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면접

by 걱정인형

세상에는 어떤 직업이 있을까.

열심히 찾아보다가 공무직이라는 직무를 알게 되었다.


공무직.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상시근로자로
무기계약직인 경우가 많다.


한때 나는 공무직 지원을 목표로 삼았다.


공무직에 지원하더라도

디자인 관련 직무로 지원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고,
잡알리오와 나라일터에서 공무직 채용 공고를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물관에서 게시한 디자인 및 홍보 분야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지원 조건은 디자인 전공, 디자인 경력, 그리고 디자인 관련 자격증 보유였다.


세 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했던 나는
지원서를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사기업에만 지원해봤던 터라 공공기관 지원은 처음이었다.
기본적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뿐만 아니라
직무계획서, 학력·경력 증빙 서류 등
첨부해야 할 서류가 꽤 많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제출할 서류들을 한글 파일로 작성하고
하나의 PDF 파일로 묶어 제출을 마쳤다.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의 미션을 끝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가만히 있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을 내딛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지원서를 낸 뒤
한참이 지나 서류 결과 발표 날이 되었다.


메일이나 문자로 알려주는 사기업과 달리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직접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서류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 뒷자리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그 기분을 어떤 단어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서류 합격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면접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시간은 이틀 남짓.


인터넷에서 공무직 면접에서 자주 묻는 질문과 팁을 찾아
노션에 정리했다.


정리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하나씩 작성하고
읽어보고, 다시 고치고, 또 정리했다.


작성해둔 답변을 바탕으로
대답하는 연습도 반복했다.


면접 복장은 늘 옷장 속에서
가장 단정한 옷을 골라 입고 갔지만
공공기관 면접은 정장을 갖춰 입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랜만에 동네 아울렛에 들렀다.


면접용 정장 세트를 하나 구입했다.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으로
면접 때 입을 옷을 다음 날 바로 입을 수 있도록

행거에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그리고 면접 질문에 대한 답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드디어 면접 날.


지금까지 해온 직무와는 다른 면접을 보러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 어느 면접 날보다 유난히 떨렸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부러 질문을 정리한 메모장을 보지 않았다.


메모장을 계속 들여다보면
오늘이 면접 날이라는 사실이 더 또렷해져
긴장이 더 커질 것 같았다.


전날 걸어두었던 면접 복장을 입고
가방을 챙긴 뒤
신발장 옆 전신거울 앞에 섰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후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잠시 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저 앞으로 가야 해서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면접 안내자로 보이는 분이 나를 맞이했다.


"혹시 심사하러 오신 건가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저는 오늘 면접 보러 왔습니다."


내가 심사위원으로 보일 나이가 된 걸까.

나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니
쓴웃음으로 넘기려는 내 모습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러시구나.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여기에 앉아서 제가 드리는 종이 세 장에 동일하게 작성해 주세요."

안내자가 건넨 것은 면접 평가지였다.


대기실에는 이미 한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평가지를 작성한 뒤
이미 이 공간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나도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평가지에 이름과 인적사항을 적었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 한 채
머릿속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나, 둘 다른 면접자들도 도착했다.


면접자는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었다.


안내자가 우리를 바라보며
면접 진행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면접은 3시부터 진행됩니다.
번호 순서대로 한 분씩 면접장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한 분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오면
다음 분이 이어서 들어가시면 됩니다.


면접장에는 10분 타이머가 설정되어 있으니
타이머가 울리면 면접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귀가하시면 됩니다."


"네."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동시에 대답했다.


첫 번째 면접자가 면접장으로 향했다.


내 순서는 두 번째였다.


앞번호라 떨리기도 했지만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첫 번째 면접자가 돌아오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면접장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가니
오른쪽에는 안내자가 앉아 있었고
정면에는 면접관 세 분이 앉아 있었다.
남자 한 분과 여자 두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부여받은 번호와 성함 말씀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6번 000입니다."

"저기 혹시 16번 아니신가요?"

"아…! 저 16번입니다. 죄송합니다."

"많이 떨리신가 보네요. 긴장 풀고 편하게 대답하셔도 됩니다."


처음부터 번호를 잘못 말하는 실수를 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면접장 때문이었을까.
10분 남짓한 시간 안에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은 질문들에는
무난하게 대답하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면접이 진행될수록 느낀 점이 있었다.


면접관들은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점을
조금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가장 솔직한 이유는
그저 해보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에서
그 대답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면접은 시작되었고
나는 성심껏 나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답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면접이 끝나고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면접이란
면접관이 원하는 답에
나의 경험을 잘 녹여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번 면접에서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면접장을 나와 처음 든 생각은

'아, 망했다.'였다.


그들이 기대했던 대답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를 후회하고 자책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잘했다.'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에
다시 답해야 한다고 해도
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면접을 통해
회사가 원하는 사람과
내가 맞는 사람인지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면접 경험이 쌓일수록
후회하고 자책하기보다

조금씩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더 나에게 맞는 길을
잘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조금씩 생겼다.


또 하나의 경험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과정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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