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키워드로 쓰는 아무 글#6 '타임머신'
배우 정유미는 매 번 여행을 시작할 때 향수 한 병을 사서, 여행 내내 뿌리고 다닌다고 한다. 훗날 그 향을 맡으면 그 여행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에. 후각을 기억의 저장장치로 사용한다는 발상은 몹시 신통하지만,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그 기억들 속에 여행의 향은 남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적어도 내게 있어 여행의 추억에는 다양한 냄새들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나는 향보다는 음악에 기대는 편이다. 어떤 곡들은 특정 시기나, 사람,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어렸을 적 나는 그걸 '음악기억'이라고 불렀다. '음악기억'은 추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입힌 음악이 아닌, 자연스럽게 인생에 스며들어 무언가를 대표하게 된 음악들을 일컸는 말이다.
[식물원 가는 길] - 예민
조용한 고등학교의 오후였다. 이과반에 들어온 경제선생은 자습을 시키고는 꾸벅꾸벅 낮잠에 빠져들었다. 절반정도의 학생들도 함께 졸기 시작했고 나도 순순히 자습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라디오를 귀에 꼈다. 노곤노곤한 오후의 라디오에서는 대관절 의도를 알 수 없는 전위적인 곡이 흘러나왔는데 놀랍게도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몹시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나무를 의인화한 아이들의 목소리로 빚어진 그 곡이 왜 그리 인상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것들이 나와 그 곡의 파동이 맞아들었을 때 벌어지는 운명적인 중첩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시간, 다른 상황에서 마주했다면, 이해할 수 없는 가사들과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는 듯한 미성을 그저 웃어넘겼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의 숲] - 9와 숫자들
워크샵으로 떠난 제주도에선 비가 왔다. 랜덤재생되어있던 플레이리스트는 마침 이 곡을 선곡했고 나는 또 그 아이를 떠올렸다. '그리움의 숲'은 서로 다시는 보지 말자고 결심한 이후 그 아이에게 보냈던 첫번째 편지의 제목이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응당 모든 노래 가사가 자기 얘기 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연애의 생애주기에 따라, 설렘의 순간부터, 환희, 절정, 쇠퇴, 슬픔까지 우리의 모든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들이 세상에는 넘실댄다.서로 추천하며 감상을 나누던 곡들. 늦은밤 그 아이를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오며 듣던 곡들. 그 연애를 상징할 수 있는 수많은 밝은 곡들이 있음에도 굳이 이런 곡으로 기억되는 관계라는건 결국 나에게 그 관계에서 대부분의 순간들은 슬픔과 그리움이었단 뜻일지도 모르겠다.
[푸른 저녁] - 두번째달
초년생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에 눌려있던 시절이었다. 기초공사도 시작되지 않은 현장은 갈아엎어진 땅 속으로 발이 푹푹 꺼졌다. 중년남성들로 가득한 현장사무실은 가건물이었다. 다들 알고보면 따뜻한 사람들이었지만 거친 건설사의 분위기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병에게 조금은 가혹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된 것은 광교라는 동네였다. 새로 구한 복층 오피스텔에서 10분을 걸어나가면 장엄한 호숫가가 펼쳐졌는데,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동네였기에 복작이지 않고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끝이 없이 펼쳐진 산책로와, 넓디 넓은 잔디밭. 촌스럽지 않게 절제되어 설계된 조명들. 토요일 저녁 해질 무렵엔 드문드문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나 개와 산책나온 이들이 거닐고, 한쪽에선 젊은 남녀가 플리스비를 던지며 놀고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 그림을 이야기 할때, 이상적인 주거지역의 설계패널에 CG로 들어가 있을 만한 장면이었다고 설명 하곤 한다. 아직 때묻지 않은, 적당히 적막했던 그 넓은 호숫가에서 나는 조금씩 그 때의 나를 치유했다. 나는 매 주말마다 어스름이 지는 그 호숫가에서 음악을 들으며 끝없이 걸었고 격무로 찍어눌린 피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물 속으로 조금씩 흩어졌다. 가히 내 '인생 밴드'라 칭할 만한 두번째달 의 이 짧은 연주곡은 마치 제목처럼,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치유하던 광교 호숫가의 푸른 저녁 시간들을 상징한다.
[Midnight radio] - Hedwig ost
과할 정도로 시네마키즈였던 나는 수능이 100일 남은 시점에 마지막으로 영화 한편을 보기로 결심했다. 그 영화가 헤드윅 이었고, 몹시 훌륭한 작품이었기에 나는 흡족해하며 계획했던대로 완연한 수험생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손에 꼽힐 만큼 집중했던 100일이 흐르고 인생의 마지막 수능이 끝난 그 날 밤 나는 다시 이 곡을 들었다. 기대한만큼 훌륭한 성적을 낸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싸움이 영영 끝났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였다. 내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가 끝나던 날, 이국의 낯선 이름들을 하나하나 읊어주며 모두를 위로하던 이 노래는 시대의 마지막을 치하하는, 귀환자에게 쏟아지는 갈채였고, 동시에 훌륭한 피날레였다.
[재첩국]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은 항상 햇살이 가득한 은행나무 골목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아침해가 골목의 나무 사이사이를 비추면, 학교 갈 준비를 시작하는 그 이른 시간에 골목을 돌며 재첩국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그 분은 항상 '대치고옴~ 대치굼 사쏘!' 라며 소리치며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 늘어진 외침의 의미가 '재첩국! 재첩국 사세요' 였다는걸 깨달은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였다.
성장기가 우리에게 애틋한 것은 매일매일이 새롭고 기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시작되는 두근거림, 그러면서도 몹시 평화롭던 그 시절 아침의 일상. 나를 그 시간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는 아마 그 뭉개진 '대치곰' 소리일 것이다. 나는 결국 진짜 인생의 BGM은 이런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