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ngaaq's Review#1
내가 살면서 마주한 몇 안되는 행운 중에 하나로 뽑는 것이 코끼리를 목도한 일이다.
당연히 인도나 아프리카 등지에 서식하는 대형 포유류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박민규의 소설 제목인데 어느 작은 사이트에서 웹소설로 한동안 연재되었다.
히트작도 많은 꽤 인지도 있는 소설가가 왜 뜬금없이 웹소설에 도전했는지는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다. 아마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하고 한 발 일찍 진입해보겠다는 생각이었으리라 추측해볼 따름이다.
코끼리를 읽으며 나는 매화 마다 기함되었다.
이 소설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는 배경이자 은유였다. 작은 도시에 자리잡은 하나의 조직, 두개의 세력 자체가 대단히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의 한국이 실제로 그러했듯이, 이 소설 또한 굉장히 하드보일드한 맛이 강해서 아무에게나 쉽게 추천하진 못했지만,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이들 모두에게 추천했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없었다고 보여진다. 만약 읽은 이가 있다면 반드시 알 수 있을 거다. 이 흥분되는 감상을 혼자 묵힐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긴 시간 코끼리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나는 마침내 '느와르'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했다.
그건 '대부'를 이해하는 일이었고, '좋은 친구들', '아이리쉬맨'이 가지는 함의와 깊이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그전까지 내게 느와르는 단지 멋들어진 주먹들의 무협지 거나 혹은 힘과 권력이 주는 대리 카타르시스 였을 뿐이었다.
이 경이로움 앞에 나는 한동안 글을 쓸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물론 나보다 필력이 좋거나 재미난 이야기 꾼들은 차고 넘치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거대한 함의와 필력, 그리고 재미는 감히 내가 낳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가의 소설은 그리 홍보되지 않은 탓에 조회수가 그리 높지 않았고, 가끔 몇몇 팬들이 댓글이라도 다노라면 친히 작가가 직점 대댓글로 답변을 달아주곤 했다.
결국 수백화에 걸친 연재가 끝나고 이 대서사시는 완벽한 마무리를 지으며 끝났다.
나또한 작가에게 축하를 건냈고, 작가는 그 길었던 세월에 대해 소회를 답해주었다. 이후 책이 출간된다면 반드시 사겠다는 다짐도 잊지않았다.
하지만 그 감동적인 순간으로 부터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미 다쓴 소설을 교정하고 출판하는데 이렇게 오래걸릴 리 없으니, 아마 모종의 이유로 작가는 출간을 포기했으리라 짐작된다. 연재되던 사이트도 문을 닫고 다른 이름의 플랫폼으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넷 상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코끼리를 다시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이 어마어마한 글을 읽은 이는 세상에 한줌 밖에 되지 않는다. 코끼리는 비루한 조회수에 비해 존재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역작이었다. 하지만 현세에도, 후대에도 그걸 평가할 이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누구도 다시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소설의 존재와 운명을 생각하노라면 늘 아쉬움과 영예로움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