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은 무척 더웠다. 말 그대로 피서가 필요했다. 혼자 가든, 같이 가든 여행은 언제나 즐거웠지만 유독 혼자 떠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때 그랬다. 피서를 가고 싶었지만 쓸쓸한 건 싫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니, 친구들과 서로 시간 맞추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생업, 결혼, 육아 기타 등등으로 나눠진 길을 각자 바쁘게 걷다 보니 서로 안부 인사조차 주고받기 힘든 게 현실이 되었다. 게다가 친구들은 이제 나보다 남편이나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이 더 자연스럽다.
고등학교 동창 중 입장이 같은 친구에게 여름휴가를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 유일한 미혼이다. 학원 강사를 하는 친구는 학생들 방학인 7월, 8월에 더 바쁘다. 그래서 학원에서 지정한 날짜가 곧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8월 첫째 주. 피서의 피크 시즌으로 비행기 표 값은 평소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정말이지 혼자 떠나고 싶진 않았다.
혼자 여행을 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식도락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맛있는 것을 두고 혼자 못 먹는 수줍음은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음식은 역시 여러 가지 늘어놓고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 거기에 음식만큼 맛있는 수다를 곁들이면 행복이란 갑자기 이 세상 것이 된다.
그래서일까. 혼자 여행을 가면 평소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식욕 부진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람이 입맛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혼자 여행 가서 처음 알게 되었다.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흥분한 나머지 계속해서 먹고 또 먹는 여행이 되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혼자였던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친구와 가기 전까지) 러시아의 가장 맛있는 음식이 컵라면 ‘도시락’이었다. 그 한을 여기서 풀고 만다는 일념으로 샤슬릭, 곰새우, 게, 팬케이크 등 많은 음식을 집어삼켰다.
여행 사진을 올릴 때면 그것을 본 친구들이 부럽다고들 한다.
특히 결혼한 친구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한다. 너는 언제든 떠날 수 있어서 좋겠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언제나 좋지는 않다.
평생 혼자 떠돌까 봐 불안하고, 앞으로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을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공자님께서
“음식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바라는 일”이라 하셨다. 나도 크게 바라는 일이다. 너무 바라는 바다.
남녀 간의 사랑도 몇 년째 미궁 속인데, 이제 음식에 대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마저 위협받을 지경이니 나는 결혼한 친구들이 부럽다.
나이가 들면 내가 걷는 길에 대해 확신에 찬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내 선택에 대해 근거 있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 속 나는 내 길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너무 헷갈린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자꾸만 곁눈질해가며 아쉬워하고 부러워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여행에서는 그 어떤 길을 걸어도 '아무렴 어때, 그저 좋다.'인데 일상에서는 그것이 참 쉽지 않다.
내일은 벌써 월요일이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느꼈던 아무렴 어때. 그저 좋다 그 마음으로 한 주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