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가 아니라 연기였기에

18살, 성우 학원 도전기

by 걱정인형

나는 TV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만화 노래, 만화 대사, 광고까지
TV 속에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을 외우고 따라 했다.


청소년기에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데 재미를 느꼈다.
사람들의 말투를 따라 하는 걸 좋아했고
말하는 것도 좋아해 말이 많은 아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런 나를 보던 엄마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 성우 학원에 다녀보는 건 어때?”

“성우 학원?”
“응. 한 번 다녀보자.”


말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내향적인 성향 탓인지
일대일로 있을 때는 잘 이야기하다가도
네 명 이상이 모이면
조용히 입을 닫는 쪽으로 바뀌곤 했다.


학교에서 발표라도 있는 날이면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점이 늘 힘들었기에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공부를 위한 학원이 아니라
성우 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꺼내 준 엄마가
그때는 조금 신기했고, 지금은 고맙다.


성우 학원은
매주 토요일마다 가야 했다.
이름은 성우 학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스피치와 연기를 함께 배우는 곳이었다.
잘 말하는 법과
표현하는 법을 동시에 배우는 공간이었다.


내가 수업을 듣게 된 분은
TV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목소리로만 익숙했던
성선녀 선생님이었다.
화면 너머로만 듣던 목소리를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신기함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학원 벽면에 붙어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카드


수강생 구성도 다양했다.
나처럼 학생인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성우를 목표로 온 지망생,
회사에서 발표나 PT를 잘하기 위해 온 직장인도 있었다.
학생이 아닌 어른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이
신선하면서도 조금은 긴장됐다.


수업 초반에는

‘말하는 법’부터 배웠다.
말을 잘하기 전에
정확하게 발음하고 소리를 내는 법,
입을 크게 벌리고
분명한 입 모양으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배웠다.


그때 배운 덕분인지
지금도 종종
“목소리와 발음이 또렷하다”는 말을 듣는다.


중반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인데 연기라니.’
‘공부도 아니고 연기라니.’
‘예고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흥미로우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주어진 대본을 마주하고
그저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받았던 대본은
여러 개의 독백 대사가 모여 있는 독백집이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대사가 하나 있다.


“어머님의 그 아들아들 소리,

저도 정말 지긋지긋해요!
제가 이 집에 시집와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할 때,
어머님 아드님은 밖에서 딴짓하고 다녔어요…”


출처 : 드라마 <조강지처클럽>


나중에 찾아보니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의
한복수 독백 대사였다.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대사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결혼한 아내의 입장이 되어
시어머니에게 울분을 토해내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열심히 하긴 했지만
완전히 몰입해 연기하기는 어려웠고,
그 경험 덕분에
연기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


이후 수업에서는
<벼랑 위의 포뇨> 포뇨 역으로
실제 더빙 연습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소스케와 엄마, 포뇨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포뇨가 샌드위치 속 베이컨만 골라 먹는 장면이다.


출처 : <벼랑 위의 포뇨>의 베이컨 뺏어먹는 포뇨


포뇨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행동을 소리로 표현해야 했다.
베이컨을 입으로 잡아당기고,
씹고, 삼키는 소리를
목소리로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나는 ‘말을 해야 하는 나’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 말하는 나’를 알게 됐다.
연기 속에서는
틀릴까 봐 주저하기보다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 먼저였고,
그래서 말과 행동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비록 성우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그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고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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