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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1. 2022

탈옥을 보고 퇴사를 꿈꾸다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책 앞에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오글거려하지만 인생 영화를  얘기할 때 내가 제일 먼저 언급하는 영화는 '쇼생크 탈출'이다. 언제 어디서 처음 봤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나는 이 영화가 정말이지 너무 좋다.

워낙 유명한 영화답게 TV에서 툭하면 틀어주는 데, 채널을 돌리다 쇼생크 탈출이 얻어걸린다 함은  내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꼼짝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식으로 이 영화를 30번도 더 넘게 봤음에도 어떤 장면에서 시작하든 나는 매번 이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또 보고야 만다.


 사실 어릴 때는 단순하게 '우와 반전 '이라는 이 포인트에만 흥분을 했었다.

 교도소 소장이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 여배우 포스터에 돌을 던졌는데 구멍이 뚫리는 장면이라든지, 오물의 하수구 터널을 뚫고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 온몸으로 비를 때려 맞는 장면 등 그야말로 영화스러운 컷들만이 쇼생크 탈출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영화의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고, 쉬이 지나쳤던 주연과 조연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팍을 후려쳤다. 허투루 만든 장면과 대사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영화 진짜 미쳤구나' 하는 탄식을 내뱉게 되었다.


 영화 속 교도소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역겹고 구린 일들은 교도소 밖의 내 세상에도 있는 것이었기에, 누명을 뒤집어쓴 것도 아니고 내 발로 들어온 회사인데도 주인공의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3년 전, 최대리와 함께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을 때 필명을 앤디로 한 것도 바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의 이름인 앤디 듀프레인에서 따온 것이었다.






 장황하게 인생 영화 쇼생크 탈출을 언급하고 필명의 유래까지 늘어놓은 까닭은 내가 '앤디'로서 글을 쓰는 이유와 효용에 대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현재의 내 상태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겪은 일과 그에 대한 감정이 일상을 장악하는 것이 끔찍해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있는 상태다. 벌어진 사건과 사태에 대한 거리 두기, 거기서 느낀 분노와 불만에 대한 해소,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나란 인간에 대한 정리의 일환으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이러다 정작 그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결정적 한 방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앤디 듀프레인은  탈출을 감행하는데 19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앤디 듀프레인의 작은 망치가 끝내 교도소 벽에 구멍을 뚫고 말았던 것처럼, 내 작은 몸부림도 모이고 모이다 보면 나를 탈출하게 하는 구멍을 만들어줄까. (다만, 그 몸부림의 방향성과 강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교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영화 쇼생크 탈출과 주인공 앤디에 열광한다 한들 (이미 13년이 돼 가는 지금) 굳이 6년을 더 채우는 것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




처음에는 저 벽을 원망하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저 벽에 기대게 되고 나중에는 의지하게 되지. 그러다가 결국엔 삶의 일부가 돼버리는 거야.

ㅡ영화 쇼생크 탈출, 레드의 대사 중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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