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척
학창 시절 영어 단어와 숙어를 외울 때 유독 외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유독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인 체하다의 뜻을 가진 pretend to라는 숙어는 내가 유독 잘 기억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때는 10대라 더더욱 그랬던 것일까. 거짓스러운 행동거지와 가식스러운 작태의 뉘앙스를 가진 이 구문에 무척이나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다.
40대 중반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는 지금, 새삼 이 숙어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 또한 그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관계라는 것을 의식한 시점부터 ~인 체하는 경력은 켜켜이 쌓여왔다. 그런데 유독 40대에 접어드니 ~인 체하는 것이 적응의 산물이 아닌 필수적인 의무가 돼 가는 것만 같아 서글퍼진다.
마흔은 불혹이라는데 여전히 나는 (놀라울 정도로) 휘청이고 흔들거린다.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소녀가 불현듯 존재감을 드러내어 중년의 나를 당혹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40대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시선과 40대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는 연기를 수행하고 있다.
나의 '아무렇지 않은 척'은 상대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방어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어 더욱더 미숙하다. 찌질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40대의) 나약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등등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로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는 것을 택한 것이다.
지난 11월 말쯤부터 턱 밑을 중심으로 오돌돌한 좁쌀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컨디션과 호르몬의 영향으로 얼굴에 뭔가 났다가 들어간 적은 있었지만 이번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범위가 넓어지고 몇 개는 그 크기가 더 커져갔다. 세수할 때마다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피부결에 불쾌감이 들었고 점점 더 악화되는 증상에 겁이 나서 치료결과가 좋았던 한의원에 방문했다. 한의사 선생님이 내가 미리 작성한 문답을 훑어보시더니 최근에 갑자기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건 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돌이켜보니 20대와 30대에 접어들었을 때도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피부가 뒤집혔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번 피부 문제는 20, 30대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것이었다. 실제로 40대 이후의 건강 검진에서는 이전에 없었던 혈압이슈로 상담받을 때마다 경고와 꾸지람을 듣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있지만, 드러나는 몸의 문제는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나 보다. 40대의 친구, 회사동료의 머리에서는 정기적인 염색으로도 감출 수 없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괜히 또 서글퍼진다.
아무래도 아무렇지 않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