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머리로 하는 사람은 없어요. 만약 연애할 때 자기가 아주 똑똑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정말로 연애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죠. 당신은 사랑하면서 자기가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나요?"
-왕원화, 끝에서 두번째 여자 친구-
이십 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나처럼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책을 추천해줬다. 대만 작가 왕원화의 '끝에서 두번째 여자 친구'란 소설이었다.
- 별 이상한 제목 다 보겠네.
게다가 책은 또 왜 이렇게 두꺼워.
친구는 조용하게
분명 내가 좋아할 거라고 말했다.
뭐를 하든 요란법석에 들떠있는 나와 달리, 매사를 관조하듯 차분한 그 친구의 말은 이상하게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결국 반신반의하면서 책장을 넘겼고,
그 두꺼운 책을 멈춤 없이 단숨에 다 읽었다. 친구 말대로 나는 그 작가와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내 책장 안 주요 도서 칸에 꽂게 되었다.
그 후로 친구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추천해주었다. 그 친구가 나를 완벽히 간파한 건지, 나란 인간은 어쩜 그리도 금사빠인 건지 책에 이어 영화에서도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내 방 한구석 유물이 된 피아노를 조율해야 한다며 들썩거렸고, 니하오, 짜이찌엔 말고 할 수 있는 중국말에 '뿌넝 슈어 더 미미'를 더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렇게 수차례 복선이 깔렸기에, 가보지 않고도 대만을 좋아하게 될 거란 느낌이 있었고, 가보고 나서 그 느낌은 확신이 되었다.
세 번의 타이베이 여행은 세 번 다 별 차이 없는 고만고만한 여행이었다. 남들 다 가는 곳을 가고,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을 먹고, 어머 이건 꼭 사야 해의 물건들을 샀다.
그래도 매번 즐거웠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꼈다. 매력이란 단 시간에 발산되는 강렬한 그 무언가로만 생각했던 내게 타이베이는 은은하게 가만히 다가오는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준 곳이다.
삼십 대 초반이었다. 누가 봐도 '아주 안 똑똑하게' 누군가를 사랑했었다. 왜 그랬나 싶었는데 이십 대에 인상적으로 읽은 소설의 한 줄 탓으로 돌리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을 쓰다 보니 나에게 대만 소설과 대만 영화를 소개해줬던 대만을 닮은 그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다.
최재훈의 외출이란 노래를 참 잘 불렀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노래도 걔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