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경제를 망가뜨리는 자
현정이가 재미있다고 하기는 했지만,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금융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책들을 이미 여러 권 읽었고, 영화 빅쇼트에 나오는 금융 회사들이 CDO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메이커와 테이커스는 다음과 같다
메이커: 만드는 자
테이커스: 거저먹는 자
생각해보자. 거저먹는 자(takers)를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저먹고 탈이 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조성된다면, 누구나 힘들게 만들지 않고 거저먹으려고 할 것이다. 금융이라는 분야뿐만 아니라, 산업 여러 분야에서 거저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눈으로 기회를 찾은 것뿐이라며, 새로운 밸류를 만들어내지 않고 그냥 거저먹는다. 그러나 작은 회사들이 그냥 거저먹어서는 금방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고, 보통은 대기업들^^;;이 본인들의 먹이 사슬 내에 있는 피식자들을 잡아먹는다. 그것도 확 잡아먹지는 않고 서서히.
내가 생각한 이 책의 포인트는 거저먹는 자인 테이커스가 만드는 금융화이다. 금융화란 금융과 금융적 사고 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게 되어버린 현상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금융화는 돈을 다른 돈으로 사고파는 거래인 진짜 금융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적 사고 방식으로 관리를 손쉽게 하기 위해 금융화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아래 GM의 사례처럼, 관리할 지표를 쪼개고 또 쪼갠다. 그리고 그 각 지표들을 사일로 성격을 가진 각 조직들이 개별적으로 관리한다. 실제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견보다 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조직의 주요 의견으로 자리 잡는다.
좀 더 쉽게 와 닿는 이야기로 바꿔 보자. 온라인에 콘텐츠를 만들어서 결제한 유저가 볼 수 있도록 하여 돈을 버는 회사가 있다. 유저들은 그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가입하고, 결제하고, 콘텐츠를 즐긴다. 그 회사가 어느 정도 잘 되어서 회원 가입률을 담당하는 팀, 결제 전환율을 담당하는 팀, 콘텐츠 완독률을 담당하는 팀으로 쪼개 졌다. 이 책에서 나오는 똘똘이들은 이런 회사가 관리가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유저의 경험은 그렇게 쪼개 져서 관리될 내용이 아니다. 가입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는 결제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와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결제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는 지속적인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법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팀별로 쪼개져서 본인들의 KPI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내부의 충돌뿐만 아니라, 서비스 내에서 유저의 경험도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하향식 경영 관리까지 더 해져 실무자들이 본인들의 업무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하게 된다면, 서비스의 유저 경험은 금방 바닥을 칠 것이다.
앞에 까지 이야기에 비슷한 고민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5장 정도까지는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커져 갈 때, 자신의 조직에서 금융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똘똘이들이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한 정확한 영향력을 몰랐을 뿐이다. 열심히 하는데 방향이 틀린 사람이 가장 무섭다. Makers, 만드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결국 실현 가능성을 신경 쓰지 않는 숫자 놀음을 하게 될 뿐이다.
자유시장 지향적이며 오로지 이론의 예측력에만 관심을 둘 뿐 가정의 실현 가능성에는 개의치 않았다.
아래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옮겨 본다. 가장... 이라고 말하기엔 좀 많다.
숫자놀음꾼의 등장
숫자놀음꾼들을 비웃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GM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과 사내에 만연한 금융적 사고방식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러츠는 2014년 8월 나와의 인터뷰에서, GM의 점화 스위치 위기를 키운 사일로는 경영진이 전반적인 품질 및 소비자 만족보다 재무 지표에 집착한 데서 비롯된 현상임을 확신했다. 러츠에 따르면, "숫자놀음꾼들은 조직을 통제가 쉽도록 잘게 나누는 것과 부분 최적화가 바람직하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금융이 회사의 중심이 되면 사일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회계사의 관점에서는 이 구조가 무척 좋다. 회사의 여러 영역을 대차대조표에 반영하기 쉽고 하향식 경영 관리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재무적 통제 사고에서 나옵니다. 자기네 손아귀에서 위험 요인이 벗어나게 만드는 전략이나 철학을 접할 때마다 그 사람들은 전전긍긍하죠."
맥나마라와 똘똘이들
똘똘이들이 제시한 수치들은 요란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썩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결정으로 이어진 핵심 수치는 그것이 최선의 결과물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계산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선택된 경우도 많았다. ... 결국 시스템 분석 기법은 이미 알려져 있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는 효율성 증가에 큰 역할을 했지만, 정작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이용하기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특히 인간의 동기나 정서 같은 까다로운 변수가 다수 개입된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품질을 외면한 기업의 운명
맥나마라는 핀토 참사에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 1960년 포드 사장직을 꿰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맥나마라는 더 높은 자리로 옮겨 간다. 새로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이 그를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젊고 합리적인 테크노크라트 성향의 케네디 행정부에서 맥나마라는 딱 들어맞는 듯했다. 장차 베트남전이라는 복잡한 사업에 수학적 정밀성과 계량 분석을 도입할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측정 가능성에 대한 집착은 맥나마라의 눈을 가려 전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했다. '최고의 인재들'에서 핼버스탬은 맥나마라를 이렇게 묘사했다. "실제 경험이라고는 거대한 차량을 생산하는 세계 2위의 자동차 제국에 몸담은 것밖에 없었던 이 인물은 정치적 자유를 갈망해 일어선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헤어리기에는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케네디 행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맥나마라는 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 사건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상징했다." 맥나마라에게 게릴라전에 대응하는 일은 자동차 생산 라인을 감독하는 것과 같았다. "시스템을 도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수치를 앞세운 관리자만 결정권을 가진 하향식 의사 결정 시스템은 베트남전을 패전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자동차 산업을 일으켰던 미국의 압도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MBA가 가르쳐 주지 않는 것
밸리언트가 제약회사 가운데서도 유독 부도덕한 기업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성장을 바라는 대형 제약회사 상당수가 진정한 혁신 활동은 멀리하고 월가의 조언에 따라 인수합병 같은 금융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제약회사 중역들은 금융화 추세를 단소하게 거부할 수도 있었다. 화이자 같은 회사는 당장 자본 시장에서 돈을 당겨 와야 할 필요도 없다. ... 이들은 경영대학원 시절 기초 재무학 수업에서 배운 바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리스크가 있는 자산은 최소화하고 주주가치를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2008년~2013년에 제약업계 전반에 걸쳐 15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연구개발직이었다. 그뿐 아니라 금융화는 연구 활동의 아웃소싱 추세를 강화했고, 왕년의 혁신적 제약회사들은 흡사 이상야릇한 투자 포트폴리오 운용사처럼 보이는 이질적 기업들이 뒤섞인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 속한 기업들은 따로따로 움직이면서 가능한 한 빨리 큰돈을 벌려 애쓰는 가운데, 각자 내리는 결정이 가져올 장기적 충격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제약 업계로 투입되는 자금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음에도, 업체들 자체는 마치 거대 금융기관처럼 돌변하기 시작해서 이른바 가치라는 것을 쥐어 짜내기는 하지만 정작 그 대가로 창출해 내는 결실은 별로 없다.
전형적인 MBA 과정에서는 CEO들에게 이런 식의 비용 절감을 주문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과정에 포함된 금융 수업에서는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역설한다는 것이다. 금융 입문 과목에서는 자본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필요한 곳으로 흘러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제약업계를 보면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 뛰어난 경영 인재를 혁신적 기업가와 일자리 창출자로 양성하기보다는, 번지르르한 수치에만 몰두하는 경영인으로 키워 내고 있다.
문제 해결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
금융을 철저히 가르치거나, 현실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는 식으로 교육하는 것도 아니다.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인 금융 리스크 모델링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부정확한 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법 주문을 읽어 내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금융 리스크 모델링이란 온갖 나쁜 경우에 관련된 수천 가지 변수를 검은 상자에 집어넣고, 날마다 은행들이 취하는 수백만 건의 거래 포지션과 함께 섞은 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해당 은행이 입을 법한 손실을 이해하기 쉽게 간단한 숫자로 바꾸어 놓은 장치이다. 그러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나 "미국과 유럽의 국채는 결코 신용 등급이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같은 과거의 가정에 의존하고, 시장을 뒤흔드는 사건은 그 자체가 동력으로 확대된다는 사실조차 감안하지 않는다면 오류는 필연적이다. ... 경영교육의 문제는 학생들이 실제 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다단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데, 경영대학원에서는 풀어야 할 문제에 상관없이 정답을 찾아가는 일련의 기법과 질문을 가르친다는 말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들을 보면, 거기에 소개되는 기법들은 모두 효율성 증대나 비용 최적화, 생산 품목 축소, 경쟁 업체 인수, 물류 개선, 과다한 창고의 처분, 필요한 창고의 확충 등을 위한 것입니다. 온갖 설명에 이어 산더미 같은 수치들이 등장하죠. 그러면 학생들은 표와 수치들을 조목조목 읽어 내려가며 분석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해결책을 찾게 되죠. 문제는 바로 X다 하는 식으로요. 여기까지 하고 나면 똑똑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금융화가 단지 기업의 사업 방식과 장소를 바꾸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금융화는 기업 고유의 문화까지 바꿔버려, 한결같은 품질과 소비자 중심의 관점보다는 위험스러운 도박과 빠르고 쉬운 성과를 더 중시하게 만든다.
* 밸리언트는 Netflix 다큐 중 Dirty Money라는 다큐 2화에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큐 시리즈다. 책을 읽기 전에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해가 더 쉬울 듯.
* 맥나마라는 The Post에 이어서 이 책에도 등장한다. 맥나마라 나무위키를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