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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Oct 23. 2016

로버트 쉴러, 새로운 금융시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분야인 금융에 대한 기획 업무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난 다음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근처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것이었다. 서비스의 기획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방향 설정과 설정된 방향에 따른 세부적인 의사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을 업으로 해본 적은 당연히 없고, 사람들이 흔히 쉽게 관심을 가질 만한 재테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내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지식을 쌓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골라 읽은 10권가량의 책 중에 내가 인상적이었던 몇 권의 책을 앞으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이번 글에서 소개할 책은 로버트 쉴러 교수의 '새로운 금융시대'이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새로운 금융시대에 금융에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들(CEO, 자산운용사, 은행가, 투자은행, 모기지 증권회사와 대출자...)의 역할과 책임을 정리해두었다. 두 번째 파트는 새로운 금융시대에 대한 저자의 아이디어가 적혀 있다. 물론 이 글은 책 소개보다는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들에 대한 정리에 가까우니, 본격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금융자본주의는 인간의 발명품이고 아직 미완성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더 민주적이고 더 인간적인 금융시스템이 우리 삶에 폭넓게 스며들어야 한다. 이는 일반 시민이 다양한 정보와 자원에 접근하고, 금융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기회를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스스로를 공격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금융기관의 피해자가 아니라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참여자가 될 것이다. 

- 프롤로그. 금융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금융'이라는 키워드를 듣고 난 다음, 긍정적인 단어를 연상하기는 좀 어렵다. 특히 금융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시민들의 분노를 산 금융업에 대해서 로버트 쉴러 교수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로 금융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서브프라임 사태는 집값에 대해서 너무 낙관적으로 예측한 시스템의 문제이지 모기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일반 시민의 정보에 대한 접근/참여를 언급한다. 기존의 금융이 블랙박스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새로운 금융에 맞는 시스템은 일반 시민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모기지 대출 과정의 여러 특징이 수정되어야 하며,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기관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담보부채권의 신용등급 평가가 정확했다면, 주택 가격 하락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규제 기관들이 증권 보유자들에게 인센티브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시스템은 효과적으로 굴러갔을 수도 있다. 
모기지 금융 증권화 과정의 문제는 금융위기를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앞으로 계속 수정될 것이다.... 금융혁신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새롭고 더 나은 모기지 기관이 생겨야 한다. 물론 금융위기와 연관된 혁신적인 모기지 상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말이다. 모기지 업계에 있는 창의적인 사람들은 그전에 많은 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기지 계약을 미리 계획하고 실험한 다음, 집주인에게 더 유연하게 적용되게끔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모기지 금융혁신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존 오브라이언이 제안한 분산 대출금 투자 같은 시스템이 있다 이는 집주인들이 집에 대한 주식을 파는 것이다 혹은 앤드류 케플린과 동료들이 제안한 하우징 마켓 파트너쉽도 있다. 집주인이 집을 사는 기관과 파트너를 맺는 것이다. 
... 이제 사람들은 주택 가격 신화를 믿지 않을 것이고,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금융시장의 발전과정에서 뼈저린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더 나은 금융기관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 모기지 증권은행과 대출자. 모기지 증권화 


나는 요즘 사람들이 금융회사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히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도전을 할 수 있는 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이 항상 쉽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일상성과 친숙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변화에 보수적인 오래된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규제 당국의 사람들은 비전과 목표를 갖고 일하지만, 금융시장을 주제로 한 논의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기업인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회자되는 반면, 정부나 사업을 관할하는 규제 당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규제 당국과 그들의 노력은 금융 시스템의 근간이 된다. ... 사업가들도 역시 규제를 무척이나 원한다.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하게 가해지는 규칙이 개인의 불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규제가 없다면 본인조차 믿기 어려운 일들을 위해 억지로 해야 할 수 도 있다. 

- 규제당국. p172


이전에 일을 하면서 접했던 규제 관련 법률은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것 밖에 없었다. 그와 관련하여 지금의 업무는 그간 경험했던 것과 확실히 다르다. 법 조항을 참고하면서 서비스 기획서를 작성하는 건 확실히 예전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부업 법에 따라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법률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모호한 여러 가지 케이스를 만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다행인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래도 참고할 수 있는 대부업 법이 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대출 고객과 투자 고객에 대해서 모두 동일하게 공개된 정보로 상대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만들거나 속일 수 없다는 것. 
막연하게 정부의 규제, 업체 자체의 규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다르다. 


물가연동채권은 원래 18세기에 만들어졌으나, 20세기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전혀 발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채권 투자를 물가와 연동되는 형태로 바꾸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하물며 각각의 개별적인 리스크에 맞추어 이런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도록 고안된 좀 더 복잡한 투자수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금융의 근본적인 진보는 몇 년이 아니라 몇백 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금융혁신이 느린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익숙하지 않은 추상적 표현들이 가득한 기본적인 금융 개념은 우리가 이해하고 다루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사고에 깊이 뿌리 내린 익숙한 개념들에 의존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 
금융혁신은 단순한 기술적 도전이 아니다. 금융혁신은 부분적으로 친숙한 개념들을 검토하여 재구성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을 수정하고 조정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맞는 새로운 단어들을 창조해야 한다.

- 익숙한 것을 향한 충동 p.250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에게는 생소한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쉽게 설명하는 것과 정확하게 설명하는 방법 사이에는 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금융이라는 분야는 돈이 왔다 갔다 하는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련 서비스들은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오해하게 만드는 리스크를 지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친절하게 설명하고는 싶지만, 혼동을 주는 건 안된다. 이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도메인 안의 용어과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책은 책의 내용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저자의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들을 수 있어서 나한테 더 좋았다. 그리고 저자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융에 대해서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서 분명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나 역시도 그의 생각을 믿고 싶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옮겨본다. 

그러니까 금융이란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뤄 나가는 과학’이다. 다시 말해 사람과 기업과 사회기관들이 꿈과 기획을 실현하고 목표를 구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노력을 통칭한다. 무릇 모든 일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학자금부터 결혼, 자녀 양육, 노후 대비까지. 국가 사업도 복지에도 다 재원이 따른다.

돈을 빌려준다는 행위는 대출을 받는 사람이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과정 중에 굉장히 중요한 재원에 관한 일이다. 나는 이걸 타인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아직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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