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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21. 2021

당신의 퇴직은 안녕하신가요


 회사에서의 몇십 년 뒤가 너무 까마득하다면, 내가 궁금한 미래를 '지금' 살고 있는 상사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사람이 다르고 겪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 미래가 그들의 것과 100% 같을 거라고 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올해 상반기에 정년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두 명이 있었다.

그 둘은 없던 직급까지 만들어 사이좋게 나눠 앉은 동갑내기였다. 일반 직원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천수를 누리고 임금피크 기간을 거쳐 회사를 나갔다. 그 두 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직원들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그분들의 퇴직을 아쉬워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직원들끼리 그들의 임금피크기간 (3년)은 왜 이렇게 긴 거냐는 원성만 돌았었다. 어차피 나는 그들의 임피 기간 동안 같이 일하지도 않았고, 병가 중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그들이 나갔다는 사실은 동료들을 통해 들었다. 온갖 운을 영끌해서 1급으로 대우받던 그들의 퇴장은 듣기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그 뒷맛이 씁쓸했다. 사실 너무도 예상된 꼴이었지만, 다시 한번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지점장님은 내년 1월부터 임금피크에 들어가신다. 올해 남은 휴가를 다 쓰시느라, 12월에는 출근하신 날보다 안 오신 날이 더 많다.

 2주 전쯤, 지점 전 직원들에게 비싼 점심을 사주시면서 지점장님은 이 회사를 나가도 할 게 많다고 하셨다. 퇴직 후에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하는 친구분들도 계시고, 임대료로 매달 얼마씩은 통장에 꽂힌다고도 하셨다.

원래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분이고, 농담과 진담이 콜라보된 자기 자랑에 능하신 분이라 그래도 여기서 본 뒷모습들 중에 제일 낫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식사 이후부터 연말로 향해갈수록 지점장님의 말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평소 유쾌한 농담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띄우던 분이라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 종종 반응하기 난해한 장난이나 꼰대스러운 말에 마음이 다친 적도 있었지만, (다른 동년배 상사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오픈마인드에 재밌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엔 사무실에서 세 마디 이상 말씀하신걸 못 봤다.




 10년 넘게 회사를 다니는 동안 5급에서 4급 하나 올라가는 것도 빌빌 거리는 나에게 긴 인생에서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니 웃으며 다니라고 위로해주셨던 분이었는데...

정작 당신은 1급으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해도 끝을 향해가는 지금 웃음이 전혀 안 나오시는 건 걸까. 고기를 사주시며 당당하게 말씀하셨던 퇴직 후 스케줄은 우울하고 쓸쓸한 마음까지 덮어줄 순 없었던 걸까. 



 내일은 지점 직원들이 돈을 모아 준비한 선물을 지점장님께 드리는 날이다. 백화점 상품권과 감사패다. 주식하는 걸 좋아하시고,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지점장님 취향에 맞게 감사패 모양 상단 우상향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건 내 아이디어였다.

 

 내일은 지점장님이 직원들의 작은 선물을 보고 조금이나마 웃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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