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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07. 2020

선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회사에 싫은 사람이 있다.

직장인 10년 차, 회사에 싫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흔해빠진 일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진짜 너무너무 싫다.  불행히도 그 사람은 현재 같은 사무실 안에 일하고 있어 월화수목금 평일 내내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내년 초 인사이동이 있기 전까지 약 4개월 정도의 시간을 더 버텨야 하는데, 그 양반 덕에 남아있는 시간이 4개월이 아니라 4억 년같이 느껴지고 있다.   






 사람을 좋아할 때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사람을 싫어할 때는 신기할 정도로 그 이유가 분명하다. 이 상사에 대해서도 누군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싫으냐고 묻는다면 아주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명할 자신이 있다. 그 사람이 싫은 이유에 관한 것이라면 그 준비가 아주 잘 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 싫어지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 대한 신경이 저절로 훅 꺼지곤 했다. 싫은 사람에게는 어쩜 이래 할 정도로 일말의 관심과 흥미가 사라지는 통에 그로 인해 정신이 분산된다거나 감정 상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까지의 나와는 상당히 다른 대처방식을 갖게 만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일단 그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하루 온종일 사사건건 그 큰 목소리로 귀를 자극한다. 물론 그가 하는 행동과 말투 그 자체도 싫은 경우가 다반사지만,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굳이 다 들리게 하는 그 요란스러움 때문에 매번 불편하다.

 또 비유하자면 이 사람의 전반적인 태도는 전철 안에서 사람을 밀치고서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사람과 상당히 유사하다. 사람을 쳐놓고 미안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당당하다.

 그래서 저 사람은 본인이 사람을 쳤다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설사 사람을 친 걸 인식했다고 해도, 그래서 그게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전철 안이 너무 좁았잖아, 내가 치려고 한 게 아니라 네가 거기 서있었잖아.  그렇게 말할 사람이다. 생전 자기를 돌아본 적이 없으니, 본인 행동과 그 잘못을 모르고, 매번 자기변명과 남을 향한 핑계로 점철되어있는 그런 사람이다.



 뭐 나도 그 사람의 행태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았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고, 굳이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일일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데다가 그럴 시간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연초에 (너무도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나에게 모욕감을 줬다. 처음에는 회사니까, 그래 조직생활 다 이런 거지 하고 꾹 참았었는데, 다른 직원들이 알려준 나에 대한 그의 험담과 끝없는 만행을 도저히 참아 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참지 않았다.


 그 후의 사무실 풍경에 대해서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더 이상 그와 엮이지 않게 돼서 솔직히 편했다.  

 그런데 몇 주전에 그가 아침 일찍 막내 사원을 데리고 나갔다 오더니 사무실에 커피를 사서 돌렸다. 나와 우리 팀장님만 쏙 빼고 돌렸다. (팀장님과는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유치뽕짝 커피 돌리기를 내가 본 것만 두 번째다. 한 잔에 5~6천 원씩 하는 커피도 아닌 싸구려 커피로 사무실 분위기 전체를 싸구려로 만드는 그가 나는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며칠 전에는 다른 부서에서 우리 지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방문 목적의 이슈들이 주로 내가 속한 팀과 관련된 것들이라 아무래도 그 부서 직원들과 우리 팀장님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실무적으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일엔 내가 호출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부서 직원들과 나와 팀장님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인간은 그게 또 꼴 보기 싫었는지 급박한 것도 아닌걸 큰 일처럼 몰아붙이며 우리 얘기를 중간에 끊어버렸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다 본인보다 상사와 선배였는데 그런 그의 모습에 또 한 번 당황스러웠고, 치졸하고 좁은 속이 훤히 보여 또 한 번 짜증이 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런 부류의 사람을 회사에서 보면 내가 머무는 이곳에 대한 일말의 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 각자 갖고 있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회사라지만 (차마 글로 다 옮기지 못한) 저런 인간들을 회사 동료랍시고 한 범주안에 묶으려 들 때마다 내 안에 있던 온갖 자존심이 욱신거린다.

 연초에 그가 나에게 되지도 않는 시비를 걸어왔을 때, 본인 우위의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내뱉은 첫 대사가 '선배' 어쩌고 였던 것도 너무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었다.
(재밌게도 평소 선배라고 생각하지 않은 부류일수록 그 말을 즐겨 쓴다.)

 언제나 그렇듯이 9시 다돼서 스윽 들어와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 다 들리게  또 온갖 주접의 시동을 걸겠지.
 
 괜스레 달력을 넘겨본다.

 아직... 아니 이제 10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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