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여행을 가기 전, 호주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었다. 어느 책이든 호주인들의 성향에 대한 설명마다 등장한 단어는 바로 laid-back이란 말이었다.
빨리빨리 삶의 경력 30년을 훌쩍 넘은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호기심 갔던 대목이라, 그들이 얼마나 느긋하고 태평한 건지 정말 궁금했었다. 하지만 길어봐야 일주일이라는 직장인 여행의 한계상, 아쉽게도 그것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평일 출근시간.
시드니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구 마틴 플레이스에 갔다.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 오고 가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laid-back은 되려 여행객인 나 혼자뿐이었다. 먹고사는 일터에서 혹은 꿈을 이루려는 장소에서, 그 누구인들 느긋하고 태평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애잔하면서도)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나는 오늘 일을 안 한다는 상대적 쾌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시드니 여행의 중반부를 달리고 있었는데도 Aussie English는 영영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주문할 때 (커피와 토스트에 대한) 특정 기호를 체크하기 위해 부가 질문이 몇 개 들어왔는데, 제대로 들은 말이 단 한 개도 없을 정도였다. 호주 영어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나 나름대로 (2012년부터) 꾸준히 영어회화를 공부해왔다는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까지 끝끝내 Aussie English는 들리지 않았고, 나의 공부가 갈 길이 멀다는 진한 깨달음만 얻었다.
첫날 만난 가이드 분이 시드니 여행 팁을 전수해주시면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장소는 본다이 비치였다. 바다를 좋아하긴 하지만 계절과 내 일정을 고려했을 때 그다지 끌리는 장소는 아니었다. 일어나 보니 날씨가 끝내주길래 즉흥적으로 본다이 비치로 향했다. 안 갔으면 내 평생 후회할 만큼의 아름다운 장소가 눈 앞에 있었다.
특히 가이드님이 꼭 걸어야 한다는 해변 산책로 코스는 (걷는 동안 만이라도) 온갖 번뇌와 잡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길이었다.
다리 위를 걷는 방법과 안전 교육을 받은 뒤, 슈퍼마리오 복장으로 드디어 하버브리지에 올랐다. 시드니 여행 중 스카이다이빙과 함께 가장 기대가 컸던 코스였다. 하버브리지 클라이밍의 전체 코스 중 중간쯤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비를 동반한 강풍이 불어 한 시간 넘게 대피소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기상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중도하차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기적적으로 좋아져서 코스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야경보다 석양이 더 로맨틱할 것 같아 예약시간도 트와일라잇으로 해뒀는데,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하버브리지 정상에서 시드니 야경만 원 없이 봤다.
호주 대륙의 스케일을 두고 가당치도 않은 짧은 여행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 어느 때 여행보다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비록 맥주를 지정된 장소에서만 사야 한다는 불편함과 Aussie English에 대한 좌절이 있었지만 시드니 여행은 나만의 여행 판타지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