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최근에 옛날 노래만 골라 듣는 일이 많아졌다.
아주 멀리 가면 10대 때 들었던 노래까지 찾아내기도 하는데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된 곡들 대부분은 20~30대에 자주 들었던 곡들이다.
노래의 힘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 첫 음, 첫 소절에 이미 나는 그때 그 시절의 한 장소에 가 있다. 노래마다 떠올리는 사람도, 공기의 온도도, 감정의 색깔도 다 다르다. 피식 웃음이 날 때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기도 했다가, 심장 언저리가 아릿해지기도 한다. 입추가 지났다 한들 누가 봐도 여름 같은 이 계절에 가을을 타는 것도 아닐 텐데 이 심경 변화가 몹시 낯설다.
글을 쓰는 지금 내 귓가를 때리는 노래는 이브의 I'll be there이다. 인생에 술, 실체를 알 수 없는 감정, (지금으로선) 불가해한 생각만 가득 차 있었던 대학 1학년 봄, 2001년에 나온 명곡이다. 너무 꽂힌 나머지 야근할 때 사무실에서 한 번 틀었던 적이 있었는데 같이 야근하던 팀원 중 대리만이 이 노래를 알아봐 주었다. 그래봤자 그 직원도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나름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다고 했다. 팀원들 중 유일한 80년대생이라고 노래에 있어서는 나와 내적 친밀감이 있는 원 앤 온리 직원이다. 이브는 뭐고, 이 노래는 뭐지 하는 두 주임들은 이 플레이리스트는 차장님만의 가요무대 인가 하는 표정인듯했다. 내가 매일 술잔을 기울이며 존재(!)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하고 있었을 때,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녔던 녀석들이다. 이렇게 노래는 세대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지인들과 만약 특정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할 때마다 적어도 이십 대는 아니라고 말해왔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때는 유독 더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출, 퇴근길 집착하며 듣는 노래들 전부가 이십 대 때 많이 들었던 노래들인 걸 깨닫고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듬어지고 길들여진 채, 늘 똑같은 하루에 안주하고 있는 삶의 반작용인 걸까.
이번에 흘러나오는 곡은 김광석 님의 사랑했지만이다. 찾아보니 이 노래는 내가 국민학교 때 나온 노래다.
그래도 나의 귀와 심장은 이 노래에 반응한다.
아, 정말 좋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