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가주 Dec 25. 2022

그 여름날(6)

짧은 창작 소설


 민우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그가 지치지 않았으면 했다. 쉬는 것이 낭비가 아닌 승부수를 던지기 위한 숨 고르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야구장에서의 열기는 검은 바닷속으로 어느새 사라져 버린 듯했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가의 손님들에게로 시선이 머물렀다. 하이웨스트 청바지에 하얀색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바다를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검정 리넨 투피스를 입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 테이블에는 두 쌍의 남녀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해 얼굴의 선이 굵은 남자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지고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단발머리에 얇은 회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는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듯 남자 쪽으로 턱을 괴고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자 옆에 앉아있는 다른 여자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옅은 미소만 띠고 있었다. 베이지색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에 조금 어려 보이는 인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얼핏 보면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처럼 보이는 아들과 아버지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주려는 듯 연신 잘 들어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귀찮은 듯 바다만을 바라보며 아버지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수민이에게 연락이 왔다. 녀석은 일식집 위치를 문자로 보내왔다. 자기가 잘 가는 단골집이니 그 가게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계산을 하고 나왔다. 멀지 않은 곳이라 걸어서 그곳까지 갔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민이와 그의 여자친구가 같이 앉아 있었다. 안주를 주문하고 술을 마시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여서 그런지 모두가 금세 취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얘기하며 낄낄거렸다. 술이 들어갈수록 나는 점점 말이 많아졌고, 민우는 어느새 테이블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민우를 깨워 가게를 나왔다. 수민이와 그의 여자친구는 택시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민우는 술도 깰 겸 조금 걷자고 했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밤거리를 걸었다. 검은 도로 위에는 맹수처럼 질주하고 있는 차들이 보였다. 혹여나 자칫 차도로 조금이라도 넘어가게 된다면 먹이를 단숨에 낡아 채듯이 우리에게 덮칠 듯한 위협이 느껴졌다. 차도와 조금이라도 멀어지려 그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그렇게 나란히 걷다 보니 유년시절의 우리가 생각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그 여름날(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