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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1. 2022

상사를 닮은 너


회사에서 떠도는 말들 중에 내가 유독 거부감 드는 말들이 있는데, 애는 착하잖아 혹은 걔가 열심히는 하잖아 이다. 아마도 이 말들은 소위 그 '착하고 열심히 하는' 직원과 업무가 엮인 적이 없어 피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지점에 (착한지는 모르겠고) 열심히는 하는 직원이 하나 있다.

일을 두고 뺀질거리는 건 못 본 것 같은데 정말 다양한 오류로 나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직원이다. 나 역시 업무 처리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그를 불러다가 말한 적도 있다. 내가 언제 업무처리를 빨리 해달라고 재촉한 적 있느냐, 제발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서 올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뒤로 잠깐 좋아지나 싶었지만, 사사건건 틀려대는 통에 그의 업무를 결재할 때마다 내 온 신경이 곤두선다. 이 지점에서 일한 지 6개월이 돼가는 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 결재하는 중에 그의 이름을 부른 것만 100번이 넘은 것 같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줬으면 한 번쯤 꽃이 되어줄 법도 한데 아, 내가 이런 걸 지적하려고 책임자가 되었구나 하는 현타를 준 장본인도 이 직원이다.


 한 번은 저 사람은 자존심도 안 상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나보다 입사는 9년 늦지만 그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다. 게다가 같이 일했던 시절의 악연도 있다. 그때 나는 대리였고 업무도 같지 않아 엮일 일이 없었는데, 그는 내가 직장 괴롭힘으로 신고한 상사의 꼬붕 역할을 하는 직원이었다.

임시로 고용된 직원이 나와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면 불러내서 캐묻고 주의를 주는 등 중학교 때도 본 적 없는 일진 꼬붕 놀이를 했더랬다.

 그러다 하필 여기서 중간 결재권자로 나를 만난 것인데, 내가 그 라면 한 번 볼 걸 열 번 스무 번 검토해서라도 나에게 지적받지 않으려 했을 것 같다. 인사이동이 나기 전, 같이 일했던 내 후배 책임자에게 업무 분장 바꾸지 말고 계속  결재해달라고 했다는 걸 보면 본인도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는 짐작했던 것 같다. 그런 우려까지 했다면서 이런 모습을 보이니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개인적인 감정은 내 몫인 거고 회사는 일하는 곳이니 그가 업무적으로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그것을 표 내는 일은 영영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안 그래도 싫어 죽겠는 자가 부딪힐 일을 자꾸 만드니까 나도 모르게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오버랩된다.






 아마 이 직원은 그때 업무적 가르침은 못 받고 못된 버릇만을 그 상사로부터 전수받은 듯하다.

 그건 바로 (내가 요구한 적 없는) 굽신거린 척하는 태도와 (결과는 없는데) 온갖 일 다하는 양 수선을 부리는 제스처다. 본연의 업무를 못 해내서 숭숭 뚫린 구멍을 저런 같지 않은 것으로 때우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사수에 그 부사수란 생각이 들었다. 업무 능력과 별개로 그런 수법으로 자리 꿰찬 상사에게는 통할 기술 일진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그런 얕은 수작이 먹힐 리 없다.

주어진 일도 못해서 위, 아래, 옆 민폐란 민폐는 다 끼쳐놓고  일과 상관없는 분야로 승부 보려는 족속들을 오랜 시간 혐오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위만 있는 게 아니라 아래에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인데, 내가 오기 전 이 지점에서 다른 직원을 대표해서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도대체가 이 회사는 어떤 메시지와 시그널을 직원에게 주고 있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이 직원이 여기서  얼마나 더 나와 같이 일할지 모르겠지만, 지나간 영광은 잊고 당신에게 주어진 그 본연의 일부터 똑바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동안 진짜 쉽지 않을 거라고.


 나 또한 그렇게 치가 떨렸던 상사의 모습과 똑 닮은 주니어의 결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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