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Dec 18. 2022

회사에서 실연을 당했다


 며칠 전, 같은 지점에 있는 직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통보해왔다. 다음 주까지 출근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회사에서  다른 직원의 퇴사를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나를 흔들리게 만들고 나에게 영향을 끼친 남의 퇴사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퇴사도 회사와의 헤어짐이니까 헤어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징후가 있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겉돌거나, (다시는 볼 일 없다는 것을 못 박는 양) 안 그래도 없던 정을 다 떼게 만드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아, 저 직원 그만두겠네 하면 여지없이 그 직원은 곧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 후배로부터 나는 그 어떤 기미도 느끼지 못했다. 짧게 일해봤지만 본인의 맡은 일을 넘어 언제나 그 이상을 해주었고, 매사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했다. 성격과 태도마저 사회생활의 전형인 데다가, 눈치까지 빠르고 센스도 있었다.

 같이 일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 후배와 일하면 일할수록 여기 있기에 아깝다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언젠가 후배가 내게 일할 때 60~70프로만 집중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100을 하지 않았음에도 결과가 100을 훌쩍 넘으니 후배 스스로도 그런 고민을 안 할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입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뜻한 바를 계속 준비해왔고 이제는 그것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말에, 역시...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에 진심 어린 응원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후배 발 퇴사에서 온 나만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언제 직원을 충원해줄지 모르는 회사 상황, 지점에 후배가 빠진 자리를 대체할 자가 없다는 못 미더움, 사사건건 말이 많고 피곤한 상사 등등 회사 안에서의 내 앞날에 더 짙은 암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후배가 퇴사 통보를 한 날은 하필 지점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나와 다른 직원은 오후에 미리 들었지만 어쩌다 보니 후배가 지점에 퇴사 소식을 발표하는 자리가 회식자리가 되어버렸다.

 회식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시점에 내가 말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후배가 지점장에게 곧 퇴사한다고 보고를 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맞은편에 앉은 지점장이 나에게 너 때문에 그만두는 거 아니냐고 장난을 쳤다. 그 순간, 나조차도 상상 못 한 일이 벌어졌는데 갑자기 내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 눈물이라니, 그것도 후배 퇴사 소식을 알리는 회식 자리에서.


 그럼에도 주책맞게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잠시 나갔다 오겠다 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때려 맞으며 눈물을 닦는데 오만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암담함, 서운함, 서러움, 자괴감, 부끄러움, 부러움  등등 온갖 감정이 나를 뒤덮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불행한 감정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그동안 쌓인 것이 폭발한 건지 늙어서 눈물이 많아진 건지 계속 울컥함이 밀려왔다. 그중에서도 희한했던 건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실연의 감정이 소환됐다는 것이었다. 차였을 때 느꼈던 그 황망하고 헛헛한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혼자 남겨진다는 기분이 들 정도라니 내가 이 후배 직원을 이 정도로 의지했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뭐라고 그런 영향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오만함이지만 지점장의 말대로 진짜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라는 구절처럼 후배의 눈에 내가 여기 있어 늙으면 쟤가 되겠지, 고작 쟤가 되겠지라고 비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후배가 우는 내 뒤를 쫓아 나왔다. 나의 주접스러운 모습이 이미 창피해 죽겠건만,

아 얘는 또 이렇게까지 따라 나오나 했는데 아마 나만큼이나 후배도 당황스러웠던 거 같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이 또한 사실이었다) 겸사겸사 눈물이 난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먼저 들여보내며 횡설수설했는데 사실 뭐라고 말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요즘 다른 부서도 회식이 많아서 그날 내 입사 동기가 속해있는 부서와 회식장소가 겹쳤는데, 내가 너무 침울해하니까 동기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 누가 보면 사귄 줄 알겠어. 적당히 해


(하지만 그 동기 역시 최근에 괜찮다 싶은 직원들만 다 나가네 하면서 회사에 망조가 든 것 같다고 했다)

 

  말에 어. 차라리 사귀었으면 안 울었겠지 하고 소주잔을 들이켰는데, 아끼는 후배 퇴사 소식에 실연당한 여자 코스프레를 하고 앉아있는 꼴이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같이 일하는 동안 후배의 업무 처리에 감동을 받은 적이 많았는데, 그 후배는 관둔다고 말한 이후에도 계속 소소한 감동을 주고 있다.

 후임자로 신입사원이 올 것을 대비해서 7가지 항목의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내게 주었고, 보이지는 않는데 누군가는 해야 할 지점의 잡무를 홀로 마무리하고 있다.


 회사 다니는 내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한 방을 준비하다가 마지막 가는 뒷모습까지 아름다운 나의 입사 후배이자 퇴사 선배가 왠지 더 크게 느껴졌다.

 덕분에 내가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고 있는 끈이 이토록 얇고 가느다란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먼저 떠나는 길 안녕히 잘 가기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탈옥을 보고 퇴사를 꿈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