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와 관련된 담론들

저잣거리#1

by Igloo of Aningaaq


최근 들어 가장 재밌게 보고 있고, 또한 가장 인기 있기도 한 이 리얼리티 요리경연 프로그램에 흥미로운 담론들이 많다. 물론 큰 의미가 있는 얘기들도 아니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휘발되어 버릴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을 빌어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1.파인다이닝은 사치와 허영인가?


이미 1시즌을 통해 파인다이닝의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시청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악하게 한 장면이 있었다. 파인다이닝을 운영하는 참가자가 킹크랩 세 마리를 갈아 넣어 소량의 육수를 뽑아내는 장면이었다. 재료비의 제한이 없는 상황의 경연에서는 승부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문제는 이런 행태가 대부분의 파인다이닝의 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인다이닝이 수익적인 측면에서 힘들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큰 원인 중 하나가 이렇게 아낌없는 재료의 투입이라는 것도 대부분은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퍼포먼스 자체는 충격적이긴 했다. 사람들에게 흔히 큰맘 먹고 먹는 음식의 위치에 있는 킹크랩이 단지 풍미를 살짝 좋게 만드는 선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은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이에 즉각 커뮤니티 게시판들에서 이 장면에 대해 낭비, 허영과 사치라는 프레임으로 폭격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이런 식이라면 파인다이닝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물론 이 정도의 극단적인 주장은 으레 그래왔듯이 금방 진압되었다. 결국 그렇게 까지 가버리면 ‘예술’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부정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요리 라는 분야가 예술의 일환으로 인정받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효율과 낭비라는 측면으로 이분법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무리수가 있다.


결국 파인다이닝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이 이슈는 승리할 수 없다. 개개인의 선택이 존중받는 자유시장경제 속에서 물타기와 양비론을 피해가면서 할 수 있는 비판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2.제작진과 심사원들은 선재스님을 억지로 밀어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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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흑백요리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선재스님을 밀어주고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연히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글들이 살아남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상 원색적인 비난도 적지 않다. 소스 대신 똥을 뿌려도 칭찬할 것이다, 빈 접시를 내놔도 비움이라며 억지로 의미를 찾을 거라는 등. 근거 없는 낭설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흑백대전에서 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뉴욕에 간 돼지곰탕’ 과의 승부에서 2:0으로 패한 장면이 크게 작용했다. 하필이면 상대방이 굳이 자신의 홈그라운드를 버리고 채식으로만 승부하겠다고 단언한 뒤 쟁취해낸 결과였기에 승자는 더욱 빛났고 패자의 명예에는 더 큰 생채기가 났다.


이후 선재스님은 슈퍼패스를 통해 부활하고 다른 화려한 디쉬에 비해 다소 소박하고 정갈한 플레이팅의 요리들을 선보이며 최종 7인의 위치까지 올라간다. 그 과정 속에서 안성재는 매번 그녀의 요리를 과하게 극찬했고, 비교적 익숙하면서 소소해 보이는 결과물들과 평가의 간극은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재스님을 비건 한식을 세계에 홍보하고 경연 캐릭터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개입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홍보적인 측면이나 흥미적인 측면에서도 선재스님의 선전은 좋은 방향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주장은 필연적으로 맹점이 존재한다. 다른 경연과는 다른 요리경연만의 특징 때문이다. 요리 경연의 시청자들은 그 음식들을 맛볼 수가 없다. 오직 편집된 채 화면에 보이는 조리과정과 최종 플레이팅의 형태만이 시청자들이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반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니 단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갖고 이 점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면 이 주장의 뿌리는 얼마나 허한가


더군다나 만약 쇼의 재미적인 측면에서 억지로 경연의 결과를 조작할 수 있었다면, 훨씬 많은 이슈몰이를 했던 ‘아기맹수’라던지 감성 스토리 측면을 더 많이 뽑아낼 수 있는 ‘프렌치 파파’ ‘안녕 봉쥬르’ ‘무쇠팔’ ‘4평 외톨이’ 등의 캐릭터가 흑백대전에서 우후죽순으로 떨어진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 여론의 근원에 대한 근원은 ‘위악’도 자리한다.

선재스님이 종교인이 아니었다면, 장르가 비건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이미 이룬 명망이 높지 않았다면 이 여론은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을거라 감히 예상한다.


내가 말하는 인터넷 여론으로서의 ‘위악’은 쉽게 말하면 쿨병의 일환인데, 선함을 추구함으로서 객관을 잃곤 하는 PC주의의 병폐와 반대 급부다. 이들은 선함을 배제하는 것이 객관적이라는 강박에 빠져, 오히려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3.백종원은 심사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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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쯤 불거진 백종원과 관련된 여러 논란 탓에 흑백요리사2는 시작도 하기 전에 논란에 휩싸였다. 중식의 신이라 불리는 57년차 후덕죽 같은 사람을 홍콩반점 사장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조소했다.

그러나 흑백요리사2의 촬영은 백종원의 논란이 정점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완료되었다.

백종원에게 제기된 논란들에는 그의 전문성에 대한 의심도 포함되어있었기에 이대로 방영하게 되면 심사 절차 자체가 권위를 잃게 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편집의 힘을 빌었는지 모르겠지만 백종원의 멘트나 분량은 시즌1과 비교해서 상당부분 축소되어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자신감 넘치거나 거만해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면 편집에서 도려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나 또한 백종원과 관련된 이슈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면서 그의 도덕성 뿐 아니라 능력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바뀐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백종원이 심사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즌1 때부터도 사실 백종원의 역할은 안성재와 구별된다. 파인다이닝의 정점으로 쓰리스타를 이룩해낸 안성재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 대중적 맛을 추구하는 이로서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오히려 밸런스 있는 심사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은가?


적어도 백종원의 하차를 주장하는 이는 정작 그래서 누가 대신할 것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4.다음 시즌의 흑백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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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슈가 아니라 개인적인 바램이다.

이미 시즌2를 통해 흑백요리사는 국내의 명망 있는 백수저들을 탈탈 털어낸 걸로 보인다.

물론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따지면 꾸역꾸역 한시즌 정도는 꾸려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즌2가 그러했듯, 전 시즌을 아득히 뛰어넘는 스케일을 보여주긴 힘들고, 그 쥐어짜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요리사:아시아’ 로 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피지컬 아시아가 그러했듯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이슈가 가능할 것이다.

시청 대상은 확대되고, 국가대항전의 느낌도 줄 수 있어서 몰입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공정한 평가의 실현 가능성이다. 물론 지금의 심사위원들이 다양한 세계음식에 대한 베이스를 갖추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원초적인 입맛의 추구까지 세계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혹여 참가국이 아닌 제3국의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초빙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본인의 문화권이 추구하는 맛과 흡사한 접시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식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의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



5. 저잣거리 이야기들에 대한 총론


앞서 말했듯이 흑백요리사2는 현 시점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그래서 여러 커뮤니티에선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화요일마다 갑론을박이 쏟아진다.

참가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거나 진행방식에 부당함을 제기하는 과몰입러들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고시’가 아니라 ‘예능 경연’이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편집된 ‘쇼’일 따름이다.


흑백요리사 시즌2는 이제 마지막 결승전을 제외한 모든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촬영과 편집은 이미 끝났고, 내용도 결과도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일 뿐이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이것은 흥미롭게 나눌 이야기지, 과하게 열 낼 주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이 프로그램을 즐겁게 소비하고 담담하게 목도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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