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은 대개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간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퇴근한다.
당연히 그 하루 안에서 내가 하는 선택이라는 것도 별다를 것이 없다. 이런 반복을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때 가방을 싼다. 평소 내가 했던 선택을 비틀 수 있는 좋은 멍석 중의 하나가 여행이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
짝퉁 구입
양꼬치 먹기
반복된 생활로부터의 일탈 심리가 무의식 중에 반영된 것일까.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고 돌아왔다.
지금까지 이런 여행은 없었다.
이것은 패키지여행인가, 자유여행인가.
나의 여행 역사에서 세 번째 패키지여행이었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여행이라 준비 시간도 짧았고, 어차피 2박 3일
다녀오는 데 자유여행을 간다 한들 패키지여행 일정과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국을 자유여행으로 가는 것이 자신 없었다.
패키지여행 후기의 8할은 ‘가이드’에 대한 내용인 경우가 많은데, 가이드를 만나기 전까지 나도 그 부분이 상당히 신경 쓰였다.
우리 팀 가이드는 이십 대 후반의 젊은 가이드였다. 어차피 따라다니는 여행이라면 적극적으로 따라다니자 주의라서 가이드의 설명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초반부터 그의 말에 귀를 세웠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뭔가 계속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되겠거니 기대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가이드의 멘트가 끝이 났기 때문이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그러자 너무 웃음이 났다.
감질나는 설명을 하는 가이드라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캐릭터였다. 그 가이드는 매 코스마다 비교적 충분한 자유시간도 주었다. 성의가 없다기보다는 그의 방식이 그랬던 것 같다. 패키지여행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후기를 양산하는 쇼핑 장소에서도 그는 우리 일행을 그곳에 살짝 던져 둘뿐, 그 어떤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다.
이런 스타일의 가이드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어땠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는 신선한 가이드상을 제시했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개똥 철칙 부수고 ‘대놓고 짝퉁’ 구입
돈이 없어서 명품을 못 사면 못 샀지 짝퉁은 사지 않는다. 이것은 물건 구매에 대한 나만의 개똥 철칙이다.
그런데 가이드가 청도 여행의 첫 코스로 ‘대놓고 짝퉁’을 파는 시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대놓고 짝퉁’은 누가 보더라도 “나 짝퉁이야.” 하고 우리를 반겼다.
그 모습이 참 자기 고백적이라고 생각했다.
B급 감성의 치명적인 매력은 솔직함에서 온다고 믿는 나는 가방이라는 ‘물건’이 아닌 중국 여행을 기념하는 '기념품’으로 짝퉁을 사기로 결심했다. 친한 친구가 사실 이 가방 짝퉁이라며 대놓고 들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내가 산 가방도 마침 그것이라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지금 청도야. 그때 네가 들고 다닌 가방 나도 샀어.
너무 웃겨.”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어 나쁘지 않아. 다만 1년 안에 끈이 끊어질 거야.”
짝퉁이 지나치게 견고했으면 싫어질 뻔했는데
끊어진다니 더 마음에 들었다.
가이드가 그다음 날 이번엔 명품 A급, S급을 취급하는 곳이라며 짝퉁 파는 곳을 또 데려가 줬다. 조금 더 정교하게 따라 했다고 짝퉁이 짝퉁이 아닌 게 되나? 짝퉁에 급이 있다는 말부터 왠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급이 있는 짝퉁은 가격이 비쌌다. 급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점원에게 물었다. 급이 높은 것은 홍콩에서 수입하는 좋은 원단을 써서 제작했다고 한다. 좋은 원단으로 '흉내 내는 물건' 말고 '그냥 좋은 물건'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 사면 그만인 것을 괜히 구경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은 급이 있는 짝퉁 앞에서 괜한 자격지심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낼모레 마흔이 되는 이 시점에 나만의 ‘무엇’이 없는 누군가. 검증된 무언가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어 그 안정성에 기대어 보려고 했던 그 누군가가 자꾸 떠올랐다고 말이다. ‘대놓고 짝퉁’ 가방은 3개월째 안 끊어지고 김대리와 정상출근 중이다.
정말 양꼬치 앤 칭다오일까.
나는 양꼬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십 대에 딱 한 번 시도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양꼬치 앤 칭다오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칭다오’까지 가서 ‘칭다오’ 맥주를 먹는데 양꼬치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10년 만에 재도전을 했다. 하지만 양꼬치의 참맛을 아는 것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나이 들면 입맛이 변하기도 하니까 양꼬치는 훗날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어떤 말, 어떤 행동이 유행이 되었을 때의 힘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런 조합만이 정답 같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란 것도 나한테 어울린 적 보다 어울리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았다. 그런데 나는 대다수의 선택과 흐름에 매번 이렇게 또 흔들린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그렇게 흔들리면서 나에게 right인 것과 wrong인 것을 예전보다는 잘 구분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나는 양꼬치가 아닌 (칭다오 맥주공장에서 파는) 꿀땅콩 앤 칭다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