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청소년기 나는 이유도 기억 나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이유로 친구들과 자주 다퉜다. 가끔은 울면서 집에 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밤이 되면 늘 감성에 젖었고, 친구와 다퉜던 순간을 되뇌다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형형색색 펜을 집고는 꾹꾹 눌러 사과 편지를 쓰곤 했다.
다음날 아침, 교복을 입으며 또 아침밥을 먹으며 친구에게 사과 편지를 어떻게 건네야 덜 민망스러울지 고민했고 다소 긴장된 등굣길을 걸었다. 교실에선 친구의 동선을 살피다 편지를 건네줄 최적의 타이밍을 잡으면, 쭈볏쭈볏 걸어가 "OO아~ 어제는 미안했어." 하고 편지를 건넸다. 친구 역시 멀찍이 걸어오는 나를 눈치채고 있었고 편지를 받기도 전에 "나도 미안했어~"라며 눈시울을 붉히며 풀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감정을 섞으며 더욱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친구든 가족이든 감정 섞이는 것이 이토록 피곤한 일인지 깨달은 어른이 되고 나서부턴 누군가와 크게 마찰을 빚지 않는다. 감정이 상하면 한동안 조용히 거리를 두었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 껄끄러움을 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 픽하고 삐지긴 했지만 나서 말하느니 이 편이 나았다. 돌아보니 그렇게 멀어져 떠나보낸 인연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6년 내 붙어살다시피 하고 있는 6살 난 조카가 있다. 필터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한 내 조카는 때때로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종일 짜증과 울음을 동반했던 날이었다. 이날 엄마가 약속이 있어 이모인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언니와 약속한 시간까지 조카를 봐주고 집에 돌아가는 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누가 나를 크게 부른다.
"이모~! 아까 화내서 미안해! 사랑해요!" 어눌한 말투로 미안하다고 혹여 내가 못 들을까 목청을 올려 말한다. 화가 나지도 않았지만 ‘사과를 하고 내가 그 사과를 받아준다는 것은 따뜻한 것이었구나’ 새삼 잊고있던 세포가 반응하는 듯 했다. 나도 사과하는 것이 우리 조카처럼 쉬웠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날 유난히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했던 귀가길을 걸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 표현을 자주 해야 한다는데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6살 조카뿐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조금은 피곤하더라도 조카처럼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엮자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 사과하고, 받아줘서 고맙다고 표현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