼저 헤아려주고 공감해주는 말들을 대화 사이사이에 넣어보자.


- 속상했을 거 같아.

- 서운했겠네.

- 나라도 기분이 안 좋았을 거 같긴 해.

- 기분 안 좋은 거 당연하지.

- 섭섭했겠다.

- 충분히 언짢을 만한 상황이야.


나는 섬세하고 상대방은 무딘 편일 경우. 상황 중심으로 생각해보도록 하자.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덜 좋아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거다'라고 단정 짓자. 상대방이 한 말 이외의 범위까지 감정이나 사고를 확대시키지 말고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는 무심함이 필요하다.


오랜 친구 사이, 동업자 사이, 부부 사이, 동거인 사이는 아주 사소한, 별 거 아닌 일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의미 없는 사소한 행동 하나에 지금까지의 언행이 다시 보이고 스치듯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되어 관계에 틈이 생기기도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이 감정선에 따른 대화 방식의 차이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서운하긴 한데 섭섭하기도 한데 막상 뭐라고 말을 하자니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말을 꺼내자니 상대와 나 사이에 얇은 벽이 하나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꺼낸다는 자체가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 것 같아서 그저 넘기고 넘기다가 서운함이 상처가 되고 상처가 곪아서 엉뚱한 지점에서 폭발해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화를 내기에 서운해 하기에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은 부딪히고 화를 내는 과정이 명확해서 치명적이지 않는 한 오히려 더 건강하게 털어버리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소한' 것들로 인한 갈등은 불씨를 키운다. 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상처 받는 내 모습이 우습고 초라해 보이다가 혼자 툭 내뱉게 된다.


"내가 어쩌자고 너와 결혼했을까."

'내가 어쩌자고 너와 같이 살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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