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호 Dec 31. 2021

2021, Best of the year

올해의 땡땡땡

나이가 들어서 그랬을까, 회사가 바빠서 그랬을까,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올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한 해가 지나갔다. 21년의 마지막 날, 올해의 기억 몇 가지를 남겨 본다.




올해의 레스토랑: 따띠따띠

작년엔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많이 했다면, 올해는 밖에서 많이 사 먹었다. 특히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음식점을 많이 다녔고, 다시 가고 싶은, 좋은 기억으로 남긴 음식점이 많다. 서촌에 있는 타코바 팔마도 좋았고, 압구정에 새로 생긴 고트델리도 진짜 짱 맛이었다. 오네뜨장이나, 사녹도 좋았고, 앤트로도 좋았다.

그러나 베스트는 따띠따띠. 밸런스는 다른 레스토랑이 더 좋았지만, 여긴 “고기” 하나에 집중하고 “고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레스토랑이었다. 구워서 나오는데 테이블에 숯 하나를 두어 마지막 조각까지 따듯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주고, 나오는 애피타이저들도 고기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주인공인 고기 옆을 잘 보필해주기 위한 역할을 해주었다. 22년에 꼭 다시 가야지!



올해의 배달음식: 배민1 삼겹살

입사하기 전,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던 나는 올해 배달음식을 꽤 많이 시켜먹었다. 쓰윽 봤는데 한 달에 4번 이상시 켜먹은 듯. 집에서는 반조리 식품을 많이 시켜먹는 편이었고, 낙곱새를 집 근처 여러 가게에서 시켜 먹었다. 애정 하는 은희네 해장국(서현동)과 비스트로 김치찜(정자동)에서도 많이 시켜먹었다.

삼겹살 먹었을 때 사진이 없어서 최근에 먹었던 사무실에서 먹은 육회 사진으로 대체

정자동 배달 맛집을 소개하려고 적은 것이 아니라, 배달 음식과 특별한 기억은 7월쯤 회사에서 삼겹살을 시켜먹었을 때였다. 21년 상반기 내내, 단건배달을 하는 배민1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사실 난 배고파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 음식이 꼭 빨리 배달되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했다. 그날 회사에서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시켰는데 삼겹살과 찌개가 정말 손이 뜨거울 정도로 따듯하게 포장되어 오는 걸 보고 신기했다. 삼겹살은 정말 바로 구운 느낌이었고, 김치찌개와 계란찜도 방금 주방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따듯했다. 1월부터 빠른 배달이 중요하다는 문서를 쓰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게 공감하지 못했던 내가 목표에 대해 공감했던 순간. (정신없이 먹느라 차가운 음식인 육회 사진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의 와인: 벤쩨 리슬링

화이트 와인을 한 병만, 실패 없이 고르고 싶을 땐 리슬링을 고른다. 리슬링의 어떤 맛을 좋아하는데?라는 것에 대답하긴 어렵지만, 화이트 중엔 리슬링이 좋다. 내 생각엔 리슬링은 상대적으로 미네랄이 풍부한 느낌에 과일향도 많이 담고 있다. 리스트에 잘 모르는 와인만 있는데, 괜찮은 와인을 골라야 하는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면 가격대가 좀 있더라도 리슬링을 고르면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와인은 성수 스몰글라스에서 마신 벤쩨 리슬링이다. 리슬링이라 골랐는데, 서빙해주시는 분이 짠맛이 난다고 설명해주셔서... 뭔 소리야?라고 생각했는데, 미네랄이 풍부하고 짠맛이 나서 포도주가 아니라 바닷물로 만든 술을 마시고 있는 기분이 들었었다. 맛있다 아니다를 떠나서, 색다른 경험이었고,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헝가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 이스트반 벤쩨가 만드는 와인이고, 22년에 꼭 다시 마시고 싶은 와인. (83년 산 페리에 주에도 좋았습니다만 ㅎㅎ..)



올해의 변화: 운동

30대 후반이 넘으면 체력 관리가 필수다 라는 이야길 선배들에게 정말 많이 들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가장 바쁘고 짜증 날 시기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시작한 이유가 있다. 회의하다 내가 짜증을 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 때문이 아니라 내가 피곤해서 짜증을 낼 수 있구나라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체력이 떨어지니 참을성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6월부터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PT를 다니기 시작했고(강제로 예약해주신 리사님 덕분에), 바쁜 사업계획 시즌을 제외하고 1주일에 1회 이상 다녔다. 보통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저녁 시간을 이용했다. 대단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니고, 데드 85, 스쿼트 90 정도 들고, 이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목표다.  

주말엔 꼬박꼬박 집 앞에 있는 탄천 6km을 달렸다. 1km 11분 페이스로 걸어 다니다가 조금씩 당겨서 7분 30초 정도의 페이스까지 당길 수 있었고, 12월 초엔 6km 달린 이후에 쿨링 다운 1km 정도 할 정도로 체력을 올렸다.



올해의 영화: 마션

영화관은 연초에 딱 한 번 가고, 나머지 영화들을 OTT로 보았다. OTT로 영화를 보면서 딴짓을 하기도 하고, 슬랙도 했더니 정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올해 처음 본 영화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때 본 “마션”이 기억에 남아 적어본다.

좋은 영화였고, 주인공 와트니가 감자 심느라 고생을 했지?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 다시 보니까 짧게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달랐다.


와트니는 화성에 혼자 남겨진 지 3일째, 만약 본인을 구하러 지구에서 온다면, 본인은 몇 끼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계산한다. 무작정 감자를 심은 것이 아니라, 감자를 키워서 도대체 며칠을 살아야 하는지 플래닝 한다. 사업계획 시즌이라 22년에 살아남기 위해 사업계획하는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화성에 있는 와트니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지구의 NASA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그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다시 계획을 세워서 실행한다. (국장 역할을 한 제프 대니얼스 연기도 좋았다) 우리의 22년도 다르지 않겠지.

(책에는 없지만 영화 마지막에 와트니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 "내가 가장 많이 받는 다른 질문은 화성에 혼자 남겨졌을 때 죽을 거라고 생각했냐는 것이다. 그래. 당연하지. 자네들도 겪을지도 모르니 잘 알아둬야 돼. 우주에선 뜯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제 끝이구나'하는 순간이 올 거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게 전부야. 무작정 시작하는 거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도...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2022년에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마션의 주인공 와트니처럼, NASA처럼 계획이 무너져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빈다.


올해의 픽션: 반전이 없다

올해 소설책을 4권밖에 읽지 않았다. 마쓰이에 마시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 떠오르는 책(우드잡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나옴)이었고, 이 책도 굉장히 좋았다. 주니어 건축가가 작은 설계사무소에 들어가서 성장하는 이야기, 책에 나오는 풍경과 건축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좋았고,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이야기하는, 읽으면서 마치 나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부분을 하나 옮겨둔다.

“불합리한 것이나 억지 등 여러 가지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때가 있지.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야....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 놓고 불합리하거나 억지를 잠자코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자기가 다치지 않고, 잘 흘려보내기 위해 방위책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래서는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되거든. 말도 안 되는 것에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갈 수 없게 된다. ... 정말로 죽기 살기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얼마 없어. 대단한 착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야. 그런 사람들은 이쪽이 각오만 섰으면 밀어붙일 수가 있지. 그런 때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에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에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조영주, 반전이 없다

제일 좋았던 책은 조영주 작가의 "반전이 없다"였다. 한 노인이 사망하고, 죽은 노인 집에서는 천장이 뚫려 있고 곳곳에 많은 책이 쌓여 있다. 책에는 피가 묻은 추리 소설의 반전 페이지가 찢겨 진채 발견된다. 안면인식 장애를 가진 친전이라는 형사와 배우였던 나영이라는 형사가 케미를 발휘하며 사건을 해결한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끝까지 한 번에 완독 할 정도로 재미있었고, 주인공과 주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계속 시리즈물로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었고, 곳곳에 있는 추리 소재가 작가가 제대로 추리 소설을 쓰고 싶다는 걸 잘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애매한 상상력에 적당한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들(예시: 웨어하우스) 보다 좋았다.



올해의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4년 동안 한 회차도 빼놓지 않았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마무리되었다. 골목식당은 빌런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백종원이 본인이 가진 지식, 노하우를 이용하여 가게들을 더 좋게 만드는, 백종원을 이용한 슈퍼히어로물이자 가게의 성장소설이다. 올해 들어서 너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매번 챙겨보는 나도 이 골목이 저 골목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마무리된다니까 아쉬운 마음이다.

뻔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갑자기 백종원이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고 하면 재미는 있었을지 몰라도, 거짓 예능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종원이 4년 동안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이야기는 매번 같은 메시지다. 요령을 피우지 말아라, 최선을 다 해라, 최선을 다 할 때 본인이 이룰 수 없는 욕심을 내지 말고, 본인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퀄리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해라.

백종원이 전달하는 메시지도 좋았지만, 가게와 골목을 살리기 위해 백종원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메뉴와 가게 상황에 상관없이 매번 족집게 강사 역할을 하는 걸 보고, 나는 얼마나 더 해야 이 분야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부러움 마음을 가지고 봤다. 4년 동안 잘 봤습니다. 



올해의 쇼핑: 엘지 오브제 청소기

올해 새로 구입한 제품이 많진 않지만, 제일 좋은 건 엘지 청소기다. 이 제품이 나오자마자 엘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했고, 핸디 청소기를 100만 원 넘는 가격을 주고 산다는 게 고민되었지만, 지름 하고 난 이후에는 가장 만족하는 제품이다.


LG 코드제로 A9S 오브제컬렉션

우리 집엔 하얀색 털을 생산하고 계신 고양이님이 계신다. 4kg 되지 않는  작은 고양이한테 털이 어떻게  정도로 빠지지?라는 생각이  정도로 고양이 털이 빠진다.

털 공장장, 솜이 @cottoncandy.somi


청소기가 바닥에 있는 털을 흡입하는 능력은 이제 다이슨이나 엘지, 삼성이나  거기서 거기인 상황에 엘지 오브제 청소기는 다른 혁신이 있다. 스탠드에 올려두고 버튼 한 번이면 먼지통을 비운 , 뚜껑을 다시 닫아준다.

다이슨 청소기를 쓰지 않고, 큰 청소기를 꼽아서 집 청소를 했던 이유는 먼지통을 비우는 게 번거롭기 때문이었다. 무선 청소기에 먼지통에는 고양이 털이 정말 금방 차고, 그걸 매번 치우는 것은 큰 일이다 (비우다가 가끔 사고가 발생해서 먼지가 날리기도 ㅠ_ㅠ). 엘지 청소기는 그 문제를 100% 해결해주었다. 스탠드가 자리를 차지하고, 나는 이런 전자제품이 내 부동산을 차지하는 게 싫지만, 이 녀석은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한다.



올해의 경영서적은 순서파괴, 올해의 헤어짐은 미니쿠퍼s를 적어보려 했는데, 남은 31일은 와인을 한 병 더 마셔야 할 것 같아 그만한다. 2022년의 나, 잘 부탁해. 

매거진의 이전글 재택근무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