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추억

by 앤디



마카오를 처음 가본 건 내 나이 서른,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일이다.
그때의 나는 다가올 서른이 두렵다며 스물아홉 병을 몹시도 요란하게 앓았었는데, 마카오에서 찍었던 서른의 사진들을 다시 보니 세상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름대로 무척 심각하고 진지한 병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표정이 돌변한 걸 보면 서른만 해도 나는 참 어리고 단순했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른의 나에게 홍콩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던 도시였는지, (홍콩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마카오까지 가서 정말 마카오에서만 놀다 왔다. 그 덕분에 짧은 휴가에도 아주 여유롭고 자세하게 마카오를 둘러볼 수 있었다.




펠리시다데 거리, 만다린 하우스, 까사 가든, 아마 사원, 기아 요새, 신교도 묘지, 피셔맨즈 와프, 여러 성당 등등 참 구석구석 잘도 돌아다녔다.

물론 베네시안에서 곤돌라도 탔고, 쿤하 거리에서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도전하다가 한 숟갈만에 혼구녕도 나보았다. 과일의 왕이라 해서 믿었는데 그 왕위의 정당성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서른의 마카오 여행에서는 콜로안 빌리지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로드 스토우 에그타르트를 폭풍 흡입하고, 학사 비치(흑사 해변)에 앉아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때 그 해변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귀여운 커플이 파도와 서로를 술래 삼아 나 잡아봐라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바다와 함께 찍힌 그들의 사진이 아직도 있다. 해변에서 연출하는 커플의 행동은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참 클래식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미소가 번지는 그런 것이었다.

마카오 바다를 앞에 두고 여수 밤바다를 질리도록 들은 뒤 정처 없이 그 주변을 산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 참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길에서 버려진 판관 포청천을 만났다. 어린 시절 나는 호위무사 전조의 미모보다, (죄인 앞에) 거침없이 작두를 대령하라 소리치는 포청천의 공명정대함에 열광하는 아이였다.

아마도 마카오의 어떤 서른이 공명정대한 포청천 대신 다른 무언가로 공간을 채울 필요가 있었는지 내 추억 속 포청천이 작두 앞이 아닌 길가에 서 있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찍은 마카오 포청천 사진은 7년 전 핸드폰 화질 수준을 말해준다.






안타깝게도 그때 찍은 사진들은 죄다 핸드폰으로 찍은 거라 봐주기가 힘이 드는데 이제는 AI 기술로 옛 사진 들을 선명하게 복원해 줄 수 있다 하니 나중에 복원을 시도해봐야겠다.






그리고 올해 봄,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마카오를 찾았다. 나는 홍콩과 마카오 두 곳다 두 번째 여행이었지만 두 곳 모두 처음인 부모님을 위해 페리를 이용해서 홍콩과 마카오 둘 다 둘러보고 왔다.




마카오에서는 카지노를 꼭 해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요청이 있어, 맛집에서 밥을 먹고 몇 군데 관광을 끝내자마자 7년 전 갔었던 카지노 호텔로 두 분을 모시고 갔다.

재미로 슬롯머신만 몇 번 만지작 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카오에서는 카지노 호텔 셔틀버스가 공짜라 교통비가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가서 줄을 섰더니 직원이 호텔에서 주는 버스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로비에 문의해 2층까지 올라갔는데 표를 주는 곳은 온갖 게임장을 지나 저 안쪽에 있었다. 공짜표 받느라 앞만 보고 가다가 나중에야 주위를 둘러보니 2층, 3층에 걸쳐 다양한 게임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화려한 쇼까지 아주 난리였다. 아버지가 마카오 카지노라고 해서 기대했다가 좀 실망스럽다했는데 우리가 오락실 수준의 지하 1층만 갔기 때문이었다.





돌아갈 때가 돼서야 본 게임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알게 되어 아쉬움이 컸지만 페리 예약시간 때문에 나와야 했다.

지하 1층과 달리 2층, 3층은 나오는 출구가 잘 보이지 않고 상당히 헷갈리는 구조였다. 몇 번을 헤맨 끝에 겨우 나오긴 했는데 쇼핑이든 도박이든 사람의 시선과 발걸음을 붙잡아 돈 쓰게 하려는 그 공간 설계에 다시 한번 놀랬다.

이러니 문제다 문제 그러면서도 갬블러의 피가 흐르는 아버지와 나는 나중에서야 본 게임 장소를 찾은 게 못내 아쉬워 (엄마에게 혼나면서도) 다음을 기약했다.





마카오와 연관된 추억이라 하기엔 서른, 여수 밤바다 그리고 판관 포청천은 영 어색했는데 드디어 카지노라는 (마카오와 제법 어울리는) 추억이 하나 더 생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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