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감정 해우소

부릉부릉

by 앤디


차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난 건 두 달 전쯤이었다. 차체 하단의 한 부품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는지 그 무언가가 도로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누가 들어도 불길한 소리라 주차를 하고 쭈그려 앉아 차 밑을 살폈지만 육안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 뒤로는 소리가 났다 안 났다 하길래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출퇴근을 했다. 그러다 며칠 뒤 지방 출장이 잡혀 장거리 운행전 기름을 채우러 주유소에 들렀다.


셀프 주유소라 직접 기름을 넣고 있는데 주유소 직원으로 추정대는 한 아저씨가 자꾸 내 차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려던 찰나 그분이 "아줌마" 하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시선도 불쾌한데 지금 나한테 뭐라니, 아줌마? 그날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던 날인 만큼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청재킷에 카멜 색상의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매치한 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려 보이려 애쓰다 정 맞는 영포티 그 자체 같긴 한데) 아줌마란 말에 욱해서 그를 쏘아보았다. 아저씨는 나에게 일본말인지 한국말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부품을 언급하며 당장 고치라는 말을 했다. 정체불명의 차 소리 원인이 밝혀져 반가웠지만, 먼 길 떠나기 직전 그 소리를 들으니 난감함이 밀려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망설이는 내가 한심했는지 아저씨가 이 상태로 운전하면 차가 전복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내가 어떻게 되는 것보다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이 끔찍해 그 길로 바로 정비소로 차를 몰았고 그 자리에서 소리의 원인을 제거하는 수리를 마쳤다.


나를 아줌마라 불러 열받게 했지만 자기 관리의 경각심과 차수리의 기회를 준 고마운 아저씨였다. 그리고 그날의 정비소 방문을 계기로 나는 내 차 상태가 다방면으로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에 관심도 없고 차에 대해 무지한 내가 10년 넘게 굴려온 차니 그런 상태라는 것이 이상할 건 없었다. 정비기사님이 조심스럽고도 간곡하게 재방문과 함께 종합적인 차 수리를 권하셨다. 그 표정과 눈빛에서 너 이 차 이대로 계속 타면 죽어, 하는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져 3백만 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 차를 고쳤다.




사람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은 다 다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나를 둘러싼 무언가를 방치한 걸 들켰을 때 그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역마살 낀 주인을 만난 탓에 출퇴근길뿐 아니라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느라 고생한 내 차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음악을 가장 많이 듣는 곳도 차 안이고, 혼잣말을 많이 하는 곳도 차 안이고, 그 어디서도 못할 상스러운 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차 안이었다.

특히 올해... 내가 실컷 울 수 있게 공간을 내어 준 것도 집이 아닌 차였다.


2025년, 내가 잘한 일이 한 개라도 있었다면 나만의 이동식 감정 해우소인 차를 종합적으로 수리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 손세차를 맡기려 한다.


내년에도 나의 똥차가 나의 웃음과 눈물에 대한 비밀을 잘 지켜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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